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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결혼하면 달라질 줄 알았지.

by 나나키


대상포진에 걸렸다. 와, 이거 아프다고는 들었는데 진짜 새로운 아픔이었다. 수십 마리 개미들이 몸에 붙어 내 살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가렵다가 쓰라리다가 엄청 화끈화끈 거리고 뭐 이런 병이 있나! 얼마나 심해졌길래 이렇게 아프나 화장실 거울에 몸을 비춰보니 으... 불개미 뭉텅이들이 줄을 지어 있는 듯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주말, 세상 처음 겪는 괴로움에 잠 한숨 못 자다니! 몸 꼬락서니는 이게 뭐람! 눈물이 핑 돈다.



"최근에 오셨었는데 이번엔 대상포진이네요. 면역력이 너무 떨어진 거니까 푹 쉬는 게 중요합니다."

"네... 저도 쉬고 싶습니다. 허허."



멋쩍게 웃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바람까지 분다. 아오, 진짜! 씩씩하게 걷고는 있지만 정말 세상 우울해지는 날. 나 정말 왜 이러고 사는 거냐!




최근 일을 많이 벌렸다. 오전엔 바리스타강사로 오후엔 교습소 수업, 남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올해 편입한 사이버대학 공부를 한다. 바빠지는 만큼 운동도 틈틈이 하고 영양제도 때려부었다. 일을 저지르고 해 나가기 바빴다. 뭐가 그렇게 너를 움직이게 만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결혼 한 친구들 중 내가 제일 바쁘다. 근데 웃프게도 내가 제일 가난하다. 친구들도 나도 남편 따라 지역이동을 했다. 이동한 친구들은 출산과 육아 혹은 지역이동을 계기로 잠시 휴식기를 가진다. 그래도 생활이 된다. 나는 안된다. 사회초년생인 내 남편의 소박한 월급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계기가 뭐가 됐든 능력을 키우는 건 좋은 일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열심히 지내지만 몸이 아픈 날은 강철정신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아... 내가 생각한 인생은 이게 아닌데... 내 인생 진짜 드럽게 빡세네!





한심하다 여겼던 취집을 나는 오래도록 바랬다.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진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고생만 정말 징하게 한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에 결혼하고는 좀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치만 웬걸. 다시 가장노릇하게 생긴 현실이라니! 이건 내 인생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괴로웠지만 시간은 정말 잘 갔다. 봄에 꽃도 제대로못 본 것 같은데 한 해는 왜 그리 빨리도 가는지.



연말이 올 때마다 생각은 더 많아졌다. 가뜩이나 터질 것 같은 머리는 더 터질 것 같고 왠지 조금 더 서글퍼지는 시기가 연말이다. 한 해는 뭘 하고 보냈지? 결혼을 하긴 했는데 왜 나는 더 거지가 되는 것 같냐... 이 와중에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남들은 잘만 사는 거 같은 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러고 있나. 새해에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한 마음에 누굴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때마다 찾아가는 힐링공간 도서관에서 내 마음을 한 줄로 딱 적어놓은 책을 만났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제목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덥석 책을 집어 들었다.




신은 비극과 상실을 일으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가슴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 인생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세상이 절대 아니며 내가 상상한 사랑이 아니다. 신도 내가 생각한 신이 아니다. 지구별은 단순히 나의 기대와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좌표 계산이 어긋나 엉뚱한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든 일들이 나의 제한된 상상을 벗어나 훨씬 큰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中



고등학교 문학동아리에 참여할 때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류시화 님의 시집. 그렇게 내 눈에 위대하기만 한 분도 이번 인생이 원하던 인생이 아니라 하신다. 심지어 엉뚱한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들 정도라고. 그러나 본인의 상상을 벗어나 더 큰 그림이 펼쳐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시는데 음... 저는 너무 마음이 코딱지만 해서 전혀 다행스럽지 않아요, 작가님... 저는 어떡하죠? 책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가며 솔직한 마음을 적어본다. 작가님이 말씀하신 삶의 태도를 배우려 부단히 애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옹졸한 인간의 마음은 좀처럼 넓어질 기미가 없다. 저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고요! 부자 되고 싶고요! 부자까진 아니어도 가장은 진짜 싫어요! 돈 벌기 싫어요! 저도 욕먹어도 결혼도 했으니 남자덕도 보면서 살아보고 싶어요! 얼굴도 뵈지 못한 작가님께 하소연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건 내가 꿈꿨던 인생이 아니야.




결혼 후 정말 그랬다. 이건 내가 꿈꿨던 인생이 아니었다. 한동안 매일이 괴로웠다. 결혼을 하니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과 살림살이가 비교되기 시작했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아이를 낳은 친구는 차원이 다른 힘듦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행복이 배가 되어온다며 일상을 감사히 여겼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외톨이고, 돌연변이 같았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 돈은 무조건 벌어야만 하는 상황, 멀뚱멀뚱 서있을 여유조차 없는 상황...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어려울 때는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우리는 희망하고 , 절망하고, 희망한다. 이것이 우리의 날갯짓이다. 물에 얼굴을 받고 넘어져 있다면 당신이 할 일은 얼른 일어나는 것이다. 물속에서 산소를 찾거나 아가미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中



어려울 때는 스스로 행복하라.

내가 생각한 인생이든 아니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들을 찾으며 극복해나가야한다. 좋은 글귀 읽으며 마음을 다 잡으려하지만 몸에 잔뜩 터진 수포로 아파서 어찌할 바 모르는 이런 날엔 정말 주저앉고만 싶다. 진짜 내가 원하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



완벽한 안정이란 정말 없는 걸까? 늘 은은한 불안과 우울감을 지니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나간다. 그 무언가가 생계를 넘어가는 순간은 대체 언제인 걸까? 때때로 잔잔히 깔려있던 우울과 불안이 요동치는 날이면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을 여력조차 없다. 모두가 이렇게 산다는 데 과연그럴까? 다들 자기만의 지옥을 가지고 있다는 데 타인의 자옥은 나의 것보다는 덜하지 않을까란 이기적인 생각마저 차오르는 이런 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주 한복판의 먼지덩어리가 되어 사라지는 게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며 하루를 흘려보낸다. 내 인생, 진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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