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지구대 실습일지 - 5화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을 매일같이 하여 결국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답니다.’
흔히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인용되는 동화로 난 유치원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큰 그림동화에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양들을 잡아먹는 그림이 있었고 그 뾰족한 이빨과 붉은 혀가 생생하여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물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소년은 안 잡아먹었죠?-
거짓말을 하지말라는 교훈보다도 어린생각에 양들과 소년이 잡아먹힐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두렵고 무서웠다.
늑대가 진짜 나타난걸 안 마을사람들도 ‘그럴줄 알았다’고 통쾌하기 보단 오히려 가지 못한 그 날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야간 근무를 이야기하며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지구대에 새벽이 되면 이상하게도 나는 항상 이 동화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3시간에 보장된 휴식시간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증원을 요청하는 무전에서 시작된다.
야간 근무는 보통 오후 6시에 시작하여 다음 날 오전 8시에 끝나는 14시간의 근무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때 모든 시간을 깨어있게 되면 오히려 신고받고 출동 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3개 팀 중 한 개 팀은 3시간 정도의 휴게 시간을 준다. 물론 무조건 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2개 이하로 터지면 다른 팀이 나가 어느 정도 체력을 보충해 주는 방식이다. 서울같이 바쁜 도시의 경우 아예 새벽 근무를 편성해 5 교대로 돌려 효율적으로 운영되지만, 인원도 부족한 지방에서 5 교대를 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려워 이런 고육책을 사용한다.
그러나 내가 지낸 한 달 동안 8번의 야간 중 반절 이상은 증원 요청으로 잠바를 벗었다가 허겁지겁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말 필요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경찰로써 사건을 처리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의무이자 책임이다.
다만 요청의 대부분은 거짓말처럼 출동 도중에 끝나거나 도착해도 주변만 서성이다 그대로 돌아오는 경우였다. 데이트 폭력이라 하여 엄청 긴장한 상태로 출동해보면 홧김에 신고한 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건이 종료되어 오히려 왜왔나는 듯이 태연하거나 혹은 화재사건 시 출동하면 앞 팀이 이미 사건을 다 끝낸 경우 등 출동하지 않아도 될 사건들만 마주쳐왔다.
물론 실습생이자 경찰로써 아무런 피해자 없이 끝났다는 점만으로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실습 오기 전에는 증원 자체가 한 달에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같은 조원분들은 뭐가 씐 거 같다며 농담을 건네 왔다.
실제로 경찰에서는 새로운 신임 경찰이 배치되면 갑자기 신고가 몇 배씩 터져 사건을 신임은 사건을 몰고 다닌다는 속설도 있다. 물론 정말로 어떤 기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괜스레 나 때문에 정말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오는 순찰차에서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증원 요청이 와도 빨리 출동하려는 사명감보다도 ‘설마 이 건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90프로였다.
그쯤되자 ‘증원 바랍니다!’라는 말이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사건이 양치기 소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나의 이러한 얄팍한 생각을 간파하셨는지 연차가 15년은 더 된 장경사님은 사건 때마다 ‘주임님 긴장하시죠!’라며 상기시켜주었다. 그래도 이놈의 동화가 날이 갈수록 가시처럼 더욱 머릿속에 깊이 파고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할 7월 첫째 주의 그날. 나는 ‘증원’ 사건에서 생각지도 못한 늑대의 등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직 7월 초임에도 무척이나 더웠기에 더운 근무복을 잠시 벗어두고 안에 입은 반팔 차림으로 잠시 휴게장소에서 머물던 날이었다.
잠시 핸드폰을 보고 쉬었던 것 같은데 어김없이 증원 요청을 긴급히 바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시간은 자그마치 2시 반을 향하고 있었고, 그날따라 사건이 급격히 줄어든 코로나 시국 치고 괴이하게도 평일에 18시부터 5건의 사건을 받아 커피도 마시지 못하는 날이었다.
그 전 세 번의 야간 근무에서 증원 요청 5건이 전부 손쉽게 해결된 사건이었기에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며 해이해진 마음으로 순찰차를 올라탔다. 하지만 도착하자 마주한 건 방안에 온통 깨진 유리와 곳곳에 흩뿌려진 핏자국들이었다.
먼저 도착해 계속해서 달려들려는 가해자인 남자 친구를 떼놓고 사건을 처리하던 팀원분들은 우리의 모습에 황급히 여성분을 태워 인근 병원까지 데려가 달라하셨다. 그런데 피를 철철 흘리는 피해자는 오히려 누가 신고했냐며 한사코 경찰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가해자인 남자 역시 얼굴이 만신창이 인걸로 봐선 일반적인 데이트 폭력사건은 아니었다.
온 집안에 널린 유리조각과 흘린 피의 양으로 봤을 때 절대 안 된다 하자, 여성분은 병원 동행은 허락해 주었지만 허락과 별개로 이 시간에 지방 동네병원 응급실에 의사가 있을지 의아한 일이었다. 우리는 급한 대로 119 직원 분들께 연락하여 병원 앞에서 대기해 달라 한 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순찰차를 몰고 출발하였다.
순찰차에서 뒷좌석에 함께 여성분과 탔기에 피해자의 상처를 또렸하게 볼 수 있었다. 오고가는 대화로 유추해볼때 데이트 폭력에 여성분이 워낙 강력하게 맞서자 남자 친구가 이마와 목을 이빨로 깨물어 버린듯 했다. 한눈에 보아도 상처는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특히나 이마쪽은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이마가 너덜거리기까지 하였다.
참혹한 광경에 병원에 황급히 도착하였지만 예상대로 병원에선 더 큰 병원으로 갈것을 권유하였다. 소규모 병원에서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에, 그것도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은 환자를 치료하기란 불가능이었다.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이려는 피해자분을 끊임없이 설득한 끝에, 119 직원분들에 응급처치와 천안 대학병원에서의 치료를 동의하는 서명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남자 친구의 입국 경로에 대해 얼버무리는 것으로 봐서 사건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는 모종의 이유가 있는 듯했다.
아무리 신고자가 사건이 커지지 않길 바란다며 다시 돌아가라 하여도 이미 상해를 입은 피해자를 본 순간 경찰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가정폭력에 오래 노출된 피해 여성분들에게서 봐왔지 이와 같은 사례는 교육기관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사람이 사람의 이마를 이빨로 깨물어 그토록 잔인하게 상해를 입힌 것도 처음 봤다. 와, 인간의 잔인성은 어디가 끝일까? 사건 전에는 저 이마에 사랑의 입맞춤을 했을 텐데 순식간에 돌변하여 잔혹성을 보이는 인간 감정의 표출인 이마의 잔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해당 사건이 마무리되고 1시간이 지나서 다시 지구대를 돌아왔을 때 졸음은 싹 가시고 상태로 퇴근시간까지 굉장히 긴장하였다. 그리고 또한 마음 한 군데가 덜컥 내려앉는 기분도 들었다. 만약 이 경우 내가 사수였다면 장경사님처럼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를 설득해 병원 도착과 119 차량에 태우기까지 일사불란할 수 있었을까?
어떤 사건이든 긴장한 장경사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작 5건의 증원이 허탕이었다고 느슨해졌던 내가 리더였다면, 우왕좌왕하다 이미 피를 많이 흘린 피해자가 어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일을 겪었음에도 이후에 몇 번의 증원 요청이 도중에 끝날 때면 나의 마음은 점차 느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실습이 끝나고 다시 교육기관에 돌아가서 지내는 8개월 동안 이때를 잊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양치기 소년처럼 무전기에서 해결된 사건을 99번이나 ‘급히 증원이 필요하다!’ 외쳐도 1번의 진짜 나타날 늑대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은 소년을 믿지 않았던 마을 사람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되뇌며 말이다.
10건 중 9건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1건의 진짜 늑대를 잡기 위해 나는 구두끈을 풀지 않아야 하겠다.
tip - 가정폭력등 긴급한 구조와 보호 상담을 위한 전화는 112와 여성긴급전화 136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