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INTP의 변명
내 MBTI는 INTP다. 편하게 인팁이라고 쓰겠다. 인팁의 특징 중 하나는 공감능력 제로이면서 사회적으로 되게 공감 잘한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맞다. 단 이는 그러한 이슈들에 대해 이성적 판단을 통해 자신만의 논리와 근거를 세우고 이에 기반한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인팁의 사회적으로 공감을 잘한다는 착각이 발동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매우 관심이 있으며 이에 대해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공감이다. 결국 방식 차이의 문제인 걸까?
세상에 존재하는 T들의 공감과 위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문제의 해결에 방점을 둔다. 그 문제가 사라진다면 상대방은 더 이상 힘겨워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T의 고민은 이런 거다. '문제를 어서 빨리 해결해야 이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가만 보자,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 또는 '세상에 저런 일이 있다니, 안 됐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지?' 물론 모든 T가 이렇지만은 않겠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하는 이 고민은 공감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F는 감성, T는 이성. F는 공감, T는 해결책. 나 역시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 왔고, 스스로 공감능력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방식이 다를 뿐 공감이라는 큰 범주 아래 놓여 있는 것 아닐까?
T가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찌 됐건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생각해 낼 만큼 집중해서 들었고, 그것들을 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T가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뜻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귀찮아 죽겠으니 이 대답이나 들고 사라져'가 절대 아니다. 타고나길 그들에게 공감과 위로란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일 뿐이다. T는 문제의 종결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여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공감이라는 단어에 대한 관점을 조금은 달리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의미를 확장해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고통 자체에 집중해 그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과 상대방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사실 이 두 방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이상적일 테지만 그것을 해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저 두 방법은 모두 상대방을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F들은 말하겠지. 그게 어떻게 공감이냐고. 그런 건 하등 위로도 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외롭게 만들 뿐이라고.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주길 바란다. 그 해결책은 오롯이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생각해 내기까지 고도의 분석과 집중의 과정이 있었음을. 그 모든 것은 당신을 향한 진심임을.
(그렇다고 해서 문제 가운데 놓인 당사자에게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네가 잘못한 것 같아. 그럴 땐 이렇게 이렇게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건 꽤나 슬픈 일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우리의 진심이 그동안 그렇게나 매도 당해 온 것 아니겠나! 지나가던 T의 궁색한 포장과 변명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퍽 떨어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