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봄날은 내가 만들어 가자!
갑자기 브런치 알림이 울린다. 조회수가 1000이 넘었다. 와! 대박! '우리, 이혼하자'라는 자극적인 제목 때문이었을까? 조회수는 10000까지 찍었다. 조회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싱기방긴데 세상에 만이라니! 들뜬 마음도 잠시 글 밑에 달린 댓글에 생각이 많아졌다.
“이 글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참 못난 사람입니다. 이렇게 예쁜 사랑을 포기하려 하다니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저 감기에 걸렸을 뿐인데..."
"글쎄요... 남편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고 단지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적응이 필요할 뿐인데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
다소 거친 글들이 있어 당황했지만 이 두 개의 댓글이 특히 와닿았다.(진짜 감사합니다, 저 덕분에 뼈 엄청 맞고 정신 차렸거든요!) 전부 옳은 말이었다. 나는 못난 사람이 맞았고, 과도한 기대로 인해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성인이 되자마자 외국 생활을 했다. 회계학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곳에 정착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한국에 오기 싫어했다. 근데 나 때문에 왔다. 코로나가 큰 이유였지만 내가 호주로 갈 수 없어 남편이 왔다.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6년이 넘는 외국 생활이 한국 취업시장 진입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었지만 중퇴는 인정받지 못했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치킨집 알바부터 시작해 나랑 결혼이란 걸 했다. 돈이 없어도 한결같이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었고, 자격지심이며 열등감, 불안감을 내게 한 번도 비추지 않(못했)던 사람이기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의 감사함을 나는 잊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몰랐을까. 왜 잊었을까.
생각해 보면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특별할 사람이 돼야 된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실제로 그럴 줄 알았다. 별명도 신데렐라였으니 그 별명처럼 죽어라 고생해도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호화스럽게 살 줄 알았다.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나를 보며 12시 되기 전 사라지는 신데렐라 라고 친구들이 조롱할 때 앞에선 웃었지만 뒤에서 울던 날이 많았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빚이 많을까... 알바 세 개를 뛰어도 빚이 계속 생기기만 하는 것 같던 10대와 20대, 150원짜리 자판기 우유로 하루하루를 버텨갔던 나의 지나간 시간은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린 기억이다.
고생이 심했으니까, 그동안 정말 가족을 위해 벌었으니까 나는 어디에서라도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부모님의 사랑이 내 노력 이상의 보상이라는 점을 이제야 어렴풋이 느끼지만 결혼을 할 당시에만 해도 내 보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착지 없이 무의식 속에 흘러 다니던 보상 심리가 죄 없는 남편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남편도 똑같은,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불안하고 힘들었을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이다. 그걸 나의 힘듦과 보상심리로 인해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게 맞는 것 같다. 그것까지 보면 내가 또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될까 봐, 과거의 경험으로 쌓인 걱정, 불안감으로 휩싸인 나는 남편을 보듬어 주려하지 않았다. 이혼하자고 덤볐을 때 남편의 속은 어땠을까. 아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는데 대체 너는 뭐가 문제냐며 윽박이라도 한 번 지를 법했을 텐데 남편은 되려 자기가 아니라 돈이 문제라면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없겠느냐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여린 사람을 너무 모질게 대했다.
이젠 각성을 해야 한다.
‘그래! 같이 벌어도 시원찮은 판에 뭔 신데렐라 같은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정신 차리고 돈 벌자! 나도 미친 듯이 열심히 벌어서 우리 코로나로 못 간 신혼여행 가자! 우리 만났던 호주도 다시 가보고! 기다려라 남편!!! ’
그렇게 나는 취집대신 가장이 되기로 했다. 결혼 전과 마찬 가지로 빚을 갚고, 가족을 챙긴다. 이런 상황에 청승을 떨어던 적도 있지만 요새 대출 없는 사람이 어딨 나! 빚도 능력 이랬어!!! 나 능력자야! 헛된 외침일지라도 시원하게 한 번 외쳐본다. 그리고 이젠 적극적으로 돈을 번다. 투잡을 뛰고, 미래를 위해 대학에 편입했고, 다시 빚을 갚고, 부모님을 챙긴다. 신데렐라는 없다. 그런 호화스러운 취집 생활은 있을 수 없고 한 사람에게 바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취집 대신 가장! 처음엔 좀 이 말이 서글펐는데 그래도 이게 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의 다른 정체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왕이면 이번엔 좀 더 멋들어진 가장이 되어보기로 했다. 청승 떨지 않고, 좀 더 씩씩하게! 여전히 가끔씩 친구들과 비교될 때도 많지만 걔네는 걔네고 나는 나니까! 돈, 열심히 벌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