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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Feb 26. 2022

상담 카 폴리

서른이, 지구대 실습일지 - 3화


 어릴 적 나는 만화와 현실을 혼돈하던 시기가 있었다.      


 만화 주인공의 말투나 행동 등을 따라 하며 또래 아이들과 역할극을 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중에서도 ‘짱구는 못 말려’는 특히나 나에게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성장기에 가장 애정 하던 만화였다. 특히나 만화에 나오던 잠옷이 당시에는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크리스마스만 되면 일본에라도 가서 사달라고 몽니를 부려 부모님은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이토록 사랑하던 만화였으나 사춘기가 지나자 흥미가 떨어지게 되었고 머리맡에 항상 놓여있던 너덜너덜해진 ‘짱구는 못 말려’는 창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짱구를 사랑하던 나의 모습은 20년이 지나 조카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으로 로보카 폴리라는 만화를 보며 장난감을 사달라는 조카에 모습에 짱구 잠옷을 달라던 꼬맹이가 겹쳐 보였다. 안된다는 사촌 형 몰래 장난감을 결제해주며 형식상 한편을 같이 봐준다는 게 몇십 분 동안 재밌게 보았다. 로보카 폴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출발한 뒤 로봇으로 변신하여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하는 단순한 설정이다. 하지만 매 회마다 그 색다른 내용과 함께, 특히 어려움을 쉽게 헤쳐나가는 흡입력에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보카 폴리 덕인지 아이들에게 순찰차가 친근한 이미지인 것과 달리 실제 순찰차가 등장하면 어른들은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순찰차가 집 주변에 서 있으면 범죄가 일어난 건 아닌가 하고, 운전자라면 무언가 실수한 게 있는가? 라며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찰차는 경찰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민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수단이다. 긴급 출동 시 누구보다 빠르게 출발하는 순찰차는 생명을 구하는 구급차가 되고 사이렌을 울려 범죄를 차단하는 경보기 역할을 해준다. 또한 지방의 경우에는 관할 면적이 큰 만큼 아파트 밀집지역부터 면 단위 지역까지 온 지역을 누비는 로보카 폴리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순찰차에서도 시민뿐만 아니라 경찰관조차 불편한 부분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순찰차의 ‘뒷좌석’이다. 현실에서 순찰차의 뒷 자석은 정말 보통 시민들이 모르는 곳이자 굉장히 답답한 곳이다. 보통 현행범이나 주취자 등을 태우며, 때 때로 길 잃은 시민 등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탈 수 있는 곳이기에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뒷좌석은 보통 주취자 등에 의한 오염방지를 위해 시트는 전부 비닐 재질로 덮여있고, 앞좌석과는 손가락 정도가 들어가는 촘촘한 아크릴판으로 가로막아 놓는다. 그러나 가장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차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지만 순찰차의 뒷문과 창문은 도주자 방지를 위해 열 수 없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사유에서건 뒷좌석에 앉아 있다 보면 앞좌석과 몇 미터는 떨어진 격리공간에 들어온 느낌이 들게 된다.     



따라서 처음 실습 시 앉게 된 뒷좌석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보통 지구대 경찰관 분 들은 2인 1조를 원칙으로 하므로 나와 같은 실습생이 동행하면 자동으로 홀로 뒷 자석에 타게 된다.


그동안 그 느낌을 오랬동안 잊고 있었나보다. 찻날부터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픈 나는 사건 CODE지령이 떨어지자 상황 진행 방식을 적기 위해 노트를 꺼내 든 채, 재빨리 뒷좌석에 올라탔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제야 10년 전 의경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앞좌석에 말은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만 생수 한 병 받을 수 없는 아크릴판과 아무리 눌러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창문 버튼, 그리고 판을 덧 데 때워버린 차문 손잡이 등....... 18개월간 의경 때 느껴왔던 답답함을 급작스럽게 조우하자 첫 실습 때부터 내보내 달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더군다나 평평한 사람도 답답한 곳을, MRI를 받을 때도 마취를 하고서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각오도 없이 탔으니 오죽했을까. 다행히 직원분들과 말을 하며 겨우 이겨내 왔으나 그 이후에도 며칠간은 아무리 빨리나 가도 차 밖에서 대기하였다가 직원분이 와야 함께 타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건이 급한 경우에는 ‘잠시 차에 계시라’는 말을 한 채 앞좌석 직원 모두 현장에 먼저 뛰어가 홀로 남겨진 경우도 많았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창문을 내릴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완벽히 폐쇄된 공간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실습생이라고 와서 폐쇄공포증이 있으니 나갈 때마다 아무리 급해도 문 좀 열어주고 가라 하기도 어려웠다.      


몇 분 째 기다리다 보면 때때로 투명한 유리로 밖을 볼 때면 지나가는 시민에게 “문 좀..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웃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러한 모습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어떠한 사건 덕에 조금은 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은 야간에 난동을 부리던 주취자를 진정시키고 주거에 태워다 주기 위해 뒷 자석에 태운 날이었다. 덩치가 마동석 만한 주취자는 자신이 먼저 맞았다고 주장하며 소리를 치는 등 흥분이 남은 상태였다. 당시에 7월 초라 비까지 오는 마당에 덩치가 2배는 큰 주취자와 함께 뒷 자석을 타게 되자 나도 모르게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설상가상. 10분 즈음 지났을까.

 당시 사건 현장인 술집 직원분들도 상당히 흥분상태였기에 이를 진정하기 위해 사수인 직원 분이 부사수 직원분을 부르는 무전이 떨어졌다. 사건 당사자인 주취자 분을 함께 내리게 할 수는 없기에 누군가는 함께 있어야 했고 그건 자동적으로 현장에서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 내가 남아야 했다.    

  

물론 차에 내리기 전에 3번이나 부사수 직원분이 혼자 괜찮으시겠냐며 확인을 해줬고, 신원이 파악된 주취자 분도 정신을 차린 상태라 큰일이 벌어질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곳은 좁디좁은 케이지와 같은 곳이었고 2배나 커다란 주취자의 숨소리는 마치 종합 격투기 경기 전 긴장을 주는 관중 소리처럼 우렁 찼다. 직원분이 떠난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비인지 땀인지 모르는 긴장감이 점점 조여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주취자 분이 난동을 부린다면 나는 물리력으로 이를 막아설 수 있을까?     


온갖 시물레이션을 돌리며 아무도 다니지 않는 창밖을 바라본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진정했던 시민분이 손을 휘적거릴 때 나도 모르게 “뭐야!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라며 고성을 질렀다. 그러나 신체적 접촉만을 생각하고 있던 내 생각과 달리 덩치가 커다란 주취자분은 손잡이가 있어야 할 곳을 미친 듯이 두들기며 오히려 애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경찰 아저씨 아저씨 저 창 문 좀 내려주세요 저 속이 안 좋아요 속이!!!.”     


“네 네?? 순찰차 뒷 자석은 창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뿔싸. 이것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공포가 엄습해오는 순간이었다. 가뜩이나 한 덩치 하는 분이 배를 움켜쥐는 모습을 보자 차라리 몸으로 부딪히는 상황이 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즉시 전화로 부사수 직원분에게 차 뒷문을 열어달라 부탁하였고 최대한 말로 달래며 조금만 참아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급히 나온 직원분 덕에 시민분은 겨우 길가로 나와 속을 비우실 수 있었다. 우산을 씌워드리기 위해 길가로 나온 1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 10분은 되는 것처럼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알고 보니 시민분은 진작에 문을 열어달라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차가운 나의 태도에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을 것 같아 참다 참다 문을 긁는 행동을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다행히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는 안도감과 더불어 한마디 말조차 나누지 못해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점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의경 때부터 하루 종일 타던 순찰차 뒷 자석이 8년이 지난 지금도 극도록 답답하건만, 순찰차가 익숙하지 못한 시민들은 몇 배로 답답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급하게 나온 부사수 직원분께 혼자 있어도 된다고 말한 뒤 순찰차에서 시민분과 계속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다.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그랬는지를 지나 근처 공장에서 팀장이시며 가족은 누가 있고,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주취자분은 다른 직원분들이 오시기 전까지 불편함 없이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나 역시 뒷좌석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혼자 남겨져 있지 않았지만,  시민과 함께 타야 하는 순간에는 자청에서 뒷좌석에 함께 탄 뒤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최대한 유대감을 쌓아가는 방향으로 선회하도록 노력하였다. 실습생이기에 사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대화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 덕분인지 이후에는 뒷 자석에 있어도 답답함은 드문드문 느껴져 왔으나, 거구의 주취자 분을 태웠던 때처럼 나 자신이 패닉 상태까지 온 적은 없었다. 오히려 몇몇 주취자분들은 고함을 치다가도 같은 지역 내 이야기를 할 때면 진정하고 자세히 하시는 경우가 많아 일이 수월하게 종결한 경우도 있었다.


    

서른의 문이 열린 20년대.

아이들처럼 순찰차를 로보카 폴리라 생각하며 좋아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한 달여간 실습 이후에도 순찰차에서 어떤 시민이든 대화를 나누던 기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경험을 토대로 현직에서 순찰차를 몰 때에도 시민과 아주 짧게나마 대화할 수 있는 ‘상담 카 폴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조카에게 자랑스럽게 ‘삼촌도 폴리를 몰아!’라고 당당히 말하는 경찰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tip - 경찰차 뒷좌석의 문과 창문은 안에서 열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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