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이름 아래

by 푸르름


추천곡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봄의 왈츠'

2017년. 대구에서 장한나의 스승이자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딸과 함께한 내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세계적인 거장인 만큼 그의 첼로에서 나오는 음악은 시종일관 귀를 즐겁게 해 주었고,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부분은 아직도 머리에 맴도는 것만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명 깊었던 것은 이 콘서트가 그의 딸 릴리 마이스키와의 협연이었다는 점이다. 70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미샤 마이스키는 전혀 힘든 내색 없이 앙코르곡까지 끝마쳤고, 함께 인사를 하며 서로의 음악을 끌어올리는 두 부녀의 모습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이스키 가문처럼 서양음악사에는 수많은 음악 가문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2대에 걸친 부녀, 부자들의 음악활동은 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현대에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누군가는 아버지란 그늘에 파묻히기도 하고 반대로 명성을 뛰어넘어 가려버린 경우, 끝으로 함께 서로를 드높인 음악가도 있다.


오늘은 아버지란 이름 아래 각기 다른 길을 걸어간 음악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떤 음악사를 시작할 때이든 바흐가 빠지지 않듯, 두 아내로부터 11남 9녀를 두었던 바흐의 자식들이 첫 사례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자녀 중 6명 정도가 후세에까지 이름을 전하는 음악가로 나름 성공은 했지만, 아버지 바흐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워낙 아버지 바흐가 그들의 아버지가 아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태산과도 같은 존재이기는 하다.

그나마 장남 빌헬름 프리드만 바흐와 차남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는 작곡가로, 장녀 카타리나 도로테아 바흐는 가수로써 수많은 음악적 활동을 펼쳐 아버지 바흐의 명성을 이어가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질이 유전적으로 존재하였으나, 결국 그들은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한 채 아버지의 그늘 아래 가려져있다.


둘째로 바흐의 경우와는 다르게 자식대에 이르러서 아버지를 능가하는 작곡가도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천재적인 작품 활동으로 명성을 얻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다.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장난감 교향곡' 정도로 알려진 외에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작곡가였던 반면, 아들 볼프강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불세출의 업적을 남기고 있다.

물론 아버지 레오폴드가 볼프강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해 그를 천재 음악가의 길로 인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레오폴드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기억되기 어려운 음악가라 할 수도 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끝으로 위의 두 사례와는 좀 다르게 아버지가 뿌린 씨를 풍성히 열매 맺게 한 아들. 즉 부자간에 음악적 업적을 계승한 사례가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빈의 왈츠가 독일무곡이나 렌틀러와 혼조하여 뚜렷한 경계를 가지고 있지 못할 때, 라너와 함께 빈 왈츠의 태동에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생 요젭, 막내 에두아르트와 함께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빈의 왈츠를 감상의 경지로 승화시키고 번창시키며 꽃을 피웠다.

이들 4 부자의 활약으로 당시 빈에서는 오늘날의 대중가요만큼이나 왈츠가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빈에서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음악이 한국의 트로트처럼 울려 퍼진다 하니, 2대에 걸쳐 피운 꽃이 아직도 빈에 향기를 내뿜고 있다 하겠다.


어떤 가문의 모습이 좋아라 할 것 없이 위의 설명한 작곡가들은 잊힐 수 없는 불후의 음악 가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례와 달리 아버지와 자녀가 나란히 대를 이어 그들만의 재능을 꽃피우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모습이 현대에 필요한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이스키 부녀는 이러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모습이 보였기에, 그 어떤 콘서트보다도 내 마음속 1순위로 꼽힌다.

아버지를 뒤따라만 가지도, 넘어서려만 하는 것도 아닌 함께 서로의 능력을 꽃피워 인생의 한 페이지를 수놓는 것. 세대 간의 갈등이 극심한 지금, 이들이 보여준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양분되어야 할 꽃가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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