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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Feb 18. 2022

시민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서른이, 지구대 실습일지 - 2화


  내 삶을 풍족하게 하였던 시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하나의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내가 너를 꽃이라 불러주었을 때 너는 꽃으로 다가왔다'라는 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불리는가’에 중요성을 가장 잘 나타낸 시라고 본다.    

  

사회에 있어서 일의 시작이 되는 것이 바로 이 호칭이다. 식당에 가서도 호칭은 언어 속에 거리감을 표기해준다. 우리는 예의를 차릴 때면 ‘사장님’. 자주 얼굴을 익힌 사이라면 ‘이모’. 매우 불친절한 식당에서는 ‘저기요’라며 단어에 감정을 실어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한다.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 단어 하나에서 극렬하게 갈린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지구대에 와서 가장 애매했던 순간은 바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경찰이란 조직은 군대만큼 경직되어있지는 않다지만 경사만 완만할 뿐이지 같은 피라미드형 관료제를 띄고 있다. 대학에서는 나이라는 것이 전부였고, 군대에서는 계급이라는 기준으로 호칭은 정리되었다. 그러나 경찰 내에서는 30세라는 어린 나이에 60에 가까운 팀장님과 계급이 같아버리게 되니 호칭이 상당히 애매해졌다. 일평생 계급 아니면 나이라는 잣대로 지내왔건만, 두 가지의 기준점이 섞여버리니 키만 한 방지턱이 길을 막은 듯했다.  


그러하기에 처음으로 실습 배치를 받았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이 대체 누구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였다. 지구대장님은 대장님, 팀장님은 팀장님이라 부를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을 ‘저기요’라고 부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퀴즈쇼에서 힌트를 받듯 먼저 배치받은 선배들이나 동생들에게 전화찬스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마치 호칭이라는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는 듯 정답이 없다며 다양한 가이드를 제시했건만, 어느 하나 명쾌한 답안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마음먹었던 것은 아직 실습생일 뿐이기에 40대 이상에겐 계급으로, 2030에게는 나이대로 호칭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냥 편하게 반말해주세요. 이제부턴 형 동생 하시죠”


“뭐 저희야 좋지만 팀장님이 찬성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일단 알겠어 형”
 젊은 직원분들은 흔쾌히 받아주며 어색함을 걷어주었다.


그러나 40대 이후분들에게 묻기도 전에, 은퇴가 2년남으신 탄탄한 체형의 팀장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호칭을 함부로 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함부로 되면 행동도 함부로 하는 법이어요. 시민들한테 은연중에 잘못 나오면 안되니께 그래도 그러는게 아녀요.”


 그러자 다른 40대 이상 팀원분들도 그 길로 각자의 생각을 접어 둔 채 공개석상에선 나에게 모두 이주임 님이라는 호칭을 불러주었다.


첫날부터 모든 대화에서 나이 많은 분들께 존댓말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힘든 일이었지만 30년이 넘도록 경찰생활을 해온 선배의 베테랑에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여지책으로 평소에는 친구처럼 동생처럼 반말로 대화하다가도, 팀장님만 등장하면 누군가 ‘암행어사가 출두요’를 외친 듯 재빠르게 상호 존대를 하는 기이한 방식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팀장님께서 해주신 경험의 조언은 첫 근무 마지막 사건 현장에서 시민을 대할 때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순찰차 하나당 2인 1조로 동승하지만 실습생인 나까지 함께 출동하게 되면 3인 1조가 되어 사건을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40대의 베테랑 직원분은 직접 사건 상황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기에 20대의 친한 직원과 함께 현장을 진정시키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때 사건 하나가 터졌다.      


지구대 일을 하면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도 많지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면서 경찰에게는 시비를 거는 분들도 간혹 계신다. 지금이야 그런 분들에게도 친절히 설명하고 진정시켜드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그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습생이자 첫 주간 근무 때이기에 아직 일반인의 티가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퇴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트 절도사건으로 출동하여 범인은 마트 쪽에서 붙잡아 둔 상황이었다. 40대 직원분이 CCTV를 확인하러 가신 동안 젊은 직원과 이것저것을 반말로 대화하며 피의자와 함께하고 있었다.      


피의자는 조금 술에 취한 상태인지 억울함을 내비쳤고, 마트 측에서는 이전에도 몇 번 신고한 상황이었기에 선처할 생각이 없는 상황이었다. 복잡한 상황에서 피의자는 억울하다 억울해!! 라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급작스럽게 CCTV실로 들어가고자 하였다. CCTV실에는 신고자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몸으로 앞길을 막아섰고 피의자는 우리에게 무어라 변명하기 시작했다.


퇴근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아 마음이 어수선했는지, 직접 겪는 첫 범죄 사건이라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 일반인 티를 벗지 못한 나는 독백으로 ‘그건 차후 경찰서 출석해서 변명하지 좀 하 진짜.’라며 반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미 극도록 흥분해 있던 피의자는 그 말에 화가 났는지 더욱 강하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40대의 배테랑 직원분이 나오셔 상황을 파악하고는 신고자와 분리한 뒤, 범행 현장을 직접 보여주며 향후 진행사항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였다.


몇 분간 술 취한 사람처럼 흥분하던 피의자는 cctv에 찍힌 모습을 보고서야 신고자에게 사과하려 그랬다며 화를 가라앉혔다. 이후 사수이신 직원분은 피의자를 마트 밖으로 내보내며 다시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함과 동시에 혼잣말이라도 반말을 내뱉은 것을 대신 사과해주었다.    

  

지구대를 돌아가는 길.

 40대 직원분은 첫 사건은 다행히 물 흐르듯 끝났지만 만약 피의자가 혼잣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반말로 불친절하게 하였다 민원이라도 넣으면 큰일 났었다고 알려주었다.


하마터면 첫날부터 경찰에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인 ‘민원’을 실습생 신분으로 받는 역사적인 인물이 될뻔했다. 이 사건 이후 다음날부터는 친한 20대 직원분들과도 근무 중에는 절대로 반말을 하지 않는 것을 습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보다 매일같이 다양한 시민들과 대면하는 직업이다. 어떠한 시민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존중하는 법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남은 근무 내내 어린이들을 제외하고는 대학생들에게도 ‘선생님께서는....’이라는 호칭으로 포문을 여는 습관을 들였고, 이 습관 덕분에 행동에 대해 항의가 들어온 적은 다행히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시민들을 존중한다 말하였을  시민들도 나에게 존중으로 다가올  있다는 사실을, 자칫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호칭이라는 단어에서 배울  있는 첫날이었다.




tip - 시민들이 경찰관을 부를 때 호칭은 정해져있지 않다. 흔히 ‘경찰 아저씨’가 떠오르지만 김순경님과 같이 성씨와 계급(순경, 경장,경사,경위)을 합쳐 부르기를 경찰청을 권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찰관님 혹은 선생님이라는 간단한 표현이 보편적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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