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가은 Jun 26. 2024

결국 다정과 친절이 이기는 세상

날이 부쩍 더워졌어. 여름이 성큼 다가와 햇살이 활동하는 시간을 늘려놨지 뭐야. 덕분에 길어진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내고 있어. 온기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나는 역시 추운 겨울보단 무더운 여름이 더 좋은 사람인가 봐. 그 시절의 너는 어떠니? 여전히 여름을 더 좋아하니?


얼마 전 상수동을 지나갈 때 특별한 파스타 가게를 본 적이 있어.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은 파스타가 무료입니다‘라고 가게 앞에 큼지막한 문구가 붙어 있었지. 결식 위험이 있는 아이들에게 한 끼를 오천 원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데 사장님은 자신의 가게에서만큼은 무료라고 적어두신 거야. 이익만을 좇지 않는 마음, 베풀 수 있는 선에서 누군가의 배를 굶주리지 않게 하는 일, 소중하게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마주할 때마다 참 존경스럽더라.


사장님이 베푸신 선의처럼 대가 없는 친절에 크게 감동하는 편이라 오랫동안 기억 한편에 남아 있는 기억이 있어. 싱가포르로 유학하러 갔던 20대 초반의 나는 지금처럼 몸이 아주 건강하지 않았지. 낯선 나라의 무더운 날씨에 냉방병을 앓으면서 체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었어. 악화되는 컨디션을 무시한 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 결국 집 앞 지하철역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날이었어.


눈을 떴을 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나의 머리를 다치지 않게 기둥에 기대게 하고는 이마에 손을 댄 채 앉아 있었어. 마치 자신의 지인인 것처럼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묻던 선한 얼굴들.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도착하고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기억. 각자의 일정이 있을 텐데 낯선 외국인이 쓰러졌다고 해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병원에도 데려다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겠지. 그런 기억은 어쩌면 아주 힘든 시간을 지났을 나를 자주 숨 쉬게 하더라.


도시의 일원으로서 나 또한 많은 순간 물기 없이 퍼석하게 일상을 보낼 때가 많아. 늘 감사해야지, 베풀어야지 다짐하던 마음도 경쟁 속에 살아남다 보면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변하곤 해. 한마디 친절은 결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닐 텐데, 바쁘고 피로하다는 핑계로 그것을 베풀지 못하는 순간들이 꽤 잦다는 사실이 슬프네. 하지만 세상의 잔해에도 너와 나,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다정하고 친절해지는 일, 친절을 무기로 맞서는 일, 결국엔 모두 감싸 안아 주는 일이겠지.


어쩌면 작가로서 내가 쓰고 싶은 건 이런 이야기들 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읽는 이로 하여금 덮고 나면 조금 더 선의를 베풀고 싶어지는, 아직 세상이 따스하니 나 또한 조금 더 친절해져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품게 하는 그런 이야기. 그저 따스한 기억들을 떠올려보니 쓰고 싶은 글이 이렇게나 많아진다니, 참 따뜻하고 감사한 밤이네.


내일 하루 동안은 작은 친절 하나는 베풀어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매일 보는 버스 기사님께 환하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일,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그런 유의 다정함이 어쩌면 또 누군가를 살게 할지 모르는 일일 테니까. 친절 한 조각, 그것이 이 세상 한 바퀴를 돌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선함의 가치를 굳게 믿는 네가 자랑스러워. 오늘 하루도 네가 다정한 마음으로 살아내길.


2024년 6월 26일,

널 다정하게 애정하는 친구로부터

이전 12화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용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