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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가은 Jun 30. 2024

온전히 너에게 가는 길

안녕. 한 주를 마무리할 때 네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참 좋다. 이번 주도 나름 바쁜 주말을 보내고 오늘은 핸드폰 속 메모장을 켜서 여태까지 썼던 짧은 글들을 쭉 읽어보았어. 지난 고민들과 몇 년치의 행복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흔적들. 이제는 지나서 흐릿할지 몰라도 당시에는 고달프고 잠들지 못했던 기억들을 몇 가지 꺼내보려고 해.


네겐 말이야.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마음을 주었던 사람을 더는 볼 수 없게 된 쓸쓸한 밤이 있었어. 그땐 이런 글을 쓰면 조금은 평온히 잠들 수 있었지.


[제목: 낙엽]

한여름 푸른 잎사귀는 곧 붉게 물들어 사랑을 속삭이다 결국 낙엽이 되어 지고 말았어. 나 당신이란 드높은 하늘만을 바라보던 샛노란 마음이었을 땐 옅은 바람 한 번에도 휘청이고 말았지. 긴 세월 겨울이 오지 않으리라 믿으며 선선하고 청명한 노래를 불렀어. 두 뺨 붉은 아지랑이와 영원히 붙잡던 온기는 금세 스치는 계절이 되었네. 이리도 걸음 한 번에 바스러질 쉬운 마음이었다면 차라리 사랑 그 언저리 애틋함이었다고, 쉽게 움트는 마음을 용서해 달라고 한 번쯤은 쓸쓸히 고백하고 싶었어.


한 해를 마무리하던 어느 날, 10년 뒤의 나인 네게 처음으로 말을 건 흔적도 남아있네. 그땐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금은 그 이유조차 희미한데 말이야.


[제목: 편지]

올해 참 힘들었지? 그렇지만 내년엔 너는 괜찮을 거야. 바로 너라서 괜찮을 거야. 어떤 감정을 앓게 된다 해도 시간의 힘을 아는 너는 결국 잘 흘려보낼 거야. 어떻게든 한 번은 상실을 머금을 두 뺨엔 금세 미소가 번질 거야. 그렇게 더욱 단단해질 거야. 정말 소중한 건 붙잡을 수 있고 스스로를 낡게 하는 건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거야. 이 모든 여정이 어느 찬란하고 따스한 지점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알게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끝내 행복할 거야.


첫 책 <탐라지몽>을 출판한 동시에 이직해서 일에 적응하느라 바쁘던 시절엔 제대로 번아웃이 온 적이 있었고 이런 글을 썼었어.


[제목: 음성]

나지막한 음성이 말했다. 어딜 그리 급하게 달려가고 있니? 네 몸만 한 짐을 엉성하게 짊어지고서 무얼 그리 쥐려고 하고 있는 거니?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보렴. 네가 뛰느라 보지 못했던 오솔길엔 버들잎들이 바람과 손잡고 춤추며 산다람쥐들이 싱그러운 여름을 속삭이고 있을 텐데. 너는 때론 흙이 가득 묻은 땅에 앉아 하늘 밑에서 들꽃들과 말동무가 될 수 있을 텐데. 아름다운 것들은 끝도 없는 목적지를 향해 뱉는 숨으로 끝내 흐려졌구나.


그러고 보면 삶이란 무질서, 불확실에 가까운 지난 순간들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인 것 같아. 지난 시간 미숙하고 불안했던 나도, 결국 누군가를 보고 보지 못하게 되는 일도 모두 거쳐야만 했던 삶의 일부였겠지. 힘든 시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모든 일을 겪으며 부수적인 감정을 느껴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아. 지난 나를 지금의 나에게 온전히 데려다 주기 위해서겠지. 앞으로의 일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또 시린 이별을 하고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건 나를 너에게 데려다 주기 위함일 거야. 더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네가 될 수 있도록 말이야.


몇 년 뒤 지금 네게 쓰는 편지를 보면 너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너에게 가는 길, 너를 조금이라도 더 완성하는 일을 위해 난 또 오늘도 힘껏 사랑하고 아파하고 성장할게. 특별한 너도 네 감성도 사랑해. 오늘 밤도 푹 잘 잠들 수 있길.


2024년 6월의 마지막 날, 늘 네 편인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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