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엘리자베트

‘파르마 공작부인(Duchessa di Parma)’이 된 공주

by 알렌
프랑스의 루이즈 엘리자베트(Louise Elisabeth de France)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 제4대 국왕 루이 15세의 장녀입니다.
마담 루아얄(Madame Royale) 루이즈 엘리자베트

레슈친스카 왕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공주 마리 레슈친스카(Maria Leszczynska) 왕후의 딸로, 둘째 공주인 앙리에트 안(Henriette Anne)과 쌍둥이입니다.


결혼 전에는 ‘마담 루아얄’의 칭호로 불렸는데, 이는 국왕의 장녀에게 주어지는 작위로서, 왕제(王弟)를 ‘무슈’, 왕제비(王弟)를 ‘마담’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왕실의 첫째 공주님

마담 엘리자베트는 1727년 8월 14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동생인 왕자와 공주들과 함께 베르사유에서 자랐으며, 매우 총명했다고 전해집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

1739년, 프랑스와 스페인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프랑스의 공주인 엘리자베트가 스페인의 왕자인 펠리페와 결혼합니다. 뒤이어 스페인 공주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가 프랑스 왕태자 루이 페르디낭과 결혼해 협정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혼례를 치른 엘리자베트는 마담 엥팡트(Madame Infanta), 즉 ‘스페인의 왕자비’로 불렸으며 프랑스의 이사벨(Isabel de France)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당시의 스페인 궁정은 엄격한 예법과 더불어 시어머니 이사벨 디 파르네시오 왕비의 막강한 권력으로 어린 이사벨을 억압했습니다. 이사벨 왕자비는 왕비를 피해 인형 놀이를 하며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파르마 공작부인

이사벨 왕자비의 시어머니 이사벨 디 파르네시오 왕비는 파르마 공국의 상속자였습니다. 하지만 왕자비의 아버지 루이 15세가 이사벨 왕비 대신 펠리페 왕자의 파르마 공국 상속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 결과 펠리페 왕자가 파르마의 군주가 됩니다.


공작부인이 된 그녀는 프랑스의 엘리사베타(Elisabetta di Francia)라고 불리게 됩니다.


파르마를 향한 여정 중, 루이사 엘리사베타는 프랑스 궁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엘리사베타 공작부인은 왕의 애첩 퐁파두르 여 후작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여 후작을 경멸했던 그녀의 동생들은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젊은 나이에 천연두에 걸려 그녀는 1759년 베르사유 궁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쌍둥이 여동생 앙리에트 옆에 나란히 묻혔지만, 프랑스혁명 중에 무덤이 파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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