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은 감씨다.
GAM.
甘.
내 성을 보면 다들 특이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럼 나는 감우성, 감사용을 예를 든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 라고 반응하며 끄덕인다.
내 이름은 특이하진 않은데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살면서 동명이인을 만나본 적 없다) 성이 워낙 특이해서 다들 이름보다 성을 기억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편하게 나를 '감'이라고 많이 부른다.
성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겪는 몇 가지 경험이 있다. 특히나 감씨라서 겪는 여러 상황들이 있다.
먼저, 감씨라서 나는 항상 1번이었다. (이는 가, 각, 간, 갇, 갈, 감 같은 나보다 빠른 성씨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딜 가나 항상 1번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1번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교 학번에도 1번. 언제나 1번. 모든 시험, 수행평가 첫 순서, 실기도 첫 순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첫 순서는 항상 부담스럽다. 그래도 나는 나름 적응을 잘했던 것 같다.
첫 순서에 대한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대학시절, 테니스 수업을 들었었다. 기말고사 실기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이용해서 백코트 위치로 공을 넘기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백코트 위치로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세가 이상하면 감점을 하겠다고 했다. 첫 번째로 시험 본 나는 20개 중에 8개 정도 성공했었다. 유독 자세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신경 쓴 것치고는 형편없는 결과였다. 또 공을 던져 주었던 도우미가 처음 공을 던지다 보니 이리저리로 던지면서 타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렇다. 핑계이다.)
그런데 내 뒷 순서부터 도우미가 안정적으로 공을 던져 주었고, 다들 교묘하게 자세를 조금씩 바꾸며 공을 넘겼다. 순서가 뒤로 갈수록 사람들은 감정될 만한 자세와 안될 자세의 경계를 찾았고, 그렇게 다들 좋은 점수를 챙겨갔다. 나는 이에 억울해 교수님에게 "도우미가 공 던져주는 것도 그렇고, 첫 순서라 이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재시험을 치렀다. 그 재시험에서 나는 5개를 넘기면서 최악의 점수를 받았었다.
나대지 말 걸.
그 날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시험을 마무리했고, 그날 내내 빨간 채로 지냈다.
두 번째는 누구도 나를 감씨로 보지 않는다. 다들 오타라고 생각하고, 강 씨나 김 씨로 본다. 얼마 전 집으로 날아온 도시가스 청구서에 김 씨로 적혀 있었다.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감나무 할 때 감'이라고 다시 알려드렸다.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가 내 성을 헷갈려하시면 '감나무의 감'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게 되었다.
세 번째는 기억하기 쉽고 기억되기 쉬운 이름이다. 이름이 특이한 사람들도 한 번쯤은 겪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몇 년 만에 뵙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도 내 이름은 기억 못 하시더라도 성은 기억하셨다.
이것도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 대학교 동기가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보고 회사 동기에게 "대학교 동기 중에도 저런 이름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그 회사 동기도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에도 같은 이름 있었어. 근데 성이 조금 특이했지". 이를 들은 대학 동기는 성이 무엇이냐 물어봤고, 둘은 동시에 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회사 동기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이름이 특이하니 이런 일도 있더라. 참 세상 좁다 좁아. 그래서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대학교 동기에게 연락이 와서 안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건 정말 좋지만 딱 하나 불편했던 것은 대학교 교수님이 내 이름을 절대 안 까먹는 것이다. 바로 기억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신다.
넘치는 제자 사랑. 하하하하.
어릴 때는 김, 이, 박, 최 같은 성이 부러웠다. 뭔가 그쪽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이랄까.
같은 이름을 가지면 어떤 느낌 일까도 궁금하고도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밋밋하고 평범했던 내가 이름이 특이하단 이유로 나를 특별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감나무로 지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어머니한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