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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Oct 31. 2021

날씨가 좋을 때 연락할게

날씨가 우리 관계에 미치는 영향

 요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이제 가을이 오나 보다. 2021년도 벌써 10개월이 흘렀다. 하루하루, 한주한주는 그렇게도 느리게 가는데 뒤돌아 보면 왜 이리도 멀리 와 있는지.


 내 기분은 유난히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은 날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괜스레 기분이 좋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다 들어주고 싶고, 입가에는 자주 웃음이 떠오른다. 세로토닌인지 어느 호르몬의 기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맑은 날 느끼는 좋은 기분은 넓은 의미에서 행복함이라고 불리어도 좋을 것 같다.


 반면에, 우중충하고 날이 어두운 날은 그야말로 기분이 지하를 뚫고 내려간다. 가끔 지구 멘틀을 뚫을 기새로 계속 쳐지기만 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일찍 자는 게 상책이라고 느낀다. 장마철에는 죽을 맛이다. 날은 습하고 하늘은 어두컴컴하다.


 가끔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은 시점이 되면, 아예 날을 잡고 하루 종일 미뤄뒀던 사색을 몰아서 한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같은 내 미래와 관련된 고민으로 시작된 사색은, 어느덧 가끔 흐릿하게 떠오르곤 하던 과거의 내 일상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 - 학교 친구나 일로 만났던 사람들 같은 - 과의 기억으로 이어졌다가 어느덧 나의 깊은 불안을 건드린다. 


 그러면 잠시 옅은 연막으로 덮어두었던 내 마음 깊은 곳 그 불안도 자신의 존재감을 인지하고, 종국에는 차분해지는 덕분에 내 의식도 또렷해진다.


 대신 흐린 날 억지로 약속을 잡거나 모임에 나가는 날이면, 평소보다 에너지를 두배는 쓰는 느낌이다. 술을 마시고 억텐(요즘 말로 억지 텐션)을 부리지 않으면 만남의 기대치를 채우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나는 날씨가 좋을 날을 골라 약속을 잡는 경향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싶었던 사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웬만하면 날씨가 좋은 날 만나고 싶다. 미리 날씨를 100% 예측하는 건 어렵기에, 거꾸로 날이 좋은 날이면 생각나는,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이라, 좋은 날씨에 갑자기 만나자고 해도 흔쾌히 나와서 나와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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