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고쳤다 지웠다 하다 포기했는데 시간 들인 게 아깝다는 생각에 다시 노트를 펼치고 영화를 다시 봤다.
여전히 영화 내용은 정신이 없다.
'아수라'는 안남 시장인 박성배, 그의 수행요원인 한도경, 박성배를 잡으려는 김차인 검사의 이야기이다. 한도경은 박성배를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한다. 김차인은 한도경의 약점을 잡아 박성배를 잡으려고 한다. 시장과 검사, 두 마리의 큰 고래 사이에서 터지는 한도경을 보여준다. 점점 쌓아져 가는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풀지 궁금하게 만든다. 확실히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영화에서 한 놈이라도 신뢰 가는 놈이 없다. 특히 주요 인물들은 특히 눈에 가식이 서려있다. 어찌 다들 연기를 잘하는지, 다들 선수인 만큼 태세 전환이 미친 듯이 빠르다.
오늘 말해볼 인물은 김차인 검사이다.
바로 이분이 김차인 검사
영화 속 어느 인물이든 아부와 가식을 담고 있다. 김차인도 마찬가지이다. 김차인은 32기 지방 법대 출신으로 학벌이 없어 라인을 잘 타 검사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자신의 상사인 오철순 부장 검사에게 압력을 받아가며 불법 수사를 감행한다.
김차인의 첫 등장은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등장한다. 그는 서울 시장인 박성배의 수행원인 한도경을 이용해 박성배를 구속시키려고 한다. 한도경은 '시장의 개'와 '검사의 개'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도경은 자신이 살 수 있는 보장이 확실했으면 둘 중 어느 곳이든 선택했겠지만 둘 다 그런 보장이 없었기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박성배를 체포하기엔 현실적으로 높은 벽이 존재했기 때문에, 한도경에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를 이용해야 박성배를 체포할 수 있는 증거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도경이 찍소리 못하게 약점들을 이용하여 수사에 이용하지만, 눈치가 제법 빨랐던 한도경은 맘 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가식 쟁이 김차인
김차인은 가식 쟁이다. 영화에서 가식 안 떠는 인물은 없겠지만, 한도경을 구슬리기 위해 존댓말을 해가며 '존중' 해주는 척을 한다. 첫 만남에서도 명함을 직접 전달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한도경에게 시키는 행동은 그가 처신할 수 없을 정도의 배신자의 역할을 시킨다. 정도가 없다.
약점에 몰린 한도경이 무릎을 꿇어도 이를 부담스러워하며 일어나라고 하거나, 면책제도가 있는 것처럼 그를 신뢰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그의 수행관인 도창학에게 폭행을 지시해 놓고 왜 이리 많이 때렸냐 둥 핀잔을 놓기도 하며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면 한도경을 조종한다.
실제로 부하의 커피에 담배를 버리거나, 눈 부시다며 조명을 꺼라는 둥 전혀 남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김차인과 한도경
김차인은 한도경을 두고 박성배와 대립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한도경을 사용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하지만 김차인은 한도경과 비슷한 인물이다. 자신의 상사인 부장검사의 압박을 받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한도경을 이용한다.
사실 김차인은 박성배와 대립되는 인물은 아니다. 김차인의 배후에는 자신의 상사인 오철순 부장검사가 있다. 실제로는 오철순과 박성배가 대립되고 그 사이에 끼여있는 인물인 김차인과 한도경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권력과 상황은 다르지만 김차인과 한도경은 묘하게 비슷하다.
장례식에서 한도경이 박성배를 도발할 때 도창학은 욕을 하지만 김차인은 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도발이 아닌 억압에 의한 울분이라는 것은 김차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부장검사에게 온 압박과 비슷한 종류일 테니 말이다.
김차인은 박성배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보다 한수 아래이다. 폭행이나 살인과 같은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직접 나서지 않는다. 수사에도 직접 지시만 할 뿐 전혀 나서지 않는다. 이와 반면에 박성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커터칼로 머리를 긁히고 팔을 자르려고 한다. 이 점만 봐도 김차인과 박성배는 그릇에 차이가 있다. 만약 장례식장에서 싸울 때 1인분 했으면 이겼을까..?
권력에 꼬리 내린 정의
박성배와 마주한 김차인은 쫄지 않는다. 박성배의 돈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로지 김차인의 목적은 박성배의 살인교사 증언. 불법 수사는 그렇다 치고 이 장면에서 김차인의 올곧은 성품은 인정할 만하다. 박성배에게 쳐 맞기 전까지.
박성배 일당이 김차인의 수사팀을 전부 제압한 후 김차인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목숨 구걸하며, 아부와 가식으로 그를 대한다. 그가 검사라는 배짱도 목숨이 달리니 별 볼일 없어졌다. 자신의 부하를 죽이라는 명령이 칼을 부여잡고, 총에 맞고서 앰뷸런스를 찾으며 살려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까지 한다. 박성배에게 목숨 구걸이 아닌 정말 시장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했으니... 박성배는 그의 가식에 질려 죽이고 만다.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고 자신의 몸까지 바치는 '박성배'나, 사이에 끼어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다 상황을 정리하려는 '한도경'이 권력에 내려오지 별 볼일 없고 목숨이나 구걸하는 '김차인'보다 낫다. 이영화에서 '낫다'라는 말은 어색하긴 해도
아마 이 영화에서 진짜 아수라판 같은 느낌을 준건 '김차인'이다. 일관성 있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입체적인 면모는 눈살을 찌푸리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