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름 Mar 19. 2022

오늘도 나는 예언가가 되고 싶다

서른이, 지구대 실습일지 - 6화

사람들은 어릴 적 일은 왜 바로 조금 전 일처럼 잘 기억하게 만들어졌을까?

특히 본인이 억울하다는 일은 더 또렷하다. 나도 그런 일 하나쯤 갖고 있다.

 이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빛의 속도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잃어버린 물건이 있거나 사건이 있으면 나에게 잘 물어봤다. 신기하게도 난 여기 있겠지 하면 진짜 물건이 거기 있었고 이럴 거야 하면 실제로 그 일의 결말이 나왔다. 그러나 그런 능력 아닌 능력 과시로 엄마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오해의 일을 겪게 된다.     


그것은 엄마가 아침에 차고 있다 잠시 내려 논 목걸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 일어난 일이다.

그 목걸이는 여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다이아 목걸이였고 엄마도 아주 특별한 일에만 조심조심 착용하던 것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반찬 투정을 하며 크게 혼난 날이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 굉장히 짜증을 내다가 이후 친구 집으로 피신 간 생각이 난다.      


그리고 혼난 기억도 점차 잊힐 즈음 갑자기 친구 집에 엄마가 전화를 걸어 당장 집에 오라는 것이 아닌가? 이전과는 다른 지독스럽게 차분한 말에 나는 뭔가 사건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잔뜩 화가 나 분노로 일그러진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 몸에서 나오는 화는 나를 꽁꽁 에워 쌀 정도였다. 알아듣기도 힘든 하이톤으로 엄마는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목걸이의 행방을 물으며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식으로 물건을 숨겨두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하셨고 빨리 내놓으라 하셨다.     


숨기지도 않은 목걸이의 행방에 나는 억울함을 내비쳤고 점차 목소리가 커지더니 소리까지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악다구니를 써가며 “나한테 묻지 말고 잘 찾아봐!! 소파 같은 곳에 있을지 어떻게 알아!!라고는 소파에 손을 쑥 들이미자 정말 신기하게도 목걸이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소파 근처에도 간 적도 없건만 그곳에 있다는 것을 바로 발견하자 나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 버렸다.


순간 더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 순간 이걸 찾으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과 찾아낸 나의 능력 사이에서 2학년 꼬마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아니라고 하며 대성통곡을 한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라도 목걸이가 소파 시트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것을 바로 끄집어내면 나를 범인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나도 억울한 마음에 울며불며 난리를 쳤고 끝까지 믿어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아직까지 서운하다며 언급하고는 한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엄마에게서 사과를 받아냈다. 물론 엄마는 말은 하셨지만 표정으로는 난 그래도 네가 숨겼을 것 같은데라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이후에 신기하게도 나는 어딘가에 숨겨진 물건에 위치를 알아내거나,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들을 꿈으로 꾸는 등 마치 예언자 같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의경에 가 버스에서 내리는 꿈을 17살에 꿔 일기에 적어 놓거나, 후배가 잃어버린 지갑이 옷장에 있는 것을 맞추는 등 우연과 알 수 없는 예측 등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누구나 특별하고 싶어 한 듯 나는 이 예측력이 마치 나만의 뛰어난 능력이라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크게 자랑하여왔고 20대 초반까지 특별한 존재라 믿어왔다.     


하지만 신림에서 5년간 경찰 공부를 하면서 내가 예지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시험문제에서는 예지력 하고 정 반대의 답을 썼고 이러한 특별함이라고 여겼던 것이 자조적으로 바뀌었다.

꿈에서 올봄에 유명 정치인을 길에서 만나는 것을 꾼 뒤 진짜 마주치거나, 특별히 무언가를 예측하는 것이 맞아떨어져도 이 정도 우연이야 누구나 있겠지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경찰이 되었을 때 어릴 때부터 품어왔던 특별함은 이미 별거 아닌 조소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실습이 시작되었을 때 나의 예측력은 사실 발휘될 일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현실에서 벌어져 그 순간 끝마쳐지거나,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증거 CCTV로 이미 다 발견되어 체계적으로 끝내면 되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비가 억수로 내리던 7월 마지막 날. 나의 예측력이 진정으로 빛이 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구대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숙달 이되고 마음이 편해진 시점에 ‘CODE 0’. 아내가 실종되어 찾아 달라는 신고가 들어왔다. 7월에 아산은 비가 많이 내리긴 했지만 그날은 얼마나 억수로 내리는지 우산을 써도 빗물이 근무 복안으로 온통 적셔지곤 한 날이었다.     



신고 장소에 도착해보니 이미 119차는 3대나 와있었고 우리도 순찰차 2대가 출동하여 용화동 술집 근처에 대기하게 되었다. 신고자인 남편은 아내가 술을 마시다 30분 전에 나가서 연락도 되지 않고 사라졌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심지어 핸드폰도 꺼져있어 위치추적도 되지 않고 이 주변 일대 전부를 샅샅이 뒤져도 나올지 알 수 없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비가 이토록 오는데 어딘가에 쓰러져 있기라도 한다면 생명에도 위협이 있기에 서둘러 119분들과 함께 주변 일대를 돌기 시작하였다.      


용화동 일대 그 주변은 실습기간 동안 유도장을 가기 위해 수없이 걸었던 그 길이었다. 또 경찰대 교육을 받으며 외출을 나갔을 때 숱하게 돌아다니던 그 길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숱하게 쏟아지는 빗물에 시민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돌아도 찾을 수 없자 구급대원분들과 우리는 중앙에 있는 공원을 뒤지기 시작하였고 그곳에 있기만을 기도하였다. 공원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찾기 어려웠기에 더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0분을 찾았을까. 나도 모르게 5년 전. 쓸모없다던 예측력이 발휘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던 그 순간. 머릿속에 혹시 저 깊숙이 있는 계단에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다른 직원분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후레쉬를 켜고 가끔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필 정도로 나무로 가려진 깊숙한 곳을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게 웬걸. 계단 색이랑 똑같은 상하의를 입어 알아보기도 힘든 형체 하나가 웅크린 채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소리를 치며 발견했습니다!!! 를 외쳐댔고 경찰분들과 구급대원분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여 신원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실종자 분이 맞았다. 남편분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흠뻑 젖은 상태로 아내에게 달려갔고 우리는 신원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예측력이 그토록 발휘된 사실에 굉장히 기뻤다.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사람을 처음으로 구했다는 사실과 실종자분이 안전하게 가족에 품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후에 나의 예측력이 발휘될 사건은 한 달간 이 순간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단 한순간. 정말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내 예측력이 갑자기 발휘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뻤다.      


이 예지력이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추리하는 능력을 끌어모아 그것들이 퍼즐처럼 잘 맞추어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예지력을 높이기 위해 나의 머리는 오늘도 팽팽 돌아가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어릴 적 그토록 원망했던 다이아 목걸이를 찾던 예지력보다 더 강력해지도록.

이전 06화 양치기 소년 사랑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