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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신데렐라는 없었다.

백마까진 안 타도 왕자는 있을 줄 알았지

by 나나키


신데렐라를 꿈꾸지 않는 여성이 존재할까? 다들 아닌 척하면서 한 번은 꿈꾸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그랬다. 일찍이 시집가서 남편 돈으로 살림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내게도 저런 왕자님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취집 한 그들의 속 사정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환경 탓이든 중요치 않았다. 그 당시 내 눈엔 그들은 남자 잘 만나 잘 먹고 잘 사는 호화스러운 팔자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부러웠고, 나는 왜 그런 호사스러움 누리지 못하나 짜증 났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못난 시기심은 되지도 않는 허세를 만들어냈다.



‘취집 하는 게 뭐 좋은 일이야?! 내가 벌어서 쓰는 게 속 편하지! 돈 벌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내가 엄청 자랑스러워!‘



자랑스럽긴 개뿔. 사실 엄청 부러웠다. 남편이 카드를 주는 삶이란 어떤 걸까. 쟤는 어떻게 저렇게 돈 많은 집에 시집갔지, 남편은 또 왜 저리 괜찮아, 신축 아파트에 들어간다고? 와, 미쳤다! 하지만 끝까지 부럽지 않은 척했다. 부러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마다 일하자! 일, 일, 일! 을 외쳤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하는 나를 대단하다고 부추겨 세웠다. 돈 많은 남편에게 시집간 그들보다 스스로 돈을 버는 게 진짜 찐 멋짐이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말이다. 그 억지스러움 속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내게 더 멋진 왕자가 올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언제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혹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오랫동안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다. 집이 크게 망했는데 그 여파가 상당히 길었다. 뭐 때문에 망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세상 물정 모르던 아빠가 잘 살아보겠단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사기였다는 것만 안다. 집에 덕지덕지 붙은 빨간딱지, 무서운 목소리로 아빠 이름을 연이어 부르는 아저씨들, 매일 같이 찾아와 소리 지르며 온갖 것들을 던지고 가는 아줌마 무리들, 거기서 파묻혀 울고 있는 엄마... 놀랍지 않나?! 드라마에서 볼법한 이런 일들이 어릴 때부터 아주 일상적이었다는 게. 내 인생 정말! 특별하구만!



그렇게 망한 우리 집은 쫓겨나듯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사를 했고(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다! 힘들 때 바다까지 못 봤으면 정말 이 세상 어떻게 살았을지!), 아빠의 회생은 꽤 오래 걸렸다. 빚을 갚기 위해 빌린 빚이 또 빚을 만들고, 그 빚의 이자를 못 갚아 이자를 또 빌리고...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엄마도 바로 일을 시작했고, 나 역시 바로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고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은 바로 아빠에게 넘어가기 바빴다. 그렇게 나의 지독한 일꾼 생활이 시작됐다.




지독한 일꾼 생활은 졸업을 해도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의 역할로 한층 무거워졌다. 가끔씩 부모님은 아유, 오버가 심하다! 뭐 가장까지야!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때의 삶의 무게는 정말 가장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 신데렐라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힘들게 살았으니까, 내 인생은 시작부터 남달랐으니까 더 큰 보상이 있을 거야! 로또가 되거나 아니면 겁나 돈 많은 남자가 나한테 반하거나! 으이그,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앉았네. 정말.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이년아, 정신 차려.



그래도 힘들면 힘들수록 그런 기대감은 커져만 갔다. 누군가 나를 여기서 꺼내줄 거란 믿음, 공주 같은 생활을 누리게 해 줄 거라는 기대감... 남편을 만났을 때 그 기대감은 최대치로 증폭했었다. 현실도피로 떠난 워홀 생활에서 만난 남편. 외국에서 연애라니! 게다가 연하! 일단 시작부터 로맨틱하지 않나?! 얘기 나눠보니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이 유학 보내줬단다. '와우! 나 이렇게 취집 하는 거나?! 나 이제 궁궐 들어가서 살면 되나!! 파이널리!!!!' 환호를 외치며 33살에 결혼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에.



외국에서 영주권을 따려던 남편의 계획이 틀어졌고, 그렇게 가진 것 없이 우리는 결혼이란 걸 했다. (코시국에는 결혼식 비용이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말 저렴했다.) 그리고 남편이 있는 부산에 왔다. 앞으로 달라질 삶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서 말이다.


이때만 해도 진짜 공주님 되는 줄 알았지.


기대가 클수록 좌절이 크다고 하는데 기대가 클수록 좌절은 크다. 맞다. 이 말은 찐이다. 저어어어엉말 크다! 남편의 오랜 외국 생활은 한국의 첫 사회생활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인 남편의 월급은 내 공과금을 내기에도 벅찼다. 궁궐 같은 삶까진 아니어도 다시 가장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는데... 현실판 신데렐라는 없었다. 또 다른 형태의 가장이 다시 태어났을 뿐이었다. 신데렐라, 너 진짜 동화 속에만 있는 거 맞구나?! 신데렐라를 꿈꿨던 나는 다시 가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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