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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가은 Jun 19. 2024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용기

글을 쓸 때 나만의 습관이 있어. 눈을 감고 잔잔한 노래를 틀어 두고는 며칠 동안 쌓인 껍데기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 바쁘게 지내다 보면 종종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희미해질 때가 있거든. 그렇게 겹겹이 껴입은 옷들 속에 숨어있는 진짜 나를 마주하면 끊임없이 말을 걸어. 그러다 보면 운명처럼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만나게 돼. 네 속에 숨어 살던 아이들이 이제 그만 꺼내 달라고 외치는 속삭임이 들릴 때면 얼마나 설레는지 친구야, 넌 알고 있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지. 학교에서 갯벌 체험을 갔던 날, 축축한 진흙 속에 사는 조개나 고둥을 본 적이 있어. 선생님은 그것들이 연약한 몸을 지키기 위해 딱딱한 껍데기를 갖고 있다고, 자신을 보호할 껍데기를 매일 조금씩 더 크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나이테 같은 무늬가 새겨진다고 했지. 어린 나는 그렇구나, 신기하다! 넘겼지만, 지나고 보니 사람들의 마음도 다를 바가 없는 것만 같아. 우리 모두 각자의 고유한 껍데기 속에 여린 마음을 고이 숨기고 살고 있으니까.


나 또한 그런 사람이야.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글을 쓰며 세상을 작은 사랑으로 물들이며 살아가겠노라 결심했었는데, 그 마음이 무심코 물거품처럼 사라진 적이 있지. 사랑받고 싶은 만큼 사랑받지 못한 기억들이 삶을 관통해 차곡차곡 쌓이기 마련이니까. 그때부터인가. 나는 조개처럼, 달팽이처럼 껍데기를 짓기 시작했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지은 딱딱한 마음. 나도 모르게 그 껍데기를 아주 긴 시간 일부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몰라.


모순적이게도 우리가 자주 숨어드는 그곳은 긴 시간 살아오면서 마음 한 조각이라도 주었던 사람들이 조금씩 지어준 껍데기일 거야. 가족, 친구, 연인이 나의 삶의 페이지를 정성스럽게 지나간 흔적일 테지. 물론 늘 껍데기 밖으로 나와 살갗을 드러내는 일이 사랑이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무방비하게 하얗고 연약한 나를 마주칠 때면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더라. 생을 움켜쥐고 뒤흔들만한 감정을 예감하는 순간에는 무서워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어. 그렇게 점점 티를 내지 않는 데에는 능숙해졌으면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은 왜 이토록 어려워졌는지.


네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줄곧 하는 생각은 다시 사랑할 용기를 되찾고 싶다는 거야. 지나고 보면 껍데기에 숨어 마음을 전부 다 전하지 못한 기억만이 후회스러웠으니까. 이제는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 혹은 앞으로 곁에 두고 싶은 사람에게 온 마음 다해 그들이 얼마나 눈부신 사람인지 친절히 알려줄 거야. 마음 한톨, 한 문장도 빠짐 없이 읊어줄 거야. 무늬가 제각각일 서로의 껍데기도 매만지며 이해한다고 말해줄 거야. 사실 그것들이 가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테니까.


이제는 용기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사랑의 부산물들에 대해서도 그래 어쩔 수 없지, 내가 널 사랑하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기꺼이 감수해야지,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상대가 어떤 껍데기를 갖고 있든 무해한 사랑으로 무너뜨리고 여린 알맹이까지 사랑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러다 또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분한 마음이 아닌 최선을 다했음에 만족하는 현명한 태도로.


내가 아는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알고 있지? 투명하고 맑은 바다 같은 너니까. 이번주 바빴을 텐데 수고했어. 더 많이 웃고 솔직한 한 주가 되길.


2024년 6월, 널 진심으로 아끼는 네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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