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의 종말

7일간의 정의

by 이시절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F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F는 유능한 경찰이었다. 사격 선수가 꿈이었으나 늘 똑같은 것에만 쏘는 게 지루해서 생각해 낸 게 경찰이었다. 경찰은 멋있기도 하니까. F가 뛰어났던 이유 중 하나는 탁월한 운동신경 덕분이기도 했다. 빠른 달리기 실력과 잘 지치지 않는 체력 덕이었다.

또한 아주 좋은 촉.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구별하는 촉..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촉은 경찰인 F에게는 유용한 재능이었다.


그런 F에게 종말은 끔찍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첫 번째 생각이었다. 절망.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은, 그럼 더 범죄자가 늘겠네? 였다. 7일이 남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해보고 싶었으나 하면 안 됐던 것들을 하려고 나설 것이었다.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이걸 잡아야 하는 걸까? 단정하고 나름 예쁜 경찰 유니폼을 입고 경찰서 의자에 앉아 나름 열심히 고민했다. 7일 남았는데 잡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안 잡기에는 7일간 질서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걸 막는 것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것 같았다. F도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질서, 그리고 본능. 두 개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두 갈림길이 똑같은 결과, 똑같은 양심의 가책, 똑같은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에 서야 할까. 어느 길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걸까. 알 수 없었다. 직업에 충실하는 게 맞는 걸까.


F는 어릴 때 사격 선수가 꿈이었다. 총을 쏘는 게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인을 꿈꾸기도 했었으나 죽을 위기의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사격 선수를 꿈꾼 것이었다. 총을 쏠 때의 떨림, 굉음, 그리고 과녁을 맞혔을 때의 쾌감. 그 세 가지는 사격 선수라는 꿈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늘 똑같은 과녁을 맞히는 건 지루했다. 맞아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 맞춰봤자 무슨 소용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맞으면 고통스러워하는 것에게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람에게 쏠 순 없고, 동물에게 쏘는 것도 안 되니까. F에게는 오로지 총을 생물에게 쏠 합법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꿈꿨던 게 군인이었다. 총 쏠 기회가 많을 것 같았다. 총으로 싸우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총을 쏠 일은 과녁에 연습할 때를 제외하고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더군다나 군인으로서 총싸움을 한다고 해도 문제는 나 자신도 총에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인이라는 꿈은 포기했다.

그렇게 총 쏘는 멋있는 일이라는 꿈을 가지고 뱅뱅 돌다 정착한 게 경찰이었다. 사람에게 쏠 일도 있을 것 같고, 추격도 할 것 같은데 스릴 넘치지 않을까? 경찰은 유니폼도 예쁘니, 제격일 것 같았다. 경찰은 멋있기도 하고. 그렇게 로망 하나로 F는 경찰이라는 장래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경찰행정학과를 나와 경찰관이 되었다.


하지만 F가 경찰이 되고 총을 쏜 적은 한 번도 없다. 추격전을 벌인 것 몇 번 있으나 총을 쏴본 적은 없다. 단 학교를 다닐 때 많이 쏴보긴 했다. 사격선수를 꿈꾸며 사격을 배운 F에게는 쉬웠다. 막상 입어보니 유니폼도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다.

단지 쾌감과 뿌듯함, 그게 다였다. 그 이유 하나라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고... 똑같은 틀 안에서 조금씩만 바뀌는 것 같았으나 특별히 상관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틀이 좀 틀어진 것 같았다. 오늘은 어떠한 업무도 하기 어려웠다. 범죄자를 잡아야 할까, 교통관리를 해야 할까... 사람들은 아마 원하는 장소에서 종말을 맞기 위해 이동할 것이다. 아마 교통이 많이 막히겠지. 하지만 그걸 잡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에게 안 좋게 보일 게 뻔했다.

경찰의 정의, F는 그날 하루 내내 그것만 고민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른 경찰들은 대다수 출근하지 않았고, 대다수는 출근했으나 교통 관리 같은 건 하지 않고 컴퓨터로 업무만 봤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틀차, F는 결론을 내렸다. 안 잡는 게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잡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는 게 맞았다. 잡아봤자 뭐, 법정도 일을 안 할 텐데. 교통체증이야 있겠지만 다들 고향으로, 가고 싶었던 꿈의 여행지로 가고 싶어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F의 의미는 뭐지? F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없어졌다.


또한...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고 질서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시끄럽게 클락션을 울리는 차들, 질서 없이 막 달리는 탓에 충돌한 차들, 그리고 다친 사람들... 의사들이 몇 없는 병원.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톱니바퀴에서 가장 큰 바퀴가 빠진 것처럼. 그래서 작은 톱니바퀴들이 엉키고 이상하게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것 같았다.

큰 톱니바퀴가 너희들끼리 해보라고 비켜주자 오히려 작은 톱니바퀴들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큰 톱니바퀴는 고민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작은 톱니바퀴들이 알아서 자리를 찾아갈 것인지, 자신이 들어가야 이 상황이 끝날지. 이미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었는지.


경찰관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다들 서로 눈치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딱 일을 시작하면 그게 옳든 틀리든 다들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누가'가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느 날 신고가 들어왔다. 종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이후 세 번째였다.

딸이 가출을 한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원래 모범생이던 애가 가출을 한 것 같은데 연락도 안 되고 불안해 죽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F는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큰 톱니바퀴가 되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한 구석이라도 제대로 굴러가도록 만들었을 뿐이었다.


가출했다는 딸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탈을 처음 한 건지 영 어색하고 허술한 가출이었다. 그래, 모범생이었다는데. 아마 그 가족은 함께 종말을 맞을 테지. 아마 그 딸의 가출은 마지막 발악이었을 것이다. 학생으로 살며 공부만 해온, 옳은 길이라고 믿는 그 길만 걸어온 삶에서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보기 위해 잠깐 멈추었을 뿐이었다.


작은 톱니바퀴는 삼일차, 한 구석을 제대로 굴러가게 바뀌어놓았다. 작은 톱니바퀴는 점점 몸집을 키웠다. 구석은 4분의 1이 되었고 4분의 1은 절반이 되었다.

절반은 금방 전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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