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무척 더워서 지하철에 타서 에어컨 바로 밑자리를 점해도 땀이 식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오밀조밀 붙어 있고 날은 습하고 더우니 퇴근길은 불쾌함 그 자체였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그렇게도 덥던 어느 날, 지하철 디제이를 만났다. 그는 방송으로 "날씨가 너무 뜨거운 탓에 승객 여러분께서 많이 더우실 거라 생각됩니다. 현재 지하철 내 에어컨과 선풍기를 모두 가동 중이니 더우시더라도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퇴근하셔서 집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핵심 내용은 현재 지하철 내 에어컨과 선풍기를 전부 가동 중이니 더워도 조금만 양해 부탁드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론 핵심이 아닌 부수적인 무언가가 우리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바로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퇴근하셔서 집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였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열차는 지축 역을 향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 지하철을 탄 채로 지상으로 올라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지친 몸을 겨우 가누고 있던 길,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더워서 그런 게 아니다 결코). 습함과 끈적함, 흘러내리는 땀에 치솟았던 불쾌지수가 수직 하강하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것은 내 여름날의 '황홀한 우연'이자 환기였다.
그래. 정확하게 산책이다. 팍팍함 속에서 말랑함을 찾아가는 여정은 목적지 없이 그저 가볍게 길을 나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치열하게,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힘, 이는 어쩌면 용기가 아닐까. 목표한 것만을 바라보며 펼치는 달리기에서 벗어나, 길도 잃어보고 심호흡도 하며 쉬어갈 수 있는, 주변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렇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황홀한 우연을 만끽하고 삶의 환기를 누릴 수 있겠지. 어쩌면 그것은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 슬쩍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혹 아직 없으시다면 어서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