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적휘적 May 18. 2022

T의 위로법

어느 INTP의 변명

내 MBTI는 INTP다. 편하게 인팁이라고 쓰겠다. 인팁의 특징 중 하나는 공감능력 제로이면서 사회적으로 되게 공감 잘한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맞다. 단 이는 그러한 이슈들에 대해 이성적 판단을 통해 자신만의 논리와 근거를 세우고 이에 기반한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인팁의 사회적으로 공감을 잘한다는 착각이 발동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매우 관심이 있으며 이에 대해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공감이다. 결국 방식 차이의 문제인 걸까?


세상에 존재하는 T들의 공감과 위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문제의 해결에 방점을 둔다. 그 문제가 사라진다면 상대방은 더 이상 힘겨워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T의 고민은 이런 거다. '문제를 어서 빨리 해결해야 이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가만 보자,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 또는 '세상에 저런 일이 있다니, 안 됐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지?' 물론 모든 T가 이렇지만은 않겠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하는 이 고민은 공감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F는 감성, T는 이성. F는 공감, T는 해결책. 나 역시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 왔고, 스스로 공감능력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방식이 다를 뿐 공감이라는 큰 범주 아래 놓여 있는 것 아닐까?


T가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찌 됐건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생각해 낼 만큼 집중해서 들었고, 그것들을 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T가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뜻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귀찮아 죽겠으니 이 대답이나 들고 사라져'가 절대 아니다. 타고나길 그들에게 공감과 위로란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일 뿐이다. T는 문제의 종결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여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공감이라는 단어에 대한 관점을 조금은 달리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의미를 확장해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고통 자체에 집중해 그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과 상대방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사실 이 두 방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이상적일 테지만 그것을 해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저 두 방법은 모두 상대방을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F들은 말하겠지. 그게 어떻게 공감이냐고. 그런 건 하등 위로도 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외롭게 만들 뿐이라고.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주길 바란다. 그 해결책은 오롯이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생각해 내기까지 고도의 분석과 집중의 과정이 있었음을. 그 모든 것은 당신을 향한 진심임을.


(그렇다고 해서 문제 가운데 놓인 당사자에게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네가 잘못한  같아. 그럴  이렇게 이렇게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꽤나 슬픈 일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우리의 진심이 그동안 그렇게나 매도 당해   아니겠나! 지나가던 T 궁색한 포장과 변명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질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기에서 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