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함이 주는 아름다움

by 푸르름

추천곡 : 카미유 생상스 '죽음의 무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할 당시. 신림에서 공부를 하던 나는 원룸에서 밥을 먹으며 별 기대 없이 의무적으로 개회식 방송을 틀었다. 여타 관공서 홍보가 그러하듯, 올림픽 역시 조금 규모가 큰 예상 가능한 연출이 나올 거란 생각에 화면도 보지 않고 소리만 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연출진은 이런 나의 자조적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LED를 이용한 뛰어난 시각적 연출과 이색적인 방식으로 밥을 다 먹고 나서도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할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당시 가장 기억에 남던 것은 1218여 개의 드론이나, 개인적으로 쇼케이스 마다 찾아가며 응원하던 김연아 선수도 아닌 인면조라는 기괴한 모형물이었다. 사람 얼굴을 한 채 거대한 새의 몸으로 흔들거리던 인면조는 개회식에서 미친 존재감을 내뿜으며 눈을 사로잡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인면조는 폐회식 애프터 파티까지 등장하며 평창올림픽이 경기뿐만 아니라 연출 면에서도 잊지 못하도록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아마 기괴함에서 오는 혐오감과 동시에 신비로움이 볼수록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이처럼 기괴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지닌 ‘인면조’ 같은 작곡가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작곡가는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 1835년~1921년)이다. 생상스는 1875년에 그의 대표작이라 여기는 '죽음의 무도'라는 교향시를 초연했다.




이 곡은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서 유럽에서 해골이 춤을 추는 모습을 소재로 화가들이 그린 풍속화와 시인 앙리 카잘리스가 쓴 '죽음의 춤'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곡된 곡이다. 죽음의 신이 특유의 불협화음 때문의 음악의 악마라 불리며 꺼리던 증4도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무덤에서 해골들이 일어나 춤을 추다 첫 닭이 울 때 다시 무덤으로 들어간다는 핼러윈에 어울리는 클래식이라 할 수 있다.

엉뚱하면서도 기괴한 제목의 이 즉흥 교향시는 바이올린을 들고 춤을 추는 해골들의 모습을 시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색채로 표현한 명곡으로, 국내에서는 2009년 세계 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쇼트프로그램으로 사용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어찌 보면 오컬트적 요소가 강한 이곡은 생상스가 중세 시대를 휩쓸고 간 흑사병으로 인해 모든 이들의 삶에 만연했던 죽음을 희극적으로 풍자하고자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죽음이라는 엄숙하고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기괴함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작곡가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년 ~ 1992년)이다. 존 케이지는 생전에 불교의 선에 심취되어 우연성이라는 요소를 음악에 도입한 아방가르드 작곡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기괴한 곡이자 유명한 곡은 단연코 '4분 33초'라는 곡일 것이다. 이 곡에서 존은 악보 대신 연주자가 우레와 같은 청중들의 박수를 받고 입장해 곡명과 똑같은 4분 33초 동안 피아노 뚜껑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는 들어가 버리는 연출을 보인다.

이는 피아노 연주자의 현란한 손놀림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손가락 하나 까딱 않는 연주자에 대해서 보이는 청중들의 반응(당황 동요수 근거림 야유 아우성 등등), 즉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하는 청중 들의 행태를 하나의 음악으로 간주한 작곡가의 기괴하면서도 탁월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실험 음악이다.

당시에는 수많은 비평을 받은 곡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기존 정의에 대한 경계를 넘어선 불확실성의 발견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음악은 소리를 내야 한다는 정의를, 침묵이라는 기괴함으로 클래식의 영역을 넓힌 그는 기괴함의 신선함을 잘 표현한 작가라 생각한다.

끝으로 소개할 작가는 현대 전자음악의 선구자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독일의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년~2007년)이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슈토크 하우젠은 ‘소년의 노래’라는 곡에서 전자음악에 실제 어린 소년들의 목소리를 입히기도 하며, 여러 대 의 라디오를 동원해 한 사람씩 주파수를 자기 맘대로 조정하게 하여 융합된 소리들을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등 혁신적이고 기괴한 방식으로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그는 ‘공간 음악’을 도입하여 기존 오케스트라의 벽을 허물기도 하였다. 1957년 그룹들이란 곡에서 기존에 청중이 연주가들을 ㄷ자로 둘러싸던 방식 대신, 반대로 청중들을 세 개의 오케스트라 그룹이 에워쌓아버렸다. 각각의 그룹은 어쩔 때는 독립적으로 어느 순간에는 융합과 불협화음을 넘나들며 마치 연주자들이 관객들에 영향을 주는 ‘제4의 벽’과 같은 느낌을 주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런 스토크 하우젠의 기괴한 시도는 현대 우리 대중음악에까지 영향을 주며, 유럽 현대음악의 3대 작곡가라 불리게 하고 있으니 그는 기괴함이 주는 창조성을 잘 표현한 작가라 생각한다.



아직도 평창 올림픽을 생각하면 당시의 경기 영상이나 마스코트보다 ‘인면조’가 먼저 떠오른다. 볼수록 매력있는 인면조는 이제는 불편함보단 평창올림픽의 독창성을 대표하는 또다른 마스코트가 되어있다.


클래식에서도 이처럼 기괴함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신선함, 창조성으로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켜온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 당장은 불쾌하고 거부감이 들지라도, 기존의 관념과 편견을 깨고 나오는 불쾌하면서도 신선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속에서 숨겨진 수많은 보석들을 찾을 수 있다 믿는다.


또 설사 그것이 보석이 아니면 어떠한가. 첫닭이 울면 웃으면서 무덤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무도의 해골들처럼 기괴함을 웃음으로 넘기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 또한 또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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