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름 Oct 30. 2022

이놈!! 아저씨

새내기 수사 경찰 - 9화

초등학생 때 굉장한 개구쟁이였던 나에게 부모님이 때때로 겁주시던 말씀은 “그렇게 하면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한다”였다.



이놈!!이라는 말속에는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있었다. 경찰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난 경찰서에 끌려가 철창 속에 가두어지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다시는 부모님을 만나지도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는 줄 알았다.


그 짧은 두 글자 속에는 상상 이상의 무서운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놈!! 아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겁을 주었는데 온 사방에 비비탄 총을 쏴대며 놀아대거나, 맛없는 음식을 몰래 버리고 다 먹었다고 할 때면 부모님께서는 늘 이놈!! 이라며 혼내셨다.

당시에는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하며 혼내러 온다는 생각에 덜컥 겁을 먹었고, 정말로 집에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가끔 현관 문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기도 하였다.


다행히 경찰 아저씨는 한 번 도 우리 집을 찾아 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나의 성장기에서 지금의 인성으로 키워지게 된 데는 경찰 아저씨의 이놈!! 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경찰이 된 지금도 가끔 나에게 경찰 아저씨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 이놈 아저씨라는 표현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는 한다.


그리고 지난주 당직을 서면서 20년 전 이놈 아저씨! 가 20년 만에 나의 입 밖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과거 미디어에서 수없이 보았던 경찰서 앞을 지키던 의무경찰들이 제도 폐지로 전역한 후, 경찰서 정문 앞은 직원들이 돌아가며 평소에 입지 않는 경찰 근무복을 입은 채 당직을 서게 되었다.


수사과던 정보과던 어느 부서에 속해있더라도 평일은 2개월에 한 번, 주말은 3개월에 한 번 꼴로 모든 직원이 당직을 서곤 한다. 물론 경찰서마다 시간은 다르지만 밤을 새우며 당직을 서는 것은 공통된 일이고,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는 점은 같다.


특히나 평일이 아닌 주말에 당직을 서는 날이면 방문하는 시민분들도 굉장히 적어 CCTV를 보고 1시간마다 순찰도는 것 외에는 12시간을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딴짓을 하였다가 실수로 불상의 인물이 경찰서를 제재 없이 배회하게 하였다간 보안상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주 일요일도 3달 만에 돌아온 당직을 서는 날이었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무터운 날씨 때문인지 당시 근무를 서는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순찰도 돌아보고, 낡은 당직 초소 건물에서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그날은 특히나 사람이 없는 날이라 시간이 느리게 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단 한 사람도 방문객이 없었기에, 나머지 6시간을 어떻게 집중하여 보내야 하나 라는 생각에 천천히 CC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차 한 대가 천천히 민원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7~8세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주말에 어린아이가 온다는 것은 여성청소년과 에서 가정폭력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나는 신속하게 초소문을 열고 어린아이와 함께 내리는 보호자를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린 어린아이는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아빠의 손을 잡고 다가왔고 이에 서둘러 방문증을 꺼내며 목적을 묻고자 하였다.



“저 여기 우리 아이를 절도죄로 혼내주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는 신기하게도 질문을 먼저 하면서 윙크를 계속하셨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머뭇거리렸지만 곧이어

“세윤(가명)이 이제 큰일 났다. 경찰 아저씨가 너 혼내러 경찰서로 데리고 갈 거야!”

라는 아이 아버지의 말과 손짓에 빠르게 상황 파악이 되었다.


나는 바로 방문증을 올려두고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연기를 하듯 잠시 초소안으로 아이를 들어오라고 하였다.

친절한 말이었지만 내 표정 때문인지 아이의 발은 떨어지지 않았고, 겨우 아빠가 달래서 경찰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 왔다.


아이는 굉장히 불안한 듯 나를 힐끗 바라보면서도 당장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앞 의자에 앉았다.


“세윤이는 뭘 잘못한 거예요?”

“저는.... 아빠 지갑에서 천 원을 꺼냈어요. 그리고 말하지 않았아요”

천천히 단어를 끄집어내며 아이는 제복을 입은 나의 눈치를 보았다.


“허락받지 않고 아빠 물건에 손을 대면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돼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매우 굳은 표정으로 아이에게 천천히 질문하자 아이는 겁에 질린 채로 작게 말하였다.


“좋아요. 이번에는 아빠랑 왔으니까 봐주는 거예요!! 한 번만 더 그러면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할 거예요!! 오늘은 가도 돼요”


나는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이놈!! 을 불러왔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윤이도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서 나가라고 문을 열어주자 아이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아빠의 품에 안겨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혹시나 너무 강하게 말한 게 아닌가 싶었으나 아이의 아버지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시고는 아이를 달래시면서 차를 타고 돌아갔다.



아이가 이후로 진심으로 반성할지 아니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어린 시절을 봤을 때는 이날 일을 잊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다른 이의 물건에 손을 대고 싶은 순간에 오늘의 경험이 적게나마 브레이크가 되어주어 좋은 어른이 되는 데에 양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후 6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도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은 채 길고 긴 당직 근무는 끝이 났다. 비록 12시간 중 방문한 이는 단 한 가족뿐이었지만, 그래도 이 일 덕분에 12시간의 당직 근무가 굉장히 의미 있고 뜻깊은 하루였다.



앞으로 또 다른 이놈 아저씨! 를 연기할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혼신을 다하여 아이들에게 작게나마 바른 성장의 일부로써 역할을 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장난만 치던 개구쟁이에서 올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또 다른 내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그런 경찰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순의 장소, 교도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