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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Apr 16. 2022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필살기가 있다면

서른이, 지구대 실습일지 - 8화


지구대에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많이 있다. 화장실을 들리려는 아이, 집을 잃어버린 아이, 호기심으로 들리는 아이 등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지구대를 방문한다.


홀로 지구대를 방문한 아이들은 이미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부터 상당한 용기를 가진 것이기에 스스로 말도 잘하고 경찰들과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려 한다. 아이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인 상태로 머뭇거리지만 분명한 어조로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한다. 그러고는 저마다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가고 우리는 아이들의 답의 가치만큼 보람을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과 달리 부모님과 함께 지구대를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이 아이들은 경찰서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더군다나 경찰 관련 만화를 즐겨보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구대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를 무서워한다. 경찰서에 가면 무조건 나쁜 짓을 해서 벌을 받으러 가는 곳이라는 무서움으로 지문등록을 하러 온다.


2012년 7월부터 경찰청에서 시행되고 있는 ‘지문 등 사전등록제’는 18세 미만 아이들과 치매환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종 예방 정책이다. 보통 아이들이 실종되면 경찰은 아이가 차고 있는 이름표나 직접 질문을 한 뒤 주변 탐문을 거치지만 끝까지 보호자를 찾지 못하게 되면 복지시설로 인계하게 된다.

 이 오랜 기간 동안 아이 본인이 상당히 불안해할뿐더러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의 고통은 1분 1초가 억겁의 세월처럼 괴롭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통하면 아이 지문으로 신원이 바로 파악되어 보호자에게 연락할 수 있고 집주소로 안전하게 귀가시킬 수 있어 매우 중요하고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따라서 2021년 4월까지 445만 명이 사전등록을 하여 18세 미만 아동 56% 이 같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매우 좋은 제도 임에는 분명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이미 사전등록을 끝마쳤기에 지구대 근무 중에 실제 사전등록을 해본 건 한 번이었다. 그러나 그때만큼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크게 혼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겐 친절하게 답을 주거나 순찰차에 잠시 태워주면 세상을 가진 것처럼 초롱초롱 빛나며 웃었다. 하지만 경찰에 관심도 없던 아이들은 삭막한 콘크리트에 지구대 분위기에 험상궂게 생긴 우리들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넘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차에서 내릴 때만 해도 해맑아 보이던 아이들을 데리고 “사전 등록하러 왔습니다. 둘 다 반차까지 내고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오랜 숙원사업을 마무리하는 홀가분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끝까지 지문 등록기 위에 손을 올리기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자 어르고 달래며 온갖 노력을 다해도 아이들은 끝까지 기계 근처로도 가지 않자 당혹함이 그대로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강제력을 써서 아이손을 기계에 올릴 순 없는 노릇이고, 바빠 보이는 지구대원 분들에게 피해주기 싫었는지 10분이 지나자 오늘은 그냥 가야겠다며 나가시려 했다. 그때부터 아이를 어떻게든 웃겨주어 지문등록을 시키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화요일 오후 3시는 사건이 크게 없는 시간대였기에 지구대원 분들은 각자의 노하우로 아이를 웃기며 어떻게든 가족을 돕고 싶었다.



첫 타자로 아이들과 많이 놀아줘 봤다는 김순경 님이 등장하여 아이를 달래 보았다. 훈훈한 얼굴에 선한 인상을 가진 김순경 님을 보자 아이는 일단 울음을 멈췄지만 거기까지였다. 자동차 키에 달린 인형을 열심히 흔든 채 아이에게 말을 걸며 등록기로 유도하였지만 데스크 안쪽을 경계로 아이는 발을 딱 붙이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더니 결국에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그 기계 앞으로 가면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 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각자의 필살기가 통하지 않자 팀장님은 끝내 나에게까지 한 번 해보라며 권하셨다. 아직 실습생이기에 경찰 티가 그나마 덜 난다는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꼬마들과 극도록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내 주변에는 놀아줄 조카도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보육원 봉사활동을 가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어려워해 청소나 설거지 등 온갖 잡일을 먼저 자원해왔다.

나는 과거에 tv에서 봤던 것을 떠오리며, 쭈뼛대며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가 있는지 물은 뒤 최대한 나의 눈을 다정하게 만든 뒤 눈치를 살피며 유튜브를 켜고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아이는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엄마품에 안긴 채 이번에는 고개까지 돌려버렸다. 그렇게 30분이 넘는 노력에도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다행히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구대 분들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언니네 조카랑 평소에도 수없이 놀아주시던 강 주임님이 나가셨다 구원투수처럼 우리에게 등장하셨다. 전후 사정을 들은 강 주임님은 크게 웃으시고는

“나 같아도 이분위기에선 지문 등록하기 싫겠다. 시커먼 경찰 아저씨들이 잔뜩 쳐다보고 있으면 어떡해? 일단 다 나가!! 아버님만 남으세요”

라며 우리들을 모두 내보냈다. 지구대 안을 제복으로 가득 채웠던 7명의 경찰들은 우르르 나와 유리창 밖으로 나와 죽 둘러서서 무엇을 하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재밌게도 강 주임님은 아이 아빠에게 목마를 태우라 하시고는 지구대 안을 몇 바퀴 도는 것이 아닌가? 엄마품 속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아이는 어느새 그 모든 것이 기억이 안나는 듯 처음 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미쳐 알아채기 전에 데스크로 넘어와 아이 손가락을 올려 등록하고는 다시 목마를 태워 우리가 있는 밖으로 천천히 나왔다.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목마탄 것만 좋아라 했다.


 30분간 끙끙대던 일이 순식간에 끝나자 나는 벙찐 채 떠나는 아이와 가족분들에게 인사하였다. 강 주임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아이에 문제는 결국 부모가 담당하는 게 맞는 거야.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함부로 하면 안돼’라며 짧게 말하시고는 다시 각자의 업무를 시작하라 하셨다.


처음 지구대에 들어오며 다 큰 성인들만 지구대를 어려워하고 때론 무서워한다고 생각했기에 친절하려는 경찰을 싫어하는 아이에 모습에 더 크게 놀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경찰이라는 신분이라 하여 가족보다 더 아이를 잘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이 오만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웠다.


 이후로 실습이 끝나는 동안 경찰을 보고 우는 아이를 본 적은 없다. 대부분 아이들은 몸에 차고 있던 신상 후레쉬만 가지고 놀게 해 줘도 굉장히 흥미로워했고 좋아했다. 그러나 앞으로 오는 또 다른 우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며 이번에는 해결하지 않고 아이와 부모가 더 가깝게 할 수 있게 하여 편안한 마음을 주는 가교 역할로서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유도에는 유능제강이란 말이 있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한 번의 짧은 경험을 통해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필살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함을 가족이라는 부드러움이 능히 이겨낸다는 유능 제강.


 그것이 30분의 짧은 시간을 들여 30년 동안 사용할 얻은 소중한 필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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