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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Jul 27. 2024

마지막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차분하게 하루를 보냈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요즘 네게 편지도 못했지 뭐야.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곧 개기를 반복하는 창밖 풍경을 구경하면서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어. 계속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게 하는 그런 신기한 구성의 책을 골라왔지. 그중 한 질문에 대해서 너와 얘기해보려고 해.


Q. 당신에게 성공하는 삶은 무엇인가요? 멋진 집? 억대 연봉? 명품 가득한 드레스룸?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떤 삶을 성공했다고 생각하나요?


오늘 하루종일 이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 언젠간 사라질 수도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마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 텐데, 어떤 삶을 마침내 성공했다고 여길 수 있을까? 건강하게 자주 웃고 행복한 삶? 좋아하는 게 많은 삶?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지만 다른 결론에 도달했어.  마지막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이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이곳에 태어났겠지만, 언젠간 모두 다시 태어났던 시간 그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겠지. 한 개의 빗방울, 흙 한 줌, 한숨의 공기로 돌아가야 할 마지막의 순간까지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의 ‘성공적인’ 마지막 순간을 그려볼까 해.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웃는 모습이 여전히 어여쁜 할머니가 된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눈을 감을 거야. 마지막을 예감할 때쯤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편지를 미리 써뒀겠지. 그들이 얼마나 내게 큰 의미였고 삶의 페이지를 행복으로 함께했는지 빠짐없이 알려줄 거야.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울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거야. 아름다운 삶을 무사히 끝냈는데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어느 형태로도 당신과 함께할 테니 마지막을 축하해 달라고 말해줄 거야. 눈을 감는 순간 후회는 없을 거야. 아프고 미성숙한 날들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행복하고 아름다웠을 테니까. 수많은 상실이 삶을 스치고 상처를 남겼겠지만, 그 자체로도 살아있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을테니 소중하겠지. 그리고 죽음 너머 어떤 세상이 있다면, 태초 같기도 세상의 끝자락 같기도 한 곳이 정말 있는 거라면 눈을 감고 속삭일 거야.


마침내 저는 제게 주어졌던 생을 무사히 완주한 것이겠지요. 지금 이 마지막을 가장 축하하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삶이란 가장 길고 장애물이 많은 경주와도 같았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핀 꽃들도 구경하며 행복했지만, 잠시 쉬려고 앉았던 땅은 사실 가시밭길인 적도 있었습니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그 하루하루들을 온전히 살아낸 저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때론 앞을 알 수 없는 나날들이 버거웠지만 사실 마음 깊이 스스로를 사랑했습니다. 아주 긴 책 한 권을 정성스럽게 써낸 기분이라 홀가분합니다.


저는 다시 살게 되어도 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가끔은 너무 작은 것에 얽매이고 감정적인 제가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저는 스스로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들에 치이고 좌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지고, 언제나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좋았습니다. 늘 인생을 살아가는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우선으로 여기는 스스로가 멋졌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어떤 것에도 특출 나지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면들이 분명히 있는 저 자신이면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속삭이고 나면 마침내 나의 성공적인 삶을 완주할 수 있겠지. 너와 나의 마지막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렇게 나만의 성공을 정의할 수 있어서 기쁘다. 너와 내가 맞이할 마지막이 우리의 상상처럼 이토록 찬란할 수 있게 우리 함께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보자. 이 넓은 우주에서 우리로 태어나 결국 함께 끝을 맞이할 수 있겠지. 그 사실 하나로도 뭉클한 밤. 오늘은 어떤 꿈도 꾸지 말고 푹 잠들길.


2024년 7월의 끝자락,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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