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 브람스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
짝사랑.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사랑의 유형이자, 슬픔의 한 유형이다. 세계 역사에 있어서 클래식 역사에서 이에 가장 어울리는 작곡가를 뽑으라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브람스의 사랑이라 할 것이다.
브람스의 삶은 그의 음악적 성향처럼 끝까지 보수적이었다. 그는 디오니소스 시대에 끝끝내 고전적인 아폴론적 성향을 유지하며 표제음악을 멀리하고, 배토벤과 슈만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신고전적 음악의 계보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보수적인 음악처럼 사생활 역시 아무런 구설수도 없는 채, 끝까지 독신으로 보수적인 삶을 마감한다.
꿈과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며 감정을 중시하던 19c 낭만주의 시대에 브람스는 어째서 끝까지 신고전주의를 고집하였을까? 브람스의 선택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을 관찰하면, 그의 성향의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짝사랑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브람스에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19c 신고전학파의 대모로써 역할을 한, 클래식이 사랑한 여자 클라라 슈만을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통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클라라 비크(Clara Wieck, 1819~96)는 라이프치히에서 상점을 경영하며 음악을 터득해 스스로 피아노 교사가 된 프리드리히 비크의 외동딸이었다.
현실적이고 엄격한 성격을 가졌던 그는 딸의 천부적 재능을 간파하고 자신만의 지도 기법으로 클라라를 교육했다. 그녀는 11세에 이미 게반트 하우스에서 연주회를 가지고 파기니니와 협연을 하는 등 유럽에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명세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영광을 딸에 투영하는 듯 한 프리드리히의 방식에 클라라는 지쳐버렸고, 14세에 아버지의 제자 로베르트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가난할뿐더러 제자의 여자관계가 지저분한 것을 알았던 비크는 슈만을 미성년자 유괴로 고발하며 반대하는 강수를 두었지만, 끝내 클라라는 21세가 되던 해 1840년 9월 12일 라이프치히 교외의 한 교회에서 아버지 없는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클라라는 결혼 후 슈만의 내조에 전념하기 위해 피아노 연습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한편, 신통치 않은 수입에 보탬이 되고자 개인 레슨에 더 몰두했다. 또한 그녀는 유럽 각지에서 연주하는 기회가 되면 사랑하는 슈만의 곡을 연주 레퍼토리에 포함시키 사랑을 표했고, 각지에서 슈만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1. 클라라 슈만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0’
클라라 덕에 유명세를 얻고 평론가로서도 성공한 로베르트 슈만은 1840년 결혼 이후 1841년에는 교향곡 1번을, 1842년에는 실내악곡을 작곡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비크가 예언하였듯 그들의 비극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로베르트는 양극성 장애로 추정되는 정신병에 점차 잠식되어나가며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스트리아 뒤셀도르프에서 1850년부터 맡았던 지휘자 자리에서 많은 갈등으로 인하여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미 7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심신이 지쳐가는 클라라였지만 그녀는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받는 남편을 위하여 1853년, 43번째 생일날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0’이란 곡을 선물해준다.
이 곡은 로베르트의 다채로움 소품 op.99 중 4번째 곡인 ‘음악 수첩 1번’을 편곡한 곡이다. 음악수첩 1번은2분 남짓에 불과하지만, 단조로운 음을 반복하면서도 로베르트의 세밀하고 차분한 음정을 표현한 곡이다.
남편을 존중한 클라라는 그의 작품을 흩으러 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서 피아니스트로써 뛰어난 기교를 덧붙여주었다. 2분 남짓한 남편의 곡을 10분 내외로 늘리며 흥겹게 곡을 장식한 클라라 덕분에, 많은 이들로 하여금 다채로운 소품 op.99 부분을 많이 찾게 해 주었다.
이곡은 자신의 뛰어난 피아니스트 실력으로 오히려 슈만의 곡을 유럽 전역에 알렸던 클라라의 사랑을 투영한 대표적인 곡이라 생각한다.
2. 브람스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
클라라가 남편에게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선물해준 그 해. 슈만 부부는 오스트리아 뒤셀도르프에서 요제프 요하임의 부탁으로 1853년 9월 ‘브람스’를 만나게 된다.
슈만 부부는 젊은 청년의 재능에 감탄하였고, 남편 로베르트 슈만은 마지막 평론 ‘새로운 길’에서 브람스를 소개하며 유럽에 그의 이름을 화려하게 등장시켰다. 그러나 정확히 1년 뒤 1854년. 브람스가 동경한 로베르트 슈만은 정신병 발작으로 라인강에 투신해 버리고 만다. 다행히 로베르트는 지나가던 배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그 일로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었다. 당시 막내를 임신하고 있던 클라라는 이 충격에 작곡활동도 멈추고 남편과 자식을 돌보느라 점차 무너져갔지만, 다행히 만난 지 5개월밖에 안 된 청년 브람스가 슈만 가족을 돌봐 주어 버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브람스가 클라라를 위로하며 헌정한 곡이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이다. 여기서 브람스는 몇몇 대위법 등의 특징을 제외하고는 클라라의 곡과는 전혀 다른 곡을 작곡하였다. 이 곡에서 그는 자신만의 기교와 테크닉을 마음껏 뽐냈으며 마치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려는듯한 인상을 주고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 브람스가 헌정한다는 슈만은 ‘로베르트’가 아닌 ‘클라라’ 슈만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스토리를 알고 브람스의 곡을 듣다보면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자신을 과시하는 젊은이의 치기 어린 열정이 녹아져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3. 클라라가 사랑한 클라라를 사랑한
남편을 잃은 후에, 더욱 많은 곤란에 직면하면서도 클라라는 브람스의 도움으로 힘겨움을 헤쳐 나갔다. 브람스는 자신의 어려운 피아노 독주곡이나 협주곡 등을 스스로 연주할 만한 재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후년에는 지휘자로서 재능도 나타내서 클라라를 기쁘게 했다. 클라라는 만년까지 브람스가 모든 작품을 작곡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충고인 이었다.
그들의 최후는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1년 간격으로 각각 발표한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였다. 1896년 76세로 클라라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브람스는 거짓말처럼 1년 뒤 1897년 간암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곡에서 느껴지는 갓처럼 클라라가 ‘슈만 주제에 변주곡 op.20’에서 로베르트 슈만의 곡을 그대로 존중하듯, 죽어서도 Bohn에 묻힌 남편의 묘소 옆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브람스는 그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열정을 치장했듯, 죽으면서 까지 ‘11개의 코랄’이란 곡을 만들며 화려하게 최후를 끝맺음 지었다.
오늘은 클래식 역사에 있어 유명한 여인 중 하나인 클라라 슈만에 삶과 로맨스를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곁들여 소개해보았다. 슈만을 설명하며 클라라를 빼놓을 수 없고, 클라라를 설명하며 브람스를 빼놓을 수 없듯 이들의 삼각관계에 있어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 세 작곡가에게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수많은 곡에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 곡에는 클라라의 오묘한 삼각관계와 만남과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모두 녹아져 있어 스토리가 곡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다.
빗방울이 내리는 토요일 밤. 저마다의 사랑의 역사를 생각하며 <슈만의 다채로운 소품 op.99 no.4>와 <클라라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0>, <브람스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을 비교하며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