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괜스레 얼굴에 홍조가 피고 열기가 오르는 그런 나날들을 지나며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고 있어.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너와 함께 나누지 못했네. 이제 조금 정리되었으니 자주 지금을 들려줄 수 있도록 할게. 매번 하는 약속이지만 이번엔 지켜볼게.
나는 그새 다른 회사에 합격해서 정든 회사를 떠나기로 했어.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긴 시간 치열하게 고민했지. 너무 오래, 많은 고민들을 머릿속에 대굴대굴 굴리다 보니 어느새 걱정은 물에 불린 미역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나를 지배해 버렸지 뭐야. (언젠가 누군가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려다가 불어난 미역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딱 그 모습 같더라!) 막상 가서 전회사가 좋았다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4년 가까이 쌓아온 나를 이렇게 한 번에 잃어도 되는 건가? 첫 번째 회사에서 지금 회사로 이직할 때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또 그걸 견뎌낼 수 있을까? 같은 일련의 걱정들. 아무도 답을 내지 못할, 오직 미래의 나인 너만 정답을 알고 있을 질문들에 확답할 수 없어 답답한 기분이었지.
이번처럼 살아오면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해 난 종종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어. 지나친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고 마음을 힘들게 하니 결국 몸까지 상하고 말더라. 그런데 있잖아. 생각해 보면 벅차도록 행복한 일일텐데 왜 고민들에 파묻혀 주어진 행복들을 즐기지 못하는 걸까? 치열하게 나의 몫을 해낸 대가로 가고 싶던 회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건 그야말로 축복이잖아. 그동안 내가 정말 열심히 해왔다는 증거이자 또 어디서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반증이니까 미리 걱정할 게 하나도 없을텐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달려왔으면서 내게 주어진 이런 행복한 순간들을 왜 마음껏 즐길 수 없는 건지. 꼭 몸이 아플 만큼 고민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속상한 요즘이야.
이미 결정을 위한 시간들은 지났으니 이제는 행복하기로 해. 데구루루 마음에 굴러다니는 불안의 구슬 대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여태까지 잘 해내왔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선물 같은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해. 뭐든 끝이 중요한 법이니까 지금 직장에서 마무리를 잘하고 쉬는 기간 동안엔 밀린 책도 읽고 글도 많이 쓰자. 일하느라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상했으니 건강하도록 노력하자. 나 자신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좋은 음식을 먹이며 지내는 거야.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도록 해보자.
그동안 정말 잘해왔으니 앞으로의 인생도 대부분 찬란할 거야. 내 가장 친한 친구인 너도 날 응원하고 있을 테니 힘을 내볼게. 넌 이번처럼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게 자랑스럽다. 네가 걱정하는 일보단 바라는 일이 더 많이 이뤄질 테니 기대해도 좋아!
8월의 끝자락,
너를 가장 사랑하는 네 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