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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혼하자.

by 나나키

"우리, 더 늦기 전에 다시 각자 갈 길 가자."





상상과 다른 모진 현실에 결국엔 이 말을 뱉어버렸다. 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까? 이혼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뱉다니! 내 인생에 이혼이라니!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큰 일은 또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반갑기도 했다. 결혼하면 가장의 역할에서 벗어날 줄 알았던 것 처럼, 이혼을 하면 다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이혼 후 어떻게 살지에 대한 대비가 있었는지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도망이 가고 싶었다. 예상했던 대로 남편은 아무말이 없었다. 그 짦은 침묵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사람의 의견이 그 당시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남편의 월급으로는 공과금 내기도 빠듯한 현실. 오전엔 바리스타 강사로, 오후엔 교습소 운영, 남는 시간엔 한국어 교원 공부를 하며 밤낮없이 움직이며 몸과 마음 모두 상해버렸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 까지, 뭘 위해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이젠 다 그만 두고 싶었다. 남편도 물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노력과 월급이 비례한 것이 아닌 각박한 현실이 나를 여기까지 내몰았다.



예상대로 남편은 자기가 어떻게든 더 벌겠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면 내가 해결하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짠하기만 하다. 미안, 남편아) 안다. 남편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래도 그땐 남편의 그 눈물도 버겁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이 사람의 마음은 여린걸까. 이러니까 더 책임감이 생기지! 내가 어떻게든 지켜야될 것 같잖아. 남편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이런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혼인신고도 1년동안 하지 않던 우리였다. 요즘 여러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지만 나의 경우 이유는 하나였다. 법적으로라도 묶이고 싶지 않아서.



돈을 버는 게, 두 사람 벌 몫을 한 사람이 더 벌어서 생활한다는 게, 그리고 그걸 내가 한다는 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을 덜 사랑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 누가 등떠밀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한 사람이라도 벌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힘들단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도망가고싶은 마음에 불을 붙였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내게 날개까진 아니여도 족쇄를 채울 줄은 몰랐던 결혼. 1년도 안되서 끝내게 생겼구나. 주변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가족들한테는 또 뭐라고 얘기해야할까. 퇴근하고 홀로 놀이터에 앉아 맥주를 연달아 퍼마셨던 날들이었다. 처음엔 거기 뭐에요! 외치던 경비원분도 나중엔 딱해보였는지 또 그러고 있냐, 고만들어가셔라는 말을 하시고 자리를 비켜주셨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머리는 계속 복잡해져만 갔다. 아... 이혼하면 나 뭐때문에 이혼했다고 하지...?



호주와 한국, 친구들이 사이버 연애냐면서 놀려댈만큼 2년이 넘도록 화상통화로만 연애했던 남편과 나. 그렇게 해도 끊어지지 않은 연이었다. 결혼 전에도 가장이었던 나는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영상통화하는 게 하루의 낙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도 못자고... 그러다 남편이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고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코시국이 한창이던 때에 우리는 결혼했다. 설마 결혼할 줄이야 했던 모두가 놀랐고, 남편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 있냐면서. 근데 그 사람과 내가 헤어진다니. 다들 내가 복에 겨워 정신줄을 놓았다 할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나 돈벌기 힘들어. 나 하나만 먹여살리고 싶어서 관뒀어! 이젠 진짜 나만 먹여살릴려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줘야지! 이렇게 말하면 우리 가족들은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테고, 속사정 모르는나머지 사람들까지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그때도 알고는 있었다. 이혼이 답이 아니라는 걸.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걸. 짧은 결혼 생활은 내게 이 교훈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줬고, 나의 두번째 도망은 좀 더 신중해야만 했다. 두번째 도망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도망가지 못했다. 아니, 안갔다.



모진 소리해도 속없이 나 좋다하는 저 남자를 결국 나는 못떠났다. 사회초년생이니까 1년만 더 봐준다고 남편에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다시 생각할 조정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또 1년이 지나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내 1년뒤를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 결혼.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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