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자살 예방의 날
추천곡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시구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입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힘든 일이 생기거나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마다 어김없이 노트에 한번씩 적던 나만의 마법 문구이기도 하다. 비록 시인이 정치인으로 전향하며 공적인 자리에서 인용되는 정도가 줄었지만, 코로나라는 거대한 태풍으로 전 세대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내일의 희망을 다짐하게 할 마법 같은 시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이, 힘든 환경에 우리의 심신을 달래줄 희망을 품은 교향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각의 교향곡이 품은 배경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한다.
1. 신념이 꺾이려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곡 :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왕정을 타파할 때까지만 해도 그를 혁명가로 추앙했다. 그는 억압된 프랑스인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려는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하였고, 스스로 팬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 3번을 아예 특정 인물을 위한 헌정곡으로 만들라 하였다.
그러나 후일 그가 황제에 등극하고 유럽 정복의 야욕을 드러내자 나폴레옹도 권력 앞에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임에 크게 실망하였다. 큰 실망감은 곧이어 분노로 변하였고, 스코어에 쓰인 ‘보나파르트’을 긁어버린 채 영웅(Eroica)이란 표기로 교향곡 3번을 발표했다. 야사에 의하면 배신감에 치를 떤 그가 보나파르트란 표지를 찢은 채 책상 위로 올라가 방방 뛰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작곡가가 처음부터 무언가를 염두한 채 곡을 거의 다 써 내려간 뒤 신념 때문에 악보를 찢는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나폴레옹이 숭배되던 시기. 그에게 곡을 헌정하였다면 부와 명예가 주어졌겠지만, 그에게는 자유에 대한 본인만의 신념이 더 중요하였기에 이런 과감함을 보일 수 있었다 생각한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베토벤의 기개가 곧고 강건했음을 보여주는 일면이자, 현실이란 벽에 신념이 꺾이려는 우리 들에게 희망적인 모습이라 본다.
2. 기적적인 희망을 바라는 이들을 위한 희망곡 : 하이든의 교향곡 96번 ‘기적’
하이든이 그야말로 한창 잘 나갈 때의 일이다. 교향곡 96번 연주회장에서 청중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운 위치에서 지휘하는 하이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앞으로 몰려들었다.
무대 앞쪽에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려 정상적인 연주회가 거의 불가능해졌을 무렵 갑자기 객석 뒤편에서 꽝하고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대형 샹들리에가 청중석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상자는 단 1명도 없었다. 뒷 쪽의 청중들이 모두 앞으로 몰렸기 때문에 뒤쪽 청중석이 텅 비어 있었던 탓이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관람객들은 저마다 기적을 외쳐댔고, 그래서 이 교향곡 96번에 '기적'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알버트 크리스토프 디에스라는 하이든의 전기를 집필한 사람이 알린 이야기다. 실제로는 샹들리에 사건은 102번에서 일어났음이 다수의 의견이고 ‘기적’의 이야기는 야사의 일화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이야기가 정사처럼 회자되는 이유는 아름다운 ‘기적’을 들을 때마다, 기적적 희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 덕분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제목을 따라 이런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는 자체가 이 곡이 가지는 기적이 아닐까?
교향곡 96번처럼 우리에게도 살면서 반드시 기적의 이야기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온 그 기회가 우리의 희망찬 삶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3. 스스로에 의구심이 드는 이들을 위한 희망곡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당시 공식적 사인은 콜레라에 의한 사망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동성연애에 좌절한 자살이라는 둥 말년에 시달려 온 우울증적 충동이었다는 둥, 정확한 그의 사인은 드러나 있질 않다. 확실한 것은 그의 말년이 극도록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죽음 9일 전, 차이코프스키는 유서를 남기듯 ‘비창’이란 곡을 발표한다.
비창은 타 교향곡과 다르다, 심지어 본인의 이전 1번부터 5번까지의 교향곡과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통 교향곡은 3악장에서 4분의 3박자의 느린 왈츠풍의 곡이 나오고 4악장에는 빠르고 화려한 피날레 곡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비창은 여느 교향곡들과는 다르게 3악장에서 빠르고 화려한 곡이 등장하고 반대로 4악장에서는 아주 슬프고 느린 곡이 흘러나온다. 더군다나 차이코프스키 자신도 그동안은 마지막을 격렬하거나 헤피엔딩으로 끝내는 것을 즐겨써왔으나, 비창에서는 4악장 끝까지 장례식과 같이 엄숙하고 장엄하게 마무리한다. 자신의 모든 영혼을 쏟아부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듯 시작부터 끝 마칠 때까지 비창은비장하기에 수려하다.
자전적이며 뛰어난곡이라는 차이코프스키 개인에 의견과 달리,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청중들은 1893년 10월. 6번이 초연되었을 때 냉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간 차이코프스키에게 쏟아졌던 찬사는 의구심으로 변하였고, 평론가들은 무겁고 어둡기만 한 곡에 저마다 극단의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장례식 후 열린 6번 교향곡 연주에서 사람들은 100년을 내다보고 작곡된 곡의 진가를 깨닫고눈 추모 연주회장이 격찬과 흐느낌으로 뒤 섞였다 한다. 당시에는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곡을 완성했기에 아직도 비창은 위대한 명반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도 지금은 가는 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지라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그 끝에는 자신만의 명반이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때론 비에 젖어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바람에 뒤흔들려 뿌리가 뽑히려는 순간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이겨낸 채 피는 꽃들은 그 향기를 바람에 태워 전역에 퍼진다.
지금 모든 걸 포기하고 싶고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사라졌을 지라도, 미리 싹조차 움 틔우지 않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소개한 각각의 클래식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저마다의 의미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듯,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