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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 Mar 22. 2018

커뮤니케이션 미술감상

1. 서문

미적 체험이나 미술 감상 경험이란 원래 개인의 내적인 것이다.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말하자면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경험이라서 원래 타인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언어로,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많은 경우 작품에 대한 감상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이라서 타인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우울해 보여요’처럼 본인의 감정이입인 경우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로 전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면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서로 같지 않다. 각자가 서로 다른 것을 보는 것이다. 만약 ‘보면 다 안다. 말은 필요 없다’고 한다면 스포츠 중계나 책의 해석이란 필요 없을 것이다. 보면 다 되니까. 그게 아니니까 아나운서나 해설이 필요하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느낌을 받고 묘사를 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언어 전달이 필요하다. 미술 감상도 마찬가지이다. ‘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소통과 전달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특히 현재의 이미지 복제와 넘쳐나는 시각 정보의 시대, 미술을 통한 지적인 시각 체험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행위이다. 이를 다루는 실천적 학문으로서 미술 감상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내가 보고 아는 것이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언어로 전달할 필요가 생긴다. 그리고 예술을 다른 사람과, 나아가 예술 그 자체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통을 위한 특별한 ‘단어’(예술용어)를 알아야하고 ‘사실’(객관)과 ‘감정’(주관)을 전달하고 듣는 소통의 방법을 -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에는 미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교육학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면서 미술 감상이라는 감상 행위 그 자체가 예술 개념 안에 포함되고 확장되어 왔다. 이제 미술의 활발한 사회 참여와 사회의 활발한 미술참여는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과정과 행위 그리고 설치와 장소의 특수성을 중시하면서 미완결성과 미해결성을 속성으로 하는 예술의 등장, 열린 예술개념과 더불어 관계 미학의 등장 등이 이 새로운 시대에 미술 감상과 감상자의 재발견에 영향을 미쳐 왔다.

  비록 실천의 한 범주로서 미술 감상 개념이 여전히 유동적이라는 시각이 있더라도 오늘날 미술 감상은 미술교육의 한 영역이면서 동시에 이에 머무르지 않는 확장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수동적인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 감상자가 발신하는 보는 방법과 느끼는 방법에 대한 수없이 다양한 이론과 연구들이 발표되어 왔으며 이에 의해 미술 감상교육에 대한 학제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미술감상학Art Appreciation Studies> 즉 ‘보는 것’이라는 활동과 행위를 둘러싼 목적과 내용과 방법, 과정과 결과에 이르는 일련의 연구들로 이제 철학과 과학, 교육학과 심리학 등 학제적 접근이 가능한 학문적 발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술감상학>의 학문적 접근은 미학, 미술사학, 미술학에 뒤이어 21세기 감상자의 존재와 함께 떠오르게 된 새로운 예술 영역으로 ‘관찰’ ‘대화’ ‘사고’의 단계와 문답의 과정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여 이루어진다. 

 

  미술교육을 둘러싼 외적 내적 환경 변화로 인해 미술교육 특히 미술 감상은 그 자체가 창의 융합의 역할을 해 왔다. 그리하여 인간으로서 지도자와 감상자의 문제, 매개로서의 작품, 장으로서의 공간을 포함하여 감상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방법이 된다. 학교든 미술관이든 미술 감상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역할이다.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필수적인 ‘장’의 문제인 것이다. 플랫폼으로서 미술 감상을 위한 특별한 시공간 즉 미술관과 교실 등의 ‘장’이 가지는 분위기와 환경 등 맥락적 요소가 대두되고 있으며 이 ‘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교사와 도슨트 같은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게 하는 사람’, ‘구하는 자가 그의 길을 계속 가도록 돕는 사람’-랑시에르(Lancière, J.)가 ‘스승’으로 묘사한-이 필요하다. 예술이라는 거대한 지(知)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을 함께 해 줄 누군가, 이 모든 과정을 먼저 경험해 본 사람, 미술의 지식 여부보다는 인생의 축적된 여러 경험과 더불어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된, 앞(先)을 살아가는 이(先生)가. 


  ‘네가 느끼는 게 정답이다’라는, 감상자 신화에 근거한 가볍고 안일한 교육은-그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면- 무책임하고 위험할 수 있다, 그 감상이 개인의 차원을 넘은 교육의 차원에서라면. ‘감상자 중심주의’를 과잉 해석하여 그 결과 지도의 방임을 유도하는 학습자 결정론, 학습자 책임론에 가까운 주장만이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감상자 개념을 기본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고 계획하여 미술 감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능하게 하는 지도자의 지도자로서의 역할, 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와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작품의 제시와 순서를 기획하고, 신체를 통해 지와 감성을 체험하도록 하면서, 의미와 기호적 언어와 작품의 존재론적 언어를 체험하는 감상자 자신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을 동시에 시도하여, 감상자와 미술을 매개하며 ‘만남’을 준비하고 만들어가며 한편으로 비평하며 사고하는 이. 교육의 장에서 감상을 완성하는 지도자관(觀)인 것이다.     


  미술 감상을 위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장으로는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과거 권위적 존재였던 미술관이 지금은 권위의 틀을 벗어나 ‘참여미술관’의 이름으로 감상자와 상호의존적인 존재임이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참여’와 ‘상호의존’은 실제로는 학교를 비롯한 모든 미술 감상의 장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미술 전문가에 비해 아마추어인 일반 감상자. 그리고 아마추어 가운데에서도 초보의 대표 격인 학생 감상자. 감상 초보자들에 의한 미술 해석은 당연히 불완전하다. 이러한 불완전성이야말로 오히려 한편으로는 학교나 미술관 같은 미술 감상의 ‘장’, 그리고 교사의 역할을 통해 ‘미술 감상’이 ‘중간’이라는 매개와 플랫폼이라는 의의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술 감상’을 인간이 예술과 만나는 매개로 본다면, 초보 감상자의 미흡함, 불완전함은 오히려 작품과의 진지한 만남과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완전함’을 이루는 전제조건이다. 불완전함과 미흡함이 또 다른 ‘완전함’의 전제가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의 진지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장’,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인 ‘지도자’를 비롯한 제 요건과 주체들에 대한 탐색은 이제 더욱 중요해진다. 아서 단토는 미술의 죽음을,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을 말했다. 그리고 저자의 죽음이 이제는 감상자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감상자와 지도자라는 미술을 둘러싼 두 인간 주체의 상호작용이라는 관계는 ‘장’으로서의 미술 감상이 맥락이나 시간, 공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만남의 역할을 하도록 기대하게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자가 불확실하며 지도자와 감상자의 입장도 명료하게 나뉘지 않은 불완전함과 그 아름다움, 또한 이것을 포용할 가능성과 잠재력이 공동의 역량으로 가능해지는 참여의 장이라는 점에서 미술 감상은 그 자체가 교육적인 것이다. 


  미술작품은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소감이 감상의 전부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해석’이라는 두 가지 측면 가운데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작품의 해석은 달라진다. 역사는 작가의 삶과 제작 의도, 양식과 같은 미술사의 흐름, 사회적 역사적 맥락 등에 근거한 객관성, 한편 해석은 미술이라는 비밀스러운 수수께끼에 대한 암호 풀이라는 점에서 감상자의 자유로운 주관성의 바탕이 된다.

  객관성과 주관성이 논리와 직관으로 결합되는 장, 그 사이의 균형을 우리는 나름대로 찾아간다, 일종의 탐정으로서. 그 결과 미술 감상은 역사와 추리를 바탕으로 감상자를 탐정으로 만들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 되며, 미술작품의 해석은 이 전혀 다른 것들의 조합으로 ‘완성’된다. 이 깨달음의 여정,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미술감상이 된다.

(계속)


21세기 미술감상자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미술감상 - 책이 나왔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4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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