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3. 내주머니 속에는 반딧불이 있다

by 푸르름

"여기는 독수리 참새는 응답하라"

"여기는 참새. 참새는 문제없다"


참새와 독수리. 이 암호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무전기로 작전 놀이를 하면서 약속한 단어였다. 전화기가 비쌌던 당시, 소형 무전기는 나에 목에서 잠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단순히 장난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던 이 기계는 우리 가족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지리산으로 여행을 갔었다. 당시 지리산 자락에 있는 콘도에 머물렀었는데 오랜만에 한 가족여행에 들뜬 나머지 나는 저녁을 먹고 외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하러 나갔다. 겨울 해는 금세 어둠으로 바뀌고 나와 할머니는 길이라고 찾아간 곳은 달빛도 보이지 않는 깊은 산속 중앙으로 바뀌어있었다.

때마침 눈보라까지 치면서 마냥 신비로웠던 길목은 전혀 딴 세상이 되었다. 계속 걸음을 걸으면서 나는 점점 공포에 휩싸였고 부모님과 친구들을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는 아이고 어쩌지만 반복하시며 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발길을 재촉하셨다.


"띠리리릭 띠리 리리 "

목에 건 장난감에서 울리는 소리.


"여기는 독수리 참새는 응답하라"

아버지는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자 평소처럼 무전기로 나를 호출하셨고 덕분에 가족들과 연락이 닿아 아버지께 우리가 갔던 길을 자세히 설명하여 그 무전기는 할머니와 나의 생명을 살린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세종특별시 의경이 되었다.

순찰을 다니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 특히 취객이 가장 어려웠다. 폭력을 휘두르는 취객을 우리가 상대하기 어려울 때도 무전기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하여 지원병을 쏜살같이 보내준다. 나의 의경 생활에도 한 생명을 구한 일이 있다


‘띠리리릭 퍼레이드 행렬 거의 끝나갑니다’

천안시가 축제에 열기 속에서 번쩍거리며 흥겨워 하자, 나의 점퍼 왼쪽 주머니도 덩달아 번쩍거리기 시작하였다. 축제기간이 되면 의경은 때때로 행사에 동원되어 교통을 통제하고 경비보조에 나서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무전기는 끊임없이 불빛을 쏟아내는데 전화기를 쓰지 못하는 의경에게 있어 무전기는 필수 통신기기이다. 대부분 행사 진행상황을 공시하거나, 위급 상황 시 경찰서에 긴급 호출을 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이 기기는 언제나 우리의 왼쪽 점퍼 윗주머니에서 중요사항을 전파한다. 하지만 무전기는 보통 무거운 기기가 아니었고, 들고 다니기 힘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무전기의 불빛은 어렸을 적 나처럼 생명이 되기도 한다.


어느 때와 같이 행사 마지막 날 반나절 동안 동원된 우리는 고된 근무를 마치고,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간 텅 빈 도로 위에서 부대 복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번 축제도 저 퍼레이드 행렬만 도착하면 다 끝나는구나 무전기 잘 듣고 있어”

시간 동안 서있었던 우리는 퍼레이드 행렬의 꼬리 부분을 바라보며 하루를 무사하게 마치는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저기... 이거 큰일이네 저 경찰 아저씨들 저 좀 도와주세요.”

그때였다. 나이 든 아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온 얼굴이 땀에 흠뻑 젖어있던 아저씨는 휴대폰을 두들기며 무언가에 쫓기듯 상당히 위급해 보였다.

나는 주위를 살펴본 후 아저씨에게 무슨 일인지 차분히 물어보았다.


“지금 제 어머니가 쇼크가 오셨는데 계속 저를 찾으셔서요. 근데 도로가 통제되어 택시는 찾을 수가 없고, 급한데 휴대폰으로 전화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어떻게 순찰차를 타고 빠르게 갈 수 없을까요?.”


알고 보니 퍼레이드 구경을 나왔던 아저씨는 급하게 병원에서 오라는 가족들의 전화를 받았으나, 통제된 도로에서 택시는 잡지 못하고 긴급전화를 하자 차를 보내긴 하겠지만 축제 도중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느라 바쁜 상황이라 발만 동동 굴리시고 계셨던 것이었다.


우리는 황급히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무전기를 통해서는 혹시라도 순찰차가 시간이 남게 되면 즉시 연락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바쁜 와중에도 잠깐 시간이 남게 된 퍼레이드 행렬에서 경찰 직원 분이 황급히 도와주러 오셨고 아저씨는 순찰차를 타고 안도를 하시면서 우리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시해주셨다. 그 순간 반나절 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무전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시간이 오래 걸려 어머니의 목숨이 위태할 수도 있었던 아저씨의 다급함은 이 통신기기 덕분에 혼잡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경찰 직원분이 빠르게 와주신 점도 중요했지만 무전기에 소중함은 퍼레이드의 불빛보다 더 큰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무전기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통신기기일지도 모르겠다. 화상전화까지 지원하는 요즘 통신기기를 놔두고 굳이 무거운 기기를 들고 다니는 것 또한 의문점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현대의 빠른 통신기기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작은 전파 기기를 통해, 우리가 신고한 일상생활에서 위급한 사건이나 사고가 빠르게 많은 경찰 혹은 구급대원 분들께 전파된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행사에서 겪은 위급상태의 어머니를 구한 나이 든 아저씨의 일과 같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그때 이 작은 전파기기는 휴대전화를 통해 들어온 하나의 정보를 다중에게 전파하여 언제 어디서 우리를 도와줄지 모른다. 군 복무 기간이 끝나 의경 생활을 마친 후에도 나에게는 무전기란 통신기기가 인생에 있어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또 하나의 경찰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반딧불처럼.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무전기로 놀이를 할 것이다. 혹, 누가 아나? 그 아이에게도 눈보라 속에서 생명의 빛이 되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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