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의 치료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
전 의사입니다.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해요.
-<태양의 후예> 강모연의 대사 중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G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G는 유능한 간호사였다. 깔끔하고 빠른 일처리와 대학시절 따놓은 보건교사 자격증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환자들에게 더 믿음을 주었다. G는 야근을 싫어하지 않았고, 어떤 힘든 일도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꺼려하지 않았다. 정말 나이팅게일의 21세기 버전이었다.
명문대에서 G는 학생대표로서 나이팅게일 선서를 읽었다. 그리고 늘 그 선서를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내가 선택한 직업임으로, 내가 한 결정임으로. 일생을 외롭게 살 생각은 없었으나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G는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 앞에서는 숨을 참고 지나갔다.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은 먹지 않았고 너무 차가운 음식도 줄이고 있었다.
환자들 링거를 교체하는 걸 잊지 않았고 한 환자가 퇴원하면 뒤처리도 깔끔하게 했다. 한 번도 의사의 지시에 토를 단 적 없었다. 때론 험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G를 보고 전생부터 간호사였을 거라고, 나이팅게일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빠르고 깔끔한 일처리로 교수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언제나 환자들에게 웃는 모습으로 지내 동료 간호사들도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G에게 종말이 내려졌다. 아, 일생을 간호직에 최선을 다했더니 이게 하느님이 나에게 내리는 상인 건가? 저승 가서 편히 살라고?
병원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갔다. 환자도, 의사도.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심각하지 않은 수준의 환자들은 줄줄이 약만 챙겨 퇴원을 했고, 병원비를 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당장 나가면 이틀 이내에 죽을 환자가 나가더라도 G는 말리지 않았다. 나가고 싶을 테니까.
문제는 의사들의 탈출이었다. 교수던 인턴이던 간호사던 가리지 않고 다들 병원에서 사라졌다. 야근하다가 잠깐 눈 붙였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 안은 썰렁하고 뉴스도 난리였다.
뉴스를 읽고 G는 차분히 링거를 갈러 내려갔다. 딱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종말이 왔다는데 하고 싶은 일도 막상 떠오르지 않았고 단지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병실을 오갔다. 전보다 조금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중환자실 환자들을 살폈고 전기가 안 끊김에 감사했다. 7일간 충분히 버틸 정도로 약들도 많았다. 조금 도둑맞은 듯했지만. 자료가 없는 환자들은 교수들의 방을 뒤지고 다른 컴퓨터 자료를 빌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G는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다.
종말을 모르는 환자들도 있는 것 같았다. 중환자실의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나, 세상일에 관심 없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나. 물론 종말을 알고도 못 간 환자들도 많았다.
병실을 돌아다니는 G에게 종말을 아는 한 환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왜 안 가세요? 종말이라잖아요."
끽해야 20살, 많으면 30살 초반의 여자였다. G 담당 환자가 아닌지라 정확한 건 모르고, 해줄 수 있는 건 링거를 갈아주는 것뿐이었다.
"환자분은 어떠세요? 나가고 싶지 않으세요?"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링거를 갈아주는 동안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네요."
만약 G가 그녀에 대해 더 알았더라면 적절한 답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G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 말에 대꾸하듯 G도 중얼거렸다.
"그런가요? 저도 그런 것 같네요."
G는 링거만 갈고 금방 병실에서 나갔다. 다른 환자들도 많고, 혼자 다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린이 중환자실 앞, 울고 있는 두 부모가 보였다. 아마, 6살 아이 부모일 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약이 든 바구니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G를 잘못 본 것인 양 빤히 바라보았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아이의 엄마가 물었다.
"... 왜 여기 계세요?"
조금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으나 G는 중환자실에 들어가며 묵묵히 대답했다.
"... 큰 고통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려요..."
애매하고 이상한 대답이었다. 주어도 다 빠진 이상한 대답. 하지만 그 대답에 엄마는 더 울었다.
그래,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 G조차 떠나 링거를 갈지도 주사를 맞지도 못하면 아이는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할 터였다. G는 아이의 고통보다, 그걸 보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부모의 고통에 가슴이 쓰라렸다.
병원 반 정도를 돈 G는 피로에 대기 의자에 털썩 앉았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다. 아.. 의사라는 새끼들은 다 뭐 하러 다니니? 제네바 선서 안 했어? 아님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일생을 의료봉사에 바치란 말이야...
나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해서 일생을 바치고 있단 말이야...
물론 G의 최선이 이게 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G는 나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도 G는 여전히 병원 안을 활보했다. 이틀차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뭐 하고 있어? 어젠 왜 전화 안 받았어?
친구의 질문에 G는 묵묵히 대답했다. 병원이야.
친구는 잠깐 대답이 없다가 다른 환자들처럼 물었다. 왜 안 나왔어? 뭐 하고 있는데?
G는 친구도 참 어리석구나 싶었다. 이게 내가 할 일이 아니라면 뭐겠어.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불공평해, 내 친구는 왜 안 나와? 나는 내 친구 보고 싶은데. 이기적이면서도 애교스러운 말이었다. 하, 웃을 힘도 없는데.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그 덕에 나는 간호사가 된 거야. 내가 조금 가난하게 태어났음 간호사 못했지.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어봐, 이렇게 쉽게 간호사 못했어.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이상,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헌신할 거야."
"..."
아무런 대꾸도 못한 친구가 너털웃음을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아마 G를 미친놈으로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G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게 할 일이라고 믿었다.
어차피 종말 할 텐데 뭣하려 하느냐고? G는 단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덜 고통스럽게 끝을 맞이하기를 바랐다. 그게 G의 직업의 이유라고 믿었고.
늦추진 못하더라도, 고통을 덜어줄 순 있었다. 수술이나 시술은 못해도, 간단한 처치는 가능했다. 약 처방은 못해도, 처방된 약을 줄 수는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
때때론 궁금했다. 도망친 다른 의사, 간호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뛰쳐나간 환자들은 아직 건강할까? 잘 버티고 있을까? 종말이라는데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문득 일을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G는 금방 잊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환자들 사이에서 G의 별명은 나이팅게일이었다. 이런 순간에 마저 의업에 종사하는. 시간마다 조금 늦기도 했지만 링거를 꼬박꼬박 갈아주었고 나름 어떻게든 식사를 챙겨주려고 애썼다. 편의점에서 무언갈 사 오거나 식당에 있던 빵을 주는 정도였지만. 집으로 가는 날은 없었고 7일 내내 야근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D는 그 일에 충분히 성취감을 느꼈다. 그거면 충분했다. 의료에 종사하고 살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손길 하나하나에 생명이 달려있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럽고도 성취감이 드는 일인지 모를 것이다.
G는 간호사로서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직업에 만족하고 살았다. 특히나 환자들이 아프다고 할 때 안 아프게 해 줄 때, 그때 가장 직업에 감사했고 뿌듯해했다. 다른 의사들도 그럴 것 같았다. 수술에 성공했을 때, 완벽한 진찰을 내렸을 때,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나았다고 할 때. G는 그래서 사람들이 의료 관련 직업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아닌 사람도 꽤 있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어서 하는 사람, 부모 때문에 하는 사람,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간 사람... G는 새삼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의사, 간호사, 약사 등등 직업은 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아니었나?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강모연의 말처럼,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가치나 이념은 없지 않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G는 처음 간호사가 되었을 때 만난 돈에 집착하는 의사, 교수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인류애란 없는 것인가? 결국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군. 그때 G는 자기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으로 버티고 있고.
며칠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자 슬슬 G도 지쳐갔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하고 싶은 게 문득문득 떠올랐고 해보지 못한 게 불쑥불쑥 떠올랐다. 아쉬움은 커져가고 두려움도 자랐다. 어제는 갑자기 한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는데 막상 의사가 아닌 G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급한 대로 진정제와 진통제를 투여했지만, 과연 환자가 남은 이틀을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의사들의 처방목록과 온갖 자료들을 뒤져보았으나 난해하고 복잡한 약 이름에서 주저했고, 약 창고와 교수들의 사무실 등 다 뒤져보았지만 그 길고 이상한 읽을 수도 없는 이름의 약은 찾지 못했다.
아, 의사들 하는 말이라도 좀 새겨들어볼걸. 지나가다 보면 그런 얘기하는 의사들 많았는데... 그런 얘기 간호사가 좀 듣는다고 상관없을 텐데.
G는 오늘도 병실을 돌며 약을 처방하고 식사를 챙기고, 링거를 갈고 부모를 위로하고 환자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이 아니라 다행이다. 더 컸으면 감당 못했을 거야.
G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우울한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환자에게도, 너무 긍정적이고 활발한 환자에게도. 펑펑 우는 사람들에게도.
환자들은 늘 은은한 웃음의 G를 궁금해했다. 허망한 웃음인 걸까? 그리고 마침내 종말의 날, 그제야 알았다. 저게 허망한 웃음이 아니라 만족, 성취감의 웃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