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니? 어느새 산뜻한 바람이 구름을 타고 가을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계절이야. 난 일주일째 본가에 내려와 있어. 대학생 때부터 서울로 상경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이렇게 오래 본가에 머무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인 것 같네. 그동안 도시에서 공부하고 꿈을 찾느라, 또 치열하게 일하며 긴 세월을 보냈던 탓에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는데 막상 내려오니 참 좋다.
너도 알다시피 사는 동안 기대를 참 많이 받고 자랐어. 누구나 그랬듯이 뭐든 잘 해내서 멋진 사람이 됐으면 하는 기대를 온몸에 받았지. 어렸을 땐 주변의 기대가 부담스럽고 버거워 곧잘 투정을 부리고는 했었어.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어느새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가장 나에게 기대가 가장 많은 존재가 되어있더라. 이 정도도 못해? 남들도 다 하는 거잖아. 넌 무조건 해내야 해, 라며 스스로를 거대한 파도 같은 기대 속에 밀어 넣곤 했어. 그 파도는 한 차례 태풍 후의 물결 같아서 매섭게 커지고 어떤 것들을 잡아 삼키곤 했지. 소소한 행복,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작은 성취에도 얻을 수 있는 만족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 같은 것들을 말이야.
그동안 기대의 기준을 파도의 정상에 뒀던 탓에 실망하는 일이 잦았어. 기대치를 간신히 넘기면 행복해하기보단 당연하게 여겼고 넘어지면 스스로에게 곧잘 실망하곤 했으니까. 강인한 사람들의 빛나는 성과에 비해 마냥 작아 보이는 나의 나약함과 한결같지 못한 애정의 정도, 갈등을 겪고 나면 타인보다 힘겨워하는 예민함 같은 나의 성질들에 난 끊임없이 실망하며 살아왔어. 기대와 실망의 굴레가 바닷속 파도처럼 커졌다 죽길 반복했지. 늘 그렇게 태풍이 오고 간 처참하고 새카만 바다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으니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어디 엔간 털어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었을 테니까.
그 맘쯤 너는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의 바다를 갖고 있니? 그렇다면 바랄 게 없겠어. 이제부턴 나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하니까. 한 번에 변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기대의 기준을 낮추려고 해. 서툴게 걸음마만 떼도, 삐뚤빼뚤 글씨만 써도 칭찬을 받던 어린 시절처럼 말이야.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 아주 얕은 파도라는 소소한 기대로 나의 바다를 꾸리고 싶어. 언젠간 또 실망하더라도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며 자책하지 않도록 만족과 사랑의 순간을 기억 속에 가득 채우고 싶어.
그럴 수 있도록 나를 많이 응원해 줘. 너보다 나약하고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두려움도 많을 나를 떠올려줘.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고 앞으로는 조금 쉬엄쉬엄 해나가도 된다고 말해줘. 그래도 넌 내가 될 거라고, 지금보다 더 완전하고 행복한,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내가 될 거라고. 나도 늘 네가 평온하고 더 단단한 마음을 가졌길 매일같이 소원할게. 사랑해. 난 늘 네 편이야. 늘 건강하길.
보름달이 완성되어가는 어느 밤,
네 가장 친한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