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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제이 Apr 23. 2023

당신이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초보 공감러의 연습

 지난 금요일 오후, 내가 회사에서 퇴근 전 마지막에 보낸 메일의 끝맺음 말이다.

감사합니다.
한 주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

○○○ 드림


 10년 이상 HR담당자로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메일을 보냈을까? 매일 평균 10개씩은 보냈으니 수만 개는 족히 될 것 같다. 수만 개의 대부분이 단순 '감사합니다.'로 끝났지만, 가끔 고마운 상대에게나 친한 동료에게는 몇 마디가 더 붙곤 했다. 저 메일은 딱히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는데, 아마 퇴근 후 주말을 맞이하는 설렘이 컸나 보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고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겠으나, 센스 있는 척 이모티콘까지 붙인 나의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 ' 한마디가 머금은 말의 온도가 측정된다면, 그 온도는 AI가 써 준 문구와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주말이 끝나가는 지금에서야 문득 '메일을 상대방이 정말 좋은 주말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옆 부서 사람이라 일상 얘기를 시시콜콜할 만큼 가깝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가 좋은 주말을 보냈다 한들 내 메일 덕분일리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의 주말이 최악이었다면? 나의 가식스러움에 조금 부끄러울 것 같다.




 나는 리액션이 좋거나 공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가끔 냉정하거나 감정이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잠시 만사 제쳐두고 혼자만의 생각에 몰입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이는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여 마음과 생각을 추스리기 위함이지, 타인의 감정을 배제하기 위함은 아닌데 말이다.


 상대방이 고민을 얘기할 때 너무 현실적으로 조언하기도 한다. 그냥 듣고 이해해 주면 될 것을, 당면한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나 스스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조언으로 그치면 좋으련만, 가끔 '이 문제는 네가 먼저 바뀌어야 돼.' 하는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내가 뭐라고.


 그런 내가 요즘 한국코치협회 KAC 코치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50시간의 코치 실습이 필요한 탓에, 회사 동료들에게 나의 실험대상이 되기를 정중히 부탁하고 1시간씩 시간을 뺏고 있다. (이 글을 빌어 감사합니다 저의 피실험자(?) 여러분!)


 좌충우돌 코칭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다만 내가 요즘 느끼는 점은 내가 경청하는 것을 꽤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코칭의 기본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중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인데, 매번 나의 주관과 나의 말들이 앞장서 대화를 주도하려 한다. 상대를 위한 코칭인데, 나의 말들로 대화의 채팅창들이 가득 찬다.


듣기 7, 말하기 3을 하려 하는데, 오히려 듣기 3, 말하기 7인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억지로 공감하거나 재해석하기보다는, 당신 인생이라는 소설의 독자가 되어 몰입하여 읽어보려 한다. 가끔 소설의 주인공을 주제넘게 흉내 내는 모습이 상대방에게 작은 토닥거림으로 다가간다면 좋겠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조언하거나 형식적으로 응원하기보다는, '나'이기 때문에, '나'만이 당신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한 마디를 덧붙여야겠다그저 '힘내'라는 말은 힘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당신 맞춤형으로 진심을 담아 위로하는 연습도 해야겠다. 초보 공감러로서, 선을 넘지 않고 말의 온기를 전하는 방식을 연습하려 한다.




 위로하기 연습 #1

 가끔 지쳐서 에너지 레벨이 낮아진 당신께


 우리의 하루하루는 왜 이리도 무거울까요. 항상 즐거우면 좋을 텐데 우리의 마음은 수면 위와 아래를 오갑니다. 시간과 돈과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은 왜 이리도 힘에 부치고 어려운 것일까요. 어깨가 처지고 날이 선 말이 오가는 날에는 내가 버티는 것이 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저 내가, 당신이, 우리가 모두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글 몇 마디로 진정으로 평온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오만입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이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이미 잠시 평온하다면 더 평온하고 마음이 충만 수 있기를, 슬프다면 잠시 또 잠시 그렇게 계속 덜 슬플 수 있기를, 일어설 힘이 없다면 영차! 앉을 용기라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합니다. 이는 더 나은 우리가 되기 위한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여 조금씩 나아지기를, 그래서 현실에 압도되거나 매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애초에 정답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공허할 수 있으나, 단어 곳곳에 남아 있는 작은 온기들이 켜켜이 모여서 큰 따뜻함이 될 수 있도록 여러 번 응원을 드리려 합니다. 그리하여 조금은 당신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언젠가 당신을 저의 코칭 피실험체(?)로 모시고, 어느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대접하며 실습을 핑계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방식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이런 말들을 꼭 건네 보겠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힘들었겠네요. 애썼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특별한 듯 하지만 사실 다들 그냥 그렇게 삽니다.


 당신이 즐거운 주말을 보냈길, 다음 한 주도, 그리고 그 주말도, 그다음도 계속,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일요일 저녁 주말 끝자락에서


 하루만 더 쉬면 좋겠다는 나의 마음을

 당신이 공감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알제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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