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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Jul 06. 2024

지난 나날들의 너에게

안녕. 오늘은 특별히 10년 뒤의 내가 아닌 지난날의 나에게 편지를 써볼까 해. 그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솔직한 마음으로 말을 걸고 안아주고 싶은 그런 밤이거든.


어린 시절, 너는 마음이 참 착하고 여린 아이였어. 소설 속 세상에 자주 빠져들었고 일기를 쓰는 일을 그때도 참 좋아했었지. 한편으로는 한 가족의 장녀로 태어나 이런저런 기대를 많이 받아야 했어. 때론 완벽한 언니이자 딸이어야 했을 거야. 10살,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유학길을 떠나야 했던 너는 어땠을까? 한창 사랑받고 싶고 어리광 부리고 싶을 나이에 홀로 버텨내야 하는 법을 배워야 했겠지. 그때 널 둘러싸던 모든 의무들이 어쩌면 어렸던 너에게는 너무 버거운 무게였겠다 생각이 들 때면 괜스레 미안해지곤 해. 그저 더 많이 사랑받고 싶었던 소녀였을텐데.


커가면서는 친구라는 존재가 참 좋았어.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게 많은 가족들의 말보단 친구들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즐거웠지. 마치 내 전부 같을 때가 있었을 만큼 말이야. 그렇지만 세상 그 어떤 것도 전부 내 뜻대로 되긴 어렵듯이 우정도 그랬어. 내 마음의 크기만큼 돌려받지 못한 순간도 있었고 때로는 원치 않은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었어. 자존심을 내세우고 진짜 소중한 것들을 잃은 기억이 있네. 한때는 영원히 볼 것 같은 친구를 이제는 볼 수 없는 일은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았어. 그래서 그냥 생각을 안 하기로 했어. 그 친구가 처음부터 내 세상에 없던 것처럼 여기는 회피의 방식을 택했어. 그러지 말고 충분히 힘든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땠을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해.


어른이 되면서는 사랑에 관한 상처를 받기 시작했어. 온전히 믿으며 마음을 다했는데 돌아온 건 배신인 기억이 있어. 그 충격으로 넌 꼬박 반년을 집밖으로 나오지 않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들도 있었지. 이건 아직도 네 사랑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그때부터인가, 마음을 전부 내어주기 어려워지고 상대로부터 자주, 아낌없이 표현받지 않으면 불안해지곤 했으니까. 조금 더 어릴 땐 불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표현조차 하지 않고 마음을 접곤 했어. 힘들고 불안한 감정에 취약하니 애초에 이런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힘들었지. 이런 나를 받아주고 아주 긴 시간 이해해 주던 사람들에게서는 사랑을 배웠고 그들이 눈부시게 행복하길 바라지만, 난 나 스스로 온전하고 싶어. 친구야, 사랑받아야만, 인정받고 영원해야만 아름다운 건 아니야. 언젠간 끝나더라도 그 사람은, 그 일은 네 삶에게 뭔가 알려주고 가기 위해 널 지나갔을테니까.


네 여린 마음을 지금처럼 조금 더 솔직하게 자주 들여다봐주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솔직하게 네 감정을 인정하는데 넌 꼬박 10년을 썼어. 지금은 담담하게 털어놓을 수 있지만, 꺼내보기 너무 아프거나 두렵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상처를 외면했지. 좋은 게 좋은 거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지, 생각하다가도 결국 지금의 널 구성하는 건 네 과거의 기억들이기 때문에 결국은 만나야 하더라. 이 편지도 나를 배우고 인정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야. 힘들었던 기억들을 자주 꺼내보고 연고를 발라주고 다시 그 자리에 고이 넣어주는 일, 그래서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실수를 덜 하게 되는 일이 네가 원하는 네 삶의 방향일 테니까.


친구야, 넌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유난히 힘든 순간을 제대로 겪어야 했겠지.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 잠시 피하는 그 일들은 더 오랜 시간 너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잊지 마. 직면하고 답을 찾고 또 끊임없이 편지를 쓰며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살아나가자. 난 영원한 네 편이니까, 내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 줘. 이번주도 고생 많았어. 사랑해. 이만 줄일게.


2024년 7월을 시작하는 어느 주말,

네 과거이자 미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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