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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왜 아빠랑 헤어지지 않았어?

엄마 아빠는 찐 부부였다.

by 나나키

"엄마... 나 집에 좀 있어도 돼?"


결혼하고 내려온 부산. 결혼하고 잘 사는 모습 보여도 모자랄 판에 걱정은 끼치지 말아야지.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래도 힘들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은 엄마였다. 이혼을 해, 말어 여러 복잡함도 달래고 잠시 떨어져 있으면 남편에 대한 이유 없는 원망도 가라앉을까 싶어 친정에 가기로 했다. 크게 숨을 내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당연히 되지. 근데 너 여기 아예 살려고 오는 거는 안돼. 며칠 밥은 해줄게~"


와우... 세상 모든 엄마들은 점집 하나씩 차려야 한다. 아니 내가 이혼을 고민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티 낸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엄마는 확실히 내 머리 꼭대기에 있다. 나이를 제법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 비하면 난 아직 한참 멀었다.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아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엄마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는 신랑 놔두고 혼자 이렇게 친정을 오는 딸년이 어딨느냐 오자마자 폭풍 잔소리다. 너만 오면 되냐, 그럼 남편 밥은 해주고 왔냐 쉴 새 없이 다다다다 귀에 총알을 쏘고 있으면서도 식탁엔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아, 나 진짜 집에 왔구나. 볼 때마다 야위는 것 같은 엄마 아빠는 부엌에서 내내 바쁘다. 다 늙어서 딸년 밥해 먹여야 되겠느냐면서도 둘이 붙어서 잘 익었니 마니, 뭐를 더 넣어야 하느니 마니 투닥거리며 내 최애 음식인 삼계탕을 고아냈다.



사실 엄마에게 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엄마는 왜 아빠랑 이혼하지 않았느냐고. 왜 아빠랑 살기를 선택했고, 지금 그렇게 둘이 삼계탕 투닥거리며 끓일 애정이 어떻게 있는 건가 묻고 싶었다. 아빠가 사업하다 망한 값을 엄마는 고스란히 치러야 했다. 근데도 엄마는 이혼하지 않았다. 내 앞에서 정말 이젠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엄마는 지금도 아빠와 산다. 심지어 전보다 사이가 어째 더 좋아진 상태로 말이다.



"엄마, 엄마는 아빠 안 미워? 한 여름에도 기름통 앞에서 손 다 물집 잡히고 치킨집에서 일했었잖아. 누가 알바를 10년 넘게 하냐고... 엄마 시간 안 아까웠어?"



삼계탕을 먹고 향한 목욕탕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니네 아빠? 아유~~! 지겹지! 돈도 못 벌고! 진짜! 애정 표현이 많아, 다정하기를 해, 요즘 말로 츤데레도 아니고 말이야! 근데 그냥 내 눈에만 보였던 마음이 있더라~ 그거 보고 산 거지~ 뭐! 자식들도 있었고... 인생 별 게 없어, 이것아. 돈 없어서 힘들고 남편 밉지? 나는 지금도 미워ㅋㅋㅋ 근데 그건 돈 많아도 미워ㅋㅋㅋㅋ 그냥 남편은 원래 그런거야...ㅋㅋㅋ "



신기했다. 엄마는 진짜 정~~~ 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후회의 뜻이 비칠 줄 알았다. 내 예상과는 한참 벗어나 오히려 유쾌하기까지 한 엄마의 답변이었다. 엄마와 아빠를 보며 결혼 생활이라는 게, 부부라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내가 왜 결혼을 했는지, 뭘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목욕하는 내내 생각의 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친정집이 보였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친정집이었다. 매일 빚 갚느라 허덕이던 시간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살기 바빴기에 자주 날이 서있곤 했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가장 가까운 사이였기에 서로에 대한 원망이 배로 더 컸었다. 그런 시간들이 치유되는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이젠 보인다. 이곳에는 사랑이 너무 많았는데 그 사랑을 내가 너무 못 봤다는 걸.



내 차비와, 학비와, 집안의 빚을 갚기 바빠 잠만 자던 그 공간이 한없이 편안한 곳이었다는 걸 떠나고 와보니 알았다. 가장 노릇하면서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집이 내가 제일 그리워하는 공간이고, 가장 먼저 찾아오고 싶은 곳이었다는 걸. 정말 아이러니 하지만 내게 하나의 깨달음을 줬다. 지금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하던 남편과 있는 그 공간과 시간이 나중엔 이렇게 그리워질 수도 있겠구나. 내가 많은 걸 놓치고 있었을 수 있겠구나... 엄마 아빠의 투닥거리는 뒷모습에서 많은 걸 느꼈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리고 돌아간 후에 내 마음이 많이 달라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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