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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r 05. 2022

도윤아 내일 아이스크림 먹자!

서른이, 지구대 실습일지 - 4화

   

“어이 도윤(가명)아!! 내일 아이스크림 먹으러 와라 잉!!”

밖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던 박순경 님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꼬마 아이를 보고는 반갑게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우리 쪽을 보고는 짧게 끄덕이고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다. 햇볕에서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아이의 피부는 온통 까맣고 몸은 나뭇가지처럼 삐쩍 말라 있었다. 그래도 뒷모습만큼은 한여름 태양이 비친 물 위처럼 반짝였다.      


아는 아이냐는 질문에 박순경 님은 뜻밖에 답을 해주었다. 도윤이는 한 달 전에 아이스크림을 훔치다 걸린 아이라는 것이다. 당시 가게 주인도 처벌을 원하지 않고 아이도 사과를 하여 계도조치로 끝났지만 도윤이는 이후에도 아이스크림을 몇 번 더 훔치다 결국 또다시 잡혀왔다고 한다.

과거 구멍가게도 아니고 버젓이 CCTV가 몇 개나 달린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치는 꼬마라니 믿기지 않았다. 박순경 님은 아이에게 훔치지 않을 것을 약속하기로 하고 각 팀에서 매주 한 번씩 아이스크림 1개를 사주기로 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알리시지 왜 직접 사주세요? 아이스크림 얼마 하지도 않는데.”


“몇 번 연락해봤죠. 그런데 아버님이 나이도 엄청 드시고 농사가 너무 바빠 아이를 도저히 못 챙기신 다더라고요. 사 주는 게 맘 편해요. 주임님 말대로 아이스크림 하나야 얼마 안 하니까요”     


알고 보니 도윤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였다. 아버지는 50이 넘어서 다문화 결혼을 하였으나 노동일에 바쁘고 어머니는 집을 나간 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집안 환경이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아이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 작은 범죄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제야 도윤이의 피부가 요즘 아이들 같지 않고 유달리 까만 이유를 알았다.  그 마른 몸에서는 바람 냄새가 나는 듯했다. 도윤이가 오늘 지구대 앞을 기웃거리는 것도 불안한 마음에 매번 약속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도윤이에게 아이스크림은 어쩌면 따뜻한 가족인지도 모른다.

1000원의 기적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학교와 지자체에서 아이들을 전폭적으로 돕고 있음에도, 이런 자그마한 사각지대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이질감이 들었다. 그리고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아이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의 언덕이 되는 지구대가 갑자기 육지에 있는 등대 같았다.     


도윤이 같이 특수한 경우 이외에도 지구대는 학교와 시청과 더불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아이들을 마주한다. 지구대 근처에는 초등학교와 내가 나온 모교인 중학교, 그리고 바로 언덕 하나 넘어 또 다른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학교들이 몰려있는 곳이기에 아이들 뿐만 아니라 중학생들도 자주 지구대에 들린다.      


특히나 학교 내에서가 아닌 학교 밖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 사고의 경우 지구대로 신고가 들어오기 때문에 절도와 같은 피해를 입어 진술과 서류 등을 작성하는 학생들도 자주 봤다.

도윤이 나이대를 넘어 청소년 중에서 기억에 남는 아이로는 내가 나온 모교의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떠오른다. 당시 7월에 무터운날 학생은 얼굴에 온통 멍이 든 채 핸드폰을 고등학교 형에게 빼앗겼다고 진술하러 왔었다.      


 그러나 기존에 아는 피해자와 다르게 내 모교의 교복을 입은 채 키만 컸지 앳된 얼굴의 학생은 시종일관 강한 척을 하며 장경사님의 질문에 툴툴거렸다. 마치 누구한테든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당장이라도 잡아먹힌다 생각하는지 굉장히 날을 세우며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 하였다.


 이런 쪽으로는 20년 이상을 배테랑으로 근무해왔기에 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아는 장경사님이지만 피해자라고 온 학생의 이해 못 할 적대감에 지구대의 분위기는 상기되었다.      

학생은 마치 가해자로 잡혀 온 것 마냥 소리를 질러대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지구대라는 환경에 압도되었는지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학생. 주소를 보니까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사는구먼. 내가 우리 아파트 대부분 아이들은 다 아는데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는겨?”     


“네?? 어.. ooo 십니다.”

분위기도 바꿀 겸 학생의 조서를 읽어보던 팀장님이 대뜸 질문을 하시자 그전까지 툴툴거리던 학생은 갑자기 사색이 되어 조그맣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였다.  그러자 팀장님은 벌떡 일어나시더니 커다란 학생의 등짝을 내리치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으셨다.     


“이이. 너가 그 ooo 아들이여? 이놈아 내가 그 친구를 10년 넘게 알았어. 이놈이 아버지가 혼자 얼매나 널 열심히 키우려 하는디 당장 전화 혀봐!!”

풍선 인형처럼 커다랗게 덩치를 부풀렸던 학생은 아버지란 말에 공기 빠진 풍선마냥 쪼그라지더니 180도 태도가 바뀌어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었다.  

     

팀장님은 장경사님에게 사건을 본인이 직접 맡겠다고 하신 뒤 한동안 아이와 사건의 전모를 들었다. 알고 보니 형들에게 핸드폰을 강취당한 학생은 이미 소위 노는 아이 중 하나로 절도나 강취 등으로 학교에서 문제가 되었던 아이였다.

그 무리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형들에게 돈을 바쳐야 했고, 그것을 못주게 되자 핸드폰을 빼앗기게 된 경우였다. 아마 대부분의 일진 사회가 그러하듯 먹이사슬처럼 본인이 빼앗고 다시 빼앗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례 중 하나였다.      


 이후 이야기를 듣고 직장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학생의 아버지에게 팀장님은 최대한 자세하게 사건의 전모를 설명해주었다. 아저씨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해당 고등학생 학교와 연계하여 핸드폰을 돌려받는 것까지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사건은 접수되었으니까 아무쪼록 걱정하지 말고 아들이랑 오늘 하루 깊게 얘기나 혀봐. 지금 보니 일진에 연루된 것도 잘 몰랐던 것 같던데. 막 혼내지만 말구”     


“그려 그동안 단순히 싸운 건 줄 말 알았는디 일이 뭐라고 참 내 아들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나벼. 엄마가 없으면 이런 게 참 힘든가 봐 바쁘신데 죄송들 합니다 가볼게 이따 연락 혀. 너도 제대로 인사하고 어여 나와”


팀장님의 말에 아저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학생을 데리고 지구대를 나섰다. 우리에게 고압적이던 학생은 얼굴이 새 빨게 된 채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재빨리 아빠를 따라나섰다.      


물론 학생에게 피해를 입은 다른 친구가 있기에 학생을 전혀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잘못된 길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나오고 싶어도 늪에 빠진 것 마냥 더 깊이 빠져들어 간다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에 안타까움 마음도 들었다.

어린 시절 나도 약해 보이면 괴롭힐까 봐 인상 쓰며 다녀 그 흔적이 뚜렷하게 이마에 남아있어 아픈 상처가 쓰라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팀장님 덕분에 학생은 자신이 행한 범죄와 당한 범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며 아주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들었다.      

내가 나온 중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한 부분은 사과하고 학창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추억으로 쌓기를 바라였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을 잡거나 뉴스에서 보듯 술에 취한 채 무면허로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만이 지구대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소소하면서도 경찰이 조금만 손을 내민다면 지역사회로 돌아가 잘 갖춰진 복지에서 좋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학생들도 많다는 사실을 실습을 통해 알았다.


흔히 우리 속담에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을 굉장히 싫어한다. 바늘도둑인걸 알았으면 어떻게든 이를 교화하여 바늘조차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사회라 생각한다. 이미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매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듯 경찰도 이에 동참하고 있지만, 좀 더 바늘을 훔친 아이에게 바늘을 사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습이 끝난 지 한참 된 지금 시점에서 모교의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핸드폰을 되찾았는지, 도윤이는 지금도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금요일마다 지구대를 배회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앞으로 30년간의 근무기간 동안 작은 손만 내밀면 범죄의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많은 도윤이 들을 알아보고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30년 동안 얼마나 지킬 수는 알 수 없으나 나도 주마다 한 번씩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     


 범죄의 길목에서 “도윤아 내일 아이스크림 먹자!”라 외칠 수 있는 그런 경찰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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