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름 May 29. 2021

부부의 세계


추천곡 : 차이코프스키 '피렌체의 추억'


2020년을 휩쓸었던 드라마 중 가장 참신했던 작품을 뽑으라면 부부의 세계를 택하고 싶다. 접하기 쉬우듯 하면서도 흔치 않은 스토리로 시청자들을 휘어잡은 드라마는, 연일 고공행진을 보이다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불륜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족 속에서 인간 심연의 복잡함을 절묘하게 다루었기에 웰메이드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물불  가리고 사랑에 빠져 서로에게 눈이 멀어 있을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단점과 불만족이, 세월이 쌓이다 보면 애증으로 점철되고, 결국 처음 출발할  서로가 상상하지도 못한 불행의 길로 치달리는 결말은 그리  설지 않다.


서양 음악사에도 이러한 부부의 세계가 있다.


 번째로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부부로 '사랑을 위하여'에서 소개한 차이코프스키 부부가 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작곡가인 그는 10 연하의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자살을 불사한 열렬한 구애에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는 아내의 사랑을 포용할 수 없던 관계로 결혼 생활이 순탄할 일이 없었다.


차이코프스키는 3달도 되지 않아 끝내 아내에게서 이혼 소송을 하며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이때 쓴 '피렌체의 추억'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심신이 많이 망가졌는지 간접적으로 느껴질 만큼 우울한 곡임을 알 수 있다.


말년에 차이코프스키 자신은 신경쇠약에 자살을 시도했고, 아내는 우울증 끝에 20년이나 지낸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서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세계에 발을 들인 탓에 이들의 세계는 비극적 세계로 끝맺는다.


둘째로 아내만이 만든 세계에 갇혀 살며 평생을 고생한 이도 있었으니 바로 하이든이다.




역사상 교향곡 최다 작곡가인 하이든은 모르친가에 근무하기 전부터 거처하고 있는 가발 쟁이 켈러가(家)의 딸인 테레제에게 연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양친에 의해서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정해져 있었고, 상당히 신중한 성격이었던 하이든은 28세 되던 해 테레제의 아버지 켈러의 권유로 테레제를 단념하고 하이든보다 3세 연상인 언니 마리아와 결혼하게 된다.


하이든 쪽 의견이기는 하나, 마리아는 박색인 데다 잔소리가 많고 신경질, 질투, 허영, 낭비벽 등등 결점은 골고루 갖추고 있었으며, 심지어 하이든이 갓 작곡한 오선지를 냄비받침으로 쓸 정도로 몰지각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리아는 아기도 못 낳는 불임이었기에 하이든은 도저히 그녀가 만드는 세계에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조차 없었다. 그 스스로도 "그녀와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한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각자 애인은 가지되, 가톨릭 교리상 이혼은 하지 않는 기괴한 형태를 가지며 평생을 화석처럼 굳어진  살아갔다. 하이든의 세계는 각자의 길을  차이코프스키보다 어쩌면  불행한 부부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 번째로 서로의 세계를 최대한 이해하며 결혼을 지속한 이들이 있으니 모차르트 부부이다. 비록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는 흔히 악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모차르트의 처가 남편의 장례비용에 인색했을 뿐만 아니라, 비가 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장례식에도 불참하는 바람에 모차르트는 아무렇게 매장됐고 그 결과 오늘날 모차르트의 유해는 행방이 묘연해져 악처로 뽑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콘스탄체의 행실은 당시 가난한 음악가들의 부인들이 보여줬던 수준의 바가지 정도였지 악처 수준은 아니라고 두둔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모차르트에 환호하는 수많은 귀족가의 여인들에 대한 견제였으며, 오히려 결혼기간 동안 모차르트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뛰어난 음악적 성량으로 모차르트에게 조언을 해주남편의 사후 그의 곡을 공연 지휘감독하여 자식들을 가난에서 살게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그녀는 악처라는 오명 대신 모차르트의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와 결합하여 완성시킨 동반자라 평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보인다.


이렇듯 클래식 속 부부의 세계는 오묘하면서도 때론 괴롭게, 때론 아름답게 끝맺음을 맺으며 각기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떠한 결말을 맺든 모든 작곡 가는 때로는 슬픔, 때로는 기쁨 속에서 불후의 명곡들을 탄생시켜왔기에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생각한다.


나 역시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해 그 세계가 궁금하면서도 두려움이 크다. 그러나 클래식 속 숨겨진 부부의 세계들을 교훈 삼아 결말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세계에 발은 들여보고 싶어 졌다. 그것이 저출산 때문에 위기에 빠진 현실에 클래식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자 선물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