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사는 법
아귀와 고니의 마지막 대사를 항상 듣던 때가 있었다.
수학여행 때 친구들이 몰래 가져온 화투패에 우리는 항상 타짜의 대사를 읊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밑장 빼기라면서 그 친구를 때리곤 했다.
장난이지만 죽일 기세였지.
'타짜'는 누나의 이혼 위자료를 가지고 화투를 치다 돈을 다 잃고 평경장이란 타짜의 밑으로 들어가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고니의 이야기이다. 도박이란 매력적인 소재 때문인지 여기 나오는 인물 한 명 한 명 전부 매력적이다. 경상도의 짝귀, 전라도의 아귀, 전국적으로 평경장이라는 이런 소재도 좋았고 결말도 깔끔하니 어찌 더 괜찮은 도박 영화가 나올 것인가 의문이 든다.
오늘 말해볼 인물은 영화에서 강한 남자를 맡고 있는 곽철용이다. 그냥 남자가 아니다. 강한 남자다.
요즘 너무 유명해져서 다시 한번 영화에서 뵙지만 여전히 그는 호구였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남자다운 철학이 있더라. 그게 바로 '묻고 떠블로 가!' 남성미 하면 곽철용이지 않을까 싶다. 그에 대해서 천천히 이야기해보겠다.
곽철용은 17살 때부터 달건이 생활을 하면서 100명 중 잘난 놈 재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잡이 배신자들을 죽이면서 회장 자리까지 올라왔다. 두목이 아닌 '회장님' 소리를 듣는 걸 보면 그쪽 바닥에서 꽤나 유명한 듯하다. 볼링장이나 불법 도박장 규모만 봐도 충분히 그는 고단하고 험난한 길에서 살아남았다고 느껴진다. 도박장도 겉은 비닐하우스만 나름 체계를 가지고 다수의 카메라로 정확히 배팅을 확인하고 돈을 분배하는 것, 경찰에 떴을 때 무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위치보고, 대피할 때도 당황이란 보이지 않고 화재 대피 연습하는 것처럼 진행된다. 이것만 봐도 그의 경력이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진다.
고광렬은 곽철용을 이렇게 말했다.
곽철용 저 새끼는 아주 그 유명한.. 그... 뭐... 아.. 아주 뭐라 그럴까.. 아주 유명한... 어... sh... sheep 새끼?
자신의 도박장에 찾아온 고니에게 신명 나게 뜯기고 심지어 선수로 있던 타짜 '박무석'이 고니에게 농락까지 당해버린다. 담 키우기 전문가로 고광렬의 담을 키우고 고니에게 신사답게 행동하라며 조언까지 해준다. 남자답게 뜯긴 돈에 있어선 미련 없이 떠나는 듯 하지만 곽철용이 sheep새끼인 이유는 여기서 등장한다. 고광렬은 그를 저렇게 표현한 건 도박 실력 때문이 아니다. 바로 '소화가 안 되는 돈' 때문이다. 어떻게든 잃은걸 돌려받으려고 한다. 이유는 고광렬이 언급한 곽철용의 돈은 '소화가 안 되는 돈'이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하던 다시 따기 때문이다.
쿨한 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란'이라는 자신에게 빚진 고객님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등 구질구질하게 군다.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는 화란이에게 앵기기 시작한다.
나 깡패 아니다. 적금 붓고, 보험 넣는 사람이다.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네가 내 순정을 짓밟으면 마! 그땐 깡패가 되는 거야! 내가 깡패처럼 널 납치라고 하랴
크으... 너란 남자. 하지만 고니가 나와 화란이와 데이트 일정을 잡는 모습을 보며 그윽하게 쳐다본다. 얼마나 고니가 싫을까. 돈까지 뜯고 여자까지 뺏기고. 하지만 그는 여유롭다. 왜냐하면 그는 곽철용이기 때문에!
고니와의 결전에 날, 고니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커피에 약을 탄다. 이래서 소화 안 되는 돈이지.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는 간사함이 보인다. 저런 식으로 저런 위치까지 갔겠지. 하지만 고니에겐 통하지 않았다. 계속 지고 지고 진다. 이상하리 화투 칠 때만큼은 고니와 동네 형같이 이야기한다.
'높으신게 나오셨나 보네요~',
'좀 높지~'
추석 친척들끼리 모여서 치는 화투마냥.
그리고 그의 필살기
묻고 떠블로 가!!!
아마 고니의 타짜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하다 결국 끝을 보게 하는 능력. 결국 '한 끝', 가장 낮은 패로 돈을 다 내어진다. 아마 곽철용의 상태는 마치 야구 경기에서 상대방에게 홈런 신기록을 내어 준 느낌일 것이다.
고니는 분명 곽철용의 한방 있는 성격을 정확히 간파했을 것이다. 곽철용은 지금까지 자기 잘난 맛에 살았으니.
착잡하지만 고니를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돈 잘 버는 프리랜서가 어찌 월급 꼬박 받으며 일하겠냐. 고니의 적절한 대사가 아마 곽철용의 아픈 살을 꼬집었다.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새끼 밑에서 일을 합니까?'
카메라도 안되고, 약도 안되고, 이약에 배신자가 있다. 이게 내 결론이다.
박무석이 배신자라는 것을 뒤늦게라도 알았으니 다행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참 잘한다. 허나 곽철용은 고치는 일에서 끝낼 남자가 아니다. 소화 안 되는 돈을 받기 위해 순정을 뺏어간 화란이를 납치한다. 고니는 결국 곽철용 밑에서 일하기로 한다.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상황이지만 여포를 맞이하는 동탁처럼 어찌 싫다 하겠는가. 곽철용도 분명 생각했을 거다. 칼은 내가 쥐고 있으니 절대 쉽게 배신 못할 거라고. 마포대교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곽철용은 마포대교를 지나지 못했다. 고니가 괜히 고니겠는가? 운전하는 놈만 때렸는데 곽철용이 덩달아 죽어주니 얼마나 좋겠는가. 운이라고 표현하기엔 고니는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었다. (가방에 솜이불 한가득) 여포 손에 죽어버린 동탁의 흔한 스토리다.
덕분에 고니는 아귀를 소환했고, 아귀는 실력으로서는 고니보다 한 단계 위였지만, 사람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한 고니의 압승이었다. 고니는 평경장의 말대로 돈에 욕심을 버리고, 진정한 타짜가 되었다.
한방 있게 밀고 나가는 곽철용은 결국 중간 보스의 운명이었다. 고니 손에서 놀아나기만 했으니 지금까지 100명을 제치고 회장까지 간 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가 잘못한 게 있다면 아귀랑 아는 사이라는 것.
적절히 수단으로 이용되는 인물이지만, 적인 고니에게 밑에서 일해보려고 끌어드리는 포용력, 묻고 떠블로 가는 일관성과 추진력, 배신자를 찾아내는 통찰력, 나 때는 말이야의 꼰대력, 볼링핀으로 뚝배기를 깨버리는 정확성이 출중한 인물이다.
물론 마지막 말은 애써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