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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Jul 14. 2024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늘은 오래간만에 대청소를 했어. 무더워진 날씨를 핑계로 어지럽히기만 했던 방을 치웠지. 책상 위 먼지를 털고 옷장과 신발장을 다시 정돈하는 일, 밀린 이불 빨래를 하는 일처럼 사람의 마음도 한 번씩 그 창을 활짝 열어 묵은 감정을 내보내야 하는 것 같아. 결국은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감정, 내려야 하는 결정을 하루씩 미루다 보면 결국 마음의 방은 다신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될 테고 그땐 정말 늦었을지 모르니 말이야.


책장 선반을 정리하다 눈에 띈 류시화 시인님이 쓴 책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오랜만에 꺼내 읽었어. 오래전 선물 받아 읽고는 그 이후로 자주 되뇌는 구절이 있는 책이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 유명한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의 울림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거든. 과거에 잠식되지 않는 삶에 대해서, 미래에 기대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하는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해.


어리고 미숙했던 지난 시절의 내게도 상처를 무기 삼으며 지내온 시간이 있었지. 초등학생 때 짝꿍에게 넘지 말라고 그어둔 책상 위 삐뚤빼뚤한 선과 같은 것을 마음 깊이 품고 살던 시절, 누군가 그 선을 넘으려 하면 경계하기 바빠 상대의 진심 어린 표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 결국 마음을 줬는데 언젠가 날 떠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겁쟁이. 겉보기와 달리 가시가 잔뜩 돋친 선인장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알려주고는 떠나보내는 일을 반복하곤 오히려 눈물짓는 건 나였던 시간. 그땐 역시 당신도 똑같다는 회의적인 마음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이 뒤돌 수 있었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 그러니 값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그저 나의 것이었을 테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심코 타인에게 준 상처는 언젠간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는 세상의 이치를 그땐 왜 몰랐을까? 누구나 어딘가에서는 상처를 받고 또 다른 엉뚱한 마음에 상처를 주는 굴레가 이 세상의 당연한 명제이자 법칙이니까. 알고 보면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테고, 누구나 그리움 한 조각쯤은 묻고 살아가고 있을 텐데. 때론 목메는 저릿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또 잠시 잊고 일상을 살아가는 힘든 여정을 이어가고 있을 텐데, 좀 더 그 모두를 애틋하게 여기고 꼭 껴안아줄 수는 없던 걸까?


친구야, 네 세상은 어떠니? 조금 더 껴안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니? 겪을수록 사랑이라는 건 과거의 상처를 들이밀며 현재의 내 곁을 머무는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니더라. 오히려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는 일에 가까울 거야. 그렇기에 늘 명심해야 하는 건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사랑을 겁내면 안 된다는 것. 상처는 스스로 받은 것이기에 치유하는 건 나의 몫일뿐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책임이 없으니까. 심지어 상처를 준 사람도 말이야. 상처를 스스로의 영혼의 일부처럼 여기며 사는 건 너무 불행하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기 때문에.


녹색의 얕은 바다일 때는 달콤한 문장을 쓰게 하다가 언젠가 남색의 수심 깊은 바다가 되어 눈물을 쓰게 될 수 있는 일이 사랑일테지.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겁내기보단 후회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나답게 최선을 다하는 일,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는 일, 미래에 기대지 않고 결심이 서면 결정하는 일엔 단호해질수 있는 현명함을 갖는 일일 거야. 그 시절의 네가 그런 사람에 가까워져 있길 바라.


2024년 7월 중순

매미 소리가 정겨운 여름날,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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