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애 Oct 15. 2022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던 소녀

-지금은 알았죠. 경영은 힘들다는 걸.

"나는 나중에 책방 주인이 될 거야."

많은 아이들이 커서 의사가 되고 싶고, 변호사가 되고 싶고,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할 때 나는 엉뚱하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 도서관 사서도 좋아."

물론, 부모님은 장래희망란에 다른 걸 쓰라고 하셨지만.


나를 뱃속에 가지셨을 때 유난히 입덧이 심했다고 엄마는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책을 보다가 눈을 떼면 바로 구역질을 시작했다고 늘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래서 내가 책을 좋아하나 보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아니지 싶다. 그럼 지금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웃고 있는 저 아이는 뭐지? 내가 입덧 때 유튜브를 봤었나? 


책 보다 유튜브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설명하곤 한다.

"그때는 TV 프로그램도 지금 같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책을 더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어. 그것밖에 없었거든. 상상하고 싶을 때 도움을 받을 것이.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것들이 많으니까. 사실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


여하간 나는 책이 좋았다.

책 안에는 많은 다른 세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어서 사랑받고 미워도 해보고 억울함도 느껴보면서 현실의 '나'와 다른 삶을 살아 보았었다. 글자들은 살아서 움직였고, 나는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요즘에 내가 쓴 책에 혹은 읽던 책에 빙의되어서 그 주인공이나 조연이 되어서 사는 내용의 많은 드라마나 웹툰이 나오던데, 내가 매번 느꼈던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같은 책을 한 번만 보는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그래서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책은 꼭 사주시곤 했다.  엄마는 보통 큰 서점이나 도서관에 데려가셔서 나에게 몇 시간이고 책을 읽게 해 주셨다. 그러고 나서 내가 꽉 잡고 놓지 않는 그 '한 권'을 구매해 주셨었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그리고 그 세계에서 조금 벗어 나오면 또 다른 책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나를 그 사람들 집에 데려가는 것도 좋아했는데, 어른들이 이야기하실 때 나는 조용히 빠져나가서 그 집에 있는 색다른 책들을 찾아보곤 했었다. 어떤 집에는 식물도감이 많았고 어떤 집에는 의학서적이, 어떤 집에는 추리소설이 많았다.


책에서는 종이 냄새가 났다. 그 냄새도 좋았다. 어떤 곳에서는 좀 눅눅한 냄새도 나고, 새 책에서는 신선한 향이 났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도 좋았고, 활자의 모양들이 다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책에 들어가는 삽화들이 같은 제목의 책들에도 출판사마다 다 다른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소녀였던 나는 책과 함께 계속 있었으면 했고,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소녀는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종이 책도 보지만 E-book도 즐겨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책 보는 시간보다 늘어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보았던 책들이 다르게 해석되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 다 찾아보고 내가 보았던 책들의 원서들을 읽고 싶어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때만큼 책과 함께 하고 있지는 않다. 그떄만큼 책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창고에서 내가 찢어질 때까지 보았던 책들을 찾아내었을 때, 나는 한눈에 이 책들을 아들에게 보라고 주지는 못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덜거리는 것 말고도 책의 활자들도 요즘 나오는 책들이 헐씬 눈에 잘 들어오게 제작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묻혀있었던 나의 보배들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아, 한 번 다시 그때의 기분을 느껴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듯이. 

슬픈 것은 책 말고 추억할만한 아름다운 옛사랑은 왜 없는 걸까. 그것 참.



작가의 이전글 언어 덕후의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