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 윤이상 'Exemplum in memoriam Kwangju For Orchestra' 광주여 영원히
출처 : Wikimedia commons
한국의 서양음악사는 1900년대 초·중반 시기 우리가 즐겨 부르는 귀에 익은 가곡들을 만든 선각자 홍난파와 김성태 선생 등에 의해 여명기를 맞는다.
그리고 싹을 틔워야 할 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거대한 두 줄기를 통해, 한민족의 서양음악사는 약동 기를 맞이한다.
우선 줄기의한쪽을 담당한 이로는, 친일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한국환상곡', '논개', '애국가' 등으로 민족 혼과 기상을 드높인 곡을 만들어 낸 안익태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선생은 38년부터 44년까지 유럽 활동으로 친일사전에 등록되었고 이승만 정권 시절 생일 축하 공연 등, 여러 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안익태 선생의 위상과 족적을 생각했을 때 그를 빼놓고 한국의 클래식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안익태 선생이 1950년까지 한 줄기를 담당하였다면, 60년대부터 그 자리를 넘겨받은 작곡가로는 윤이상 선생을 꼽을 수 있다. '예악', '무악'과 다섯 곡의 교향곡 등 수 없는 명작을 남긴 윤이상 선생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우리의 음악을 어필하게 된다.
윤이상 선생은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연루돼 죽을 때까지 고향 통영을 그리워하며 독일에서 머물렀지만, 북한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그의 대표작 '나의 땅, 나의 민족'을 1986년 북한 교향악단과 리코딩하기까지 했다.
정작 서양음악의 본고장에서 '현대의 베토벤'이라 칭송받았지만, 여러 정치적, 사회적 논란에 의해 생전에 조국 땅을 밟아 보지 못한 채 끝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사후 23년 뒤인 문재인 정부 때 이르러서야 통영 부지 내로 안장될 수 있었다.
비록 한쪽은 친일 논란이, 다른 한쪽은 친북 논란이 존재하나,
이 두 작곡을 토대로 한국에서 서양음악은 점차 위로 솟으며 수많은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국내 음악가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많았던 윤이상 선생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사제에 인연을 맺은 강석희 선생이 여러 개 뻗은 가지중 한 분이다.
2020년 타계하신 강석희 선생은 세계적으로 통하는 음악을 선보이며 스승의 명성을 이어갔다. 그는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인 '원색의 향연'을 만들었으며, 88 서울 올림픽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수많은 꽃들을 피워왔다.
그 외에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시도해 한국적인 음악을 선보인 이만방,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음악 성향을 고집스럽게 고수한 김영동, 가야금 하나로 세계에 우뚝 선 황병기 등이 한국의 클래식을 꽃피운 위대한 줄기라 하겠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든 이러한 일부 성공적인 음악가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서양음악의 후발국가로서 전형적인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례로 12 음기 법을 어설프게 반죽한 무미건조한 음의 나열이라든지, 주제와 곡의 형태 면에서 독창성이 결여된 진부한 선례의 답습이라는 등 많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온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다.
다만 현실적인 사정을 감안해 보면 결코 서양인들의 잣대로 비판만 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비근한 예로 1970~80년대 우리나라가 두드러지게 약세를 보이고 있던 전자음악의 경우, 강석희 씨는 전자음악 한 곡을 음반화 하기 위해 번거롭게 독일로 날아가는 음악의 종속화를 감수해야 했다.
전자음악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 시설이 웬만한 대학이면 다 갖추어진 선진국의 경우와 비교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서울대 등 일부 몇몇 대학에 실험적 차원의 스튜디오가 개설된 우리의 열악한 현실에서 음악들은 나름대로 선전해 왔다 하겠다.
그러한 어둠 속에서 대중적인 무관심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어법으로 독특하면서 참신한 음악을 써나가는 젊은 작곡가들과 임동창과 같이 대중적인 어필을 바탕으로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펼치는 음악가들이 존재하였기 우리 현대음악은 개화기를 맞이했다고 본다.
음악은 누군가가 들어줄 때 그 존재 이유를 충족하게 된다.
지금 수많은 음악가들의 기나긴 노력 끝에 우리는 어디서나 클래식을 직접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이뤄놓은 소중한 양분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가 대중들이 열광하는 차원은 아니더라도 자질 있고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으면 한다.
그러한 사회적 토양을 바탕으로 2020년대에는 한국만의씨앗이 반대로 세상에 흩뿌려져 싹 띄울 날이 오길기다리며 짧은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