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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발레리나를 위한 봄의 음악
by
푸르름
Apr 30. 2021
추천곡 :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발레라는 단어를 봤을 때 떠오르는 음악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친 차이코프스키만큼 발레 종사자들에게 추앙받는 작곡가가 있으니 바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이다
근대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60여 년에 걸친 끊임없는 창작 활동 중 원시주의로 대변되는 그의 초기 작품 활동이 오늘날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습작의 단계를 떨치고 발표된 발레음악 '불새', '페트르 슈카'로 이미 유럽에 명함을 알린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불세출의 대표작 '봄의 제전'으로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1913년 프랑스 샹젤리제 극장에서 세계 초연된 이 문제작은 니진스키의 안무로 디아길레프가 단장으로 재직하던 발레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그러나 봄의 제전 공연이 시작되고 스트라빈스키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작곡가와 당대의 불세출의 안무가 니진스키는 당혹감과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서로의 팔목을 꼭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봄의 제전은 2부 14곡 구성된 발레음악이다. 파곳의 독주로 불안한 도입부가 시작되자 객석에서는 이내 비웃음을 터트렸고, 도발적인 음색이 진행되며 곡이 진행될수록 웅성거림은 점차 야유로 변하기 시작해 마침내는 성난 관중들이 난동을 부리기에 이르렀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변박자에 익숙지 못한 관객들은, 묘한 조성의 전개에 따라 팔색조처럼 다채롭게 울려대는 금관악기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이에 한술 더 떠 익숙지 않게 리듬감 없이 마구 두들겨대는, 타악기 주자를 향해서는 "그의 목을 매달라"며 외쳐 댔다.
쉴 새 없이 급변하며 포효하는 오케스트라에 뿔이 나던 관객들은 니진스키의 전통적 발레 미를 무시한 파격적인 안무까지 곁들여지자 지지와 반대로 나뉘어 고성을 질렀고, 폭동 수준의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공연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으로 당시의 관객들이 받은 이질적인 충격이 어떠했나 대변해 주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오늘날 봄의 제전을 빼놓고 발레음악을 이야기하거나 스트라빈스키를 지나치고는 현대음악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곡의 위상은 확고하다.
그러나 지금도 백조의 호수 같은 근사한 발레에 익숙한 음악 애호가들이 봄의 제전을 처음 접하게 되면,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니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의 모더니즘은 가히 천재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천 가지 음악적 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 불린 스트라빈스키의 중기 작품 활동은 신고전주의 성향을 띠었다. 그러나 그의 결사적 비판자인 12 음기 법의 창시자 아놀드 쇤베르크가 사망한 1951년에 이르러서 스트라빈스키는 후기 작품 활동에서 새 지평을 열게 된다.
현대음악의 음악적 기법이 쇤베르크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태동되고 확립됐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뒤쳐지면 2류 작곡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시기에, 스트라빈스키 또한 이러한 음악적 조류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빈스키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활동에서 결국 이러한 작곡 기법의 변화는 후대 음악 애호가들에게 크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 된다.
그의 초기 3대 발레음악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작품들이 당시 청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이어졌다면, 오늘날 감탄과 놀라움 속에 접할 수 있는 음악 레퍼토리가 상당히 추가됐을 것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미국인', '랩소디 인 블루' 등 재즈를 클래식에 접목시킨 음악을 발표해 유명해진 미국 작곡가 죠오지 거쉬인(George Gershwin)이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스트라빈스키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음악 사조와 동떨어진 느낌 속에 열등감을 느끼던 거쉬인이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좋은 음악을 쓸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고, 스트라빈스키는 "선생은 이미 훌륭한 음악을 쓰고 계십니다. 하던 대로 계속 그렇게 쓰세요"라고 답한 일화가 있다.
바로 그 답변이 자신에게 필요한 답이었다는 것을 스트라빈스키는 모르고 있었을까?
초기의 스트라빈스키가 그 감각을 유지했다면 발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또 다른 위대한 곡이 나왔으리라 아쉬움을 삼키며 봄을 지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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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
발레음악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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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우리나라 20세기 현대음악
02
발레리나를 위한 봄의 음악
03
아버지란 이름 아래
04
늦 봄 끝자락의 비발디
05
아이러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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