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의 종말 10화

I의 종말

7일간의 견주

by 이시절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I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I는 단연 훌륭한 사람이었다. 늘 다른 생명을 위해 살아왔고, 그들을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늘 주기적으로 다양한 곳에 기부를 했고, 시간이 나면 여행이 아닌 봉사활동을 했다. 그 일을 함으로서의 뿌듯함도 한몫했지만, 역시 '지구에서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늘 이기적이기 않기 위해, 본능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고 언제나 친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I는 주로 동물들을 도왔으나 인간에게도 소홀하지 않았다. 허나 인간은 평균적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믿음 탓에 동물을 더 중요시했다. 동물들은 여전히 평균적으로 삶의 질이 떨어져있었다.


특히 I가 관심가지는 분야는 개농장이었다. 개농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소고기도 먹는데 왜 개고기는 안 돼냐' 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농장은 다른 가축농장과 다르게 주로 법적으로 허가받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며, 민간인 출입을 금지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개 경매장은 다른 가축 경매장과 다르게 회원제로, 회원비를 내고 개농장을 운영중임을 증명해내야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철저히 민간인을 막는 것이었다. 또한 개농장의 개들은 그들을 '개' 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일 만큼 처참했다. 잔뜩 뒤엉킨 털들과 이상하게 치료받은 흔적들... 그 모든 건 차마 '개'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했다.


I의 후원이 처음으로 끊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부터 후원을 한다해도 그 중 일부만 쓰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였다. 세상의 끝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류만 종말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어이없었지만 I는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반려견과 보낼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소중한 반려견 브로콜리는 2살 된 사고뭉치 보더콜리종 견이었다. 윤기흐르는 은회색 털과 하얀 털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아직 어려서 사고를 많이 치지만 (물론 주변에서 10살 넘어야 진정된다는 말도 많이 듣긴했다) 그정도는 눈감고 넘어가 줄 수 있었다. 그정도로 브로콜리는 사랑스러웠으니까.


브로콜리는 그녀에게 전부였다. 출근 전, 퇴근 후까지의 시간은 모두 브로콜리 차지였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녀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브로콜리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다. 브로콜리는 그녀에게 전부였고, 그녀는 브로콜리에게 전부였다.


I가 종말을 알고 끔찍해한 이유도 브로콜리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죽는다면, 모든 인간이, 인류가 죽는다면 누가 브로콜리를 책임지지? 사료는 어떻게 먹지? 먹을 걸 구할 수 있을까?


아마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동물들은 각자만의 생존방법을 찾아내 인간만큼 발전하겠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고, 브로콜리가 사는 동안의 발전은 미미할 것이었다. 아마 브로콜리는 발전의 양식이 되겠지. 아마 브로콜리의 죽음으로서 브로콜리 다음 세대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조금 더 오래, 하지만 그 다음 세대들보다 빨리.


브로콜리가 발전의 양식이 될 순 있을까? 아니, 애초에 I가 없다면 브로콜리가 몇달 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브로콜리가 사료를 알아서 먹진 못할 거다. 아무리 잔뜩 쌓아두고 간다 한들 모자라지 않을까?


그래, 사료라도 잔뜩 사둬야겠어. I는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I의 집은 커다란 대형 펫마트 근처라 걸어서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살 거니까 일단 차를 타고 가서, 사료란 사료는 죄다 살 생각...이었으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절망적으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을 뻔 했으나 I는 다시 일어섰다. 개 사료야 그냥 마트에서도 파니까.

I는 다시 차를 몰아 근처 마트로 갔다. 다행히 아직 문을 닫진 않았지만 사료는 작은 것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중얼거리듯 말하며 I는 사료를 쓸어담았다. 물론 그중 고양이 사료도 포함 되어 있다는 걸 K는 알지 못했다.


I는 이곳저곳 마트를 돌아다니며 사료를 샀다. 그러다문득 물은 어떡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을 틀어놓고 가야하나? 그럼 집이 물바다가 되서 오히려 힘들지 않을까?

고민 끝에 I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커다란 대야를 몇 개 사기로 결심했다. 대야와 욕조에 가득 담아두면 며칠은 걱정 없겠지.

I는 마트 몇 군데를 돌며 작은 봉지 사료 20개와 (그중 고양이 사료가 3개 있었다) 고무대야 3개를 살 수 있었다. 사료야 그냥 바닥에 냅다 부어둘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늘 그랬듯 브로콜리가 꼬리를 붕붕 흔들며 열정적으로 반겼다. 브로콜리의 은회색 털이 찰랑거렸다. 브로콜리의 새파랗고 청아한 눈동자는 여전히 맑았다.


브로콜리의 먹는 문제는 해결했다한들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직 브로콜리와 못해본 것도 많고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 주기적으로 관리도 해줘야했다. 털도 잘라줘야하고, 발톱도 깍아야하고, 안 미끄러지게 발바닥 털도 밀어줘야하고, 귀소독도 해야하고, 심장사상충 약도 먹여야하고...


I는 자신이 죽고 나서 브로콜리가 심장사상충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잘 알았다. 밖을 돌아다니며 온갖 벌레를 만날 거고 첫 한달 외에는 심장사상충 약도 먹지 못하겠지. 브로콜리가 알아서 매달 한 알씩 먹을리가 없으니까. 그냥 줘도 먹기 싫어하는 아인데.

다른 건 몰라도 브로콜리가 아파서 죽지만 않았으면 했다. 특히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 K는 짧게 아프고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브로콜리가 오래 조금씩 아프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건 정말 불편한 일이니까.


I에게는 브로콜리와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브로콜리를 처음 키우기 시작하며 차차 쌓인 버킷리스트들은 하나둘씩 체크표시가 되기도 하고 새로 추가되기도 하며 균형을 유지했다.

아직 못해본 걸로는 브로콜리와 함께하는 해외여행 (제주도는 비행기타고 가보았다.), 브로콜리와 함께 타는 서핑, 브로콜리 어질리티 대회 1등 상 받아보기, 그리고 브로콜리 한번에 약 먹여보기 등등...


현실적인 것도 비현실적인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브로콜리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다, 브로콜리와 더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똑같았다. 언젠가는 이룰 수 있겠지, 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모아왔지만 이제보니 그런 확신도 없는 믿음을 왜 그리 철석같이 믿었는지 원망스러웠다. 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조금 여유를 내서 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와서 후회해봤자 아무소용없었다.


브로콜리의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알 수 없이 혼동된 감정들 속 떠오르는 걱정과 고민들에 머리가 아팠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문제가 생기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해? 아무것도 모를 브로콜리의 눈동자는 괜히 미안해질정도로 예뻤다.


문득 브로콜리를 처음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전문 브리더에게 입양받은 브로콜리는 건강하고 튼튼했다. 처음부터 새파란 눈동자와 지금보다 좀 진한 은색 털을 가졌던 브로콜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사랑스러웠다. 그 눈동자에 홀려 브로콜리는 I의 가족이 되었다.


브로콜리를 입양시켜준 브리더는 브로콜리는 몇가지 질병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릴 때 약하게 태어나서 더 조심해야한다고. 그래서인지 브로콜리는 다 커서도 보더콜리치고 작았다.

처음 집에온 브로콜리는 따로 교육시키지 않아도 손, 발, 엎드려, 기다려는 기본으로 했고 배변훈련도 완벽했다. 사고를 좀 (많이) 치긴 했지만 그정도는 어린 아이니까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짖음이 심해졌을 땐 따로 교육을 시키긴 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교육 없이도 잘 자라주었다.


I는 해봤자 답없는 고민따위 내려놓고 브로콜리와 아파트를 한바퀴 돌았다. 아무것도 모를 브로콜리는 늘 그랬듯 줄을 당기고 열심히 헥헥거렸다. 오늘따라 마치 필터를 씌운 듯 풀들은 더 싱그러워보였다. 꽃들도 더욱 활짝 핀것만 같았다. 늦겨울의 쌀쌀한 공기가 코 끝에 스쳤다. 희미하게 생기는 입김과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놀라우리만치 청아하고 맑은 하늘. 그 누군가가 보아도 종말 7일전의 하늘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I는 조금 만족스러웠다. 자신과 브로콜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볼 하늘들은 아름다울 것이고, 적당히 차가운 공기와 반짝이는 풀들도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에. 인류가 세상에서 사라진다한들 언제까지나 지구는 아름다울 것이고, I가 없다한들 브로콜리는 살아갈 것이었다. I가 없는대로,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을 쌓아가며.


어쩌면 인류의 종말이 다른 동물들의 발전의 위한 양분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I의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여전히


종말이 아쉬운 건 변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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