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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Dec 05. 2021

관계의 교차선

두 사람의 삶이 만나고 선회하는 것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채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오던 두 사람이 있다. 둘이 걸어오던 길이 하나의 교차점에서 만난 어느 날, 비로소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중간 기로에서 한 사람의 경로가 다른 방향으로 우회했다면, 상대방이 잠시 멈추거나 너무 빨리 또는 너무 천천히 걸어왔다면 아마 둘의 만남은 없었을 테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수많은 선택의 누적이 만들어 낸 복선과 복선의 결론이다. 그렇기에 짧든 길든, 가볍든 무겁든 살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만남은 우연적이나 필연적이고, 동시에 경외롭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혹은 그 어떤 관계라 하더라도, 심지어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처럼 작가와 독자로든, 무엇으로든, 지금 당면한 새로운 만남을 위해 어쩌면 당신은 수십 년간 그 길을 걸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새로운 교차점은 우리의 인생을 스쳐가며 삶의 향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영양가 없는 싱거운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다. 또는 잠시 잠깐 마음을 돌리는 휴식처가 될 수도 있다. 운명처럼 상대를 만나고 손을 맞잡아 새로운 길을 함께 개척해 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만남은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매 만남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관계의 교차점은 의미 있기도, 없어지기도 한다. 기억 속에서 금방 휘발할 것 같은 짧은 만남도 우리가 해석에 따라서는 삶의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새로운 만남에 진중하고 몰입하려 한다.


 그러나 교차점에서 만난 모든 만남은 끝이 있고, 어느 순간 우리는 각자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람의 과거 행로에는 각자의 관성이 있어, 우리는 걸어오던 길의 방향을 쉽사리 꺾지 못한다. 평생 짜인 틀에서 계획적인 삶을 살던 사람은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삶의 자세를 새로이 마주하더라도 -설령 그것이 매우 그에게 매우 영감을 주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살던 삶의 방식을 쉽게 바꿀 수 없다.


 20대, 30대, 나이가 들 수록, 살아온 방식은 고착화된다. 새로운 삶의 방식은 받아들이고 싶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낯설고 두려운 자극이 되어 간다. 그렇게 삶의 방향은 고정되어 가고, 새로운 만남에 유연하지 못하며, 심하면 내 방식만 고수하는 소위 꼰대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꿀 수는 없지만, 1도, 2도 정도로 선회할 수 있는 여유는 가지고 산다면 좋겠다. 교차점과 교차점마다 선회와 선회가 모이고 모여, 우리는 탄력적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나와는 다르게 살아온 다른 사람의 다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매번 만남에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여 어쩌면 비효율적일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보다 풍부하고 즐겁게 삶을 마주하는 자세임에는 틀림없다.





표지 :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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