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의 맛

by 푸르름



추천곡 :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어렸을 적.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꼽을 때면 항상 그린란드를 뽑았다. 초원과 들판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이름부터 초록색으로 수놓은 그린란드는 마치 소풍과도 같은 나라였다. 그렇기에 학교에 들어가서 그린란드가 얼음이 대부분인 나라이고, 아이슬란드란 나라가 오히려 따뜻하다는 사실에 한동안 모든 나라의 이름 의미를 찾아본 기억이 있다. 아마 처음으로 느낀 아이러니라는 맛에 충격과 동시에 짜릿함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랴.


클래식에도 이와 같은 다양한 아이러니들이 풍미를 뽐내고 있다.


독일의 작곡가 쿠르트 바일(1900-1950)의 대표작 '서푼짜리 오페라(THREE PENY OPERA)'가 그 예시이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18세기 유행하던 '거지 오페라'를 브레히트가 1928년에 대본을 쓰고 바일이 작곡한 곡이다.


이때 바일은 이름에 걸맞듯 바그너 류에서 힘차게 울려 퍼지던 그랜드 오케스트레이션도 없고, 베르디 류에서 청중을 압도하던 대합창단의 격정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내레이션이 가미되어 있고 소규모 관악을 떠받치는 피아노 반주로 경제적인 연주를 중점으로 한다. 다만 이 오페라에서 트로트, 재즈, 발라드 등의 대중음악적 요소를 과감히 접목·결합시켰으며, 강렬한 관악기와 타악기 음색으로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퓨전 방식은 당시 1928년 한 해에서 4200여 회를 넘는 공연을 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런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바일의 민중적인 오페라가 점점 힘을 얻어가며, 심지어 유대계인 그를 나치 정부는 가만두지 않는다.


이로 인해 바일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 망명 길에 나서게 됐다. 초반에 실패를 거듭한 바일이었지만 한 번 성공을 맛본 그는 영화나 공연 등 자본주의적 노래에 녹아들며 당시에 수십만 달러를 버는 성공을 거둔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가 수백 아니 수천만불짜리의 가치를 안겨주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타르트니의 '악마의 트릴'이 있다. 지우 제페 타르티니(1692-1770)는 이탈리아 태생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독학으로 바이올린의 주법을 체득하고 그것을 곡으로 만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인 '악마의 트릴'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음산하고 기괴하거나 전혀 악마적인 이미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천상의 기교와 선율이 흐르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 '악마의 트릴'이라는 제목이 붙게 된 데에는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는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타르티니가 20세이던 어느 날 꿈속에서 악마로부터 "너의 영혼을 팔아 다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다. 젊은 청년이었던 그는 두려움에 그만 영혼을 팔았고, 그 대가로 소원 하나를 얻게 된다.


이때 특이하게도 타르티니는 악마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한 곡 신청한다. 뜻밖의 소원에 호탕하게 웃은 앗마는 타르티니로부터 바이올린을 건네받아 초인적인 기교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다.


이에 매혹된 타르티니는 영혼을 팔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황홀경에 빠졌다가 깨자마자 악마의 연주를 악보에 적었다. 그리고 곡이 바로 G단조 바이올린 소나타로 '악마의 트릴'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필수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사랑받고 있는 이 곡은 결과적으로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만난 악마가 천사와도 같은 일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참 아이러니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아이러니는 슈베르트 하면 연상되는 대표작. 교향곡 8번 '미완성 교향곡'이다. 이 곡은 슈베르트 생전에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그가 죽고 난 후 발굴되어 초연된 작품이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슈만에 의해 발굴되어 멘델스존이 연주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 'THE GREAT'가 대규모 관현악 편성과 긴 연주 시간 등 웅장한 스케일을 갖춘 곡임에 반해, 미완성 교향곡은 이전의 교향곡 1번에서 7번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전형적인 슈베르트의 음악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고 2개의 악장만을 완성해 논 채로 곡이 끝을 맺고 있다.


간혹 작곡자들이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악상이 궁색해져 한 곡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곡을 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슈베르트가 8번 교향곡의 3악장을 스케치한 초고가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는 의도적으로 8번 교향곡을 2개 악장 형태로 마무리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진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선율의 아름다움과 곡의 분위기 면에서 볼 때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곡이라는 점에서, 미완성 교향곡(Unfinished Symphony)은 제목을 붙인 후대의 오해로 탄생된 제목이며 역설적으로 비 완성 교향곡(Not-finished Symphony)이라 명명해야 맞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클래식에도 많은 아이러니들이 저마다의 맛을 품은 채 곳곳에 숨겨져 있다. 독자분들도 짧은 이야기였지만 마치 어린 시절 그린란드에서 받은 아이러니만큼은 아니어도, 주말 끝자락을 마무리하며 담백한 아이러니의 맛을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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