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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가는 시간

by 감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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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았을 뿐 사진기의 셔터는 끊임없이 누르며 지냈다. 가양대교가 보이는 한강 변두리에서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일상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잠시의 정리하기엔 충분한 곳이었다.

사진은 계속 찍었지만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차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담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를 연결시켜 문장을 만들고... 에서 멈추는 게 지금까지 나의 남은 시간을 보낸 방법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부작용은 상당하다. 모두 남아있을 때 자리를 떠나는 것이 어색했고, 저녁 먹기 애매한 시간에 뭐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10시쯤 되었을 땐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고, 어영부영 고민만 하다 시계가 하루를 넘어가면 자야겠다는 결심을 하기 바빴다. 상대적으로 고되지도 않으니 잠마저 달콤하지 않았다.


바쁜 일을 털어버렸을 당시 분명 이럴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충분히 했지만 생각보다 더 크게 허무함이 다가왔다. 저녁 있는 삶이 이토록 사무칠 정도로 허탈할지 몰랐다. 뭐라도 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해 보고, 못했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봤지만 그동안 과포화 상태였던 마음처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허탈에서 시작하여 허무에 도달한 나는 의미를 중요시하는 내 마음에 무의미를 전해주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 도달한 것이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나는 그저 성실하게 가고 있는 시간 초침마냥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떠한 일에도 시간이 빨리 가고 늦게 가고를 느낄 수 없겠지. (다시 일이 많아진다면 시간의 가속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과속하는 차가 나를 덮칠 상황이 왔을 때 안 피할 자신이 있다.)


시큼한 마음이 한가득 안은 채 눈 감고 뜨고를 반복하면 내일은 괜찮겠지 기원하고 있다. 이건 분명 언젠가 해결될 일이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언제까지 허무의 세상에서 허우적댈 수 없기 때문에 글을 토해내고 있다. 허무를 끝내기 위해 내일도 뭐라도 하기 위해 작은 새끼손톱만한 셔터 버튼을 누를 거고, 무거운 다리로 땅을 차며 달릴 것이다. 하지만 허무는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채우면 끝나는 걸 알기 때문에 나의 결심 또한 허무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해는 넘어갔지만 아직 붉은 기 남은 하늘을 보다 보면 오늘 하루가 가기엔 아쉽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영화는 끝났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엔딩 크레딧에 여운을 느끼지 못하고 어떠한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허무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영화를 찾고 엔딩 크레딧을 찾기까지 계속 허무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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