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32번 도로 위

by 가은

안개가 잔뜩 낀 터널을 지나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갯속, 차들은 서로를 예의주시하며 서행해. 같은 32번 도로 위에 있지만 각자의 목적지는 다 달라. 누군가는 휴게소에 들러 쉬기도 하고 누군가는 목적지만을 향해 열심히 달리지. 지나가다 마주친 우연일 뿐, 가야 할 목적지는 모두 달라. 그저 잠시 만난 거야. 함께 같은 도로 위를 달리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하고 반가워하다 또 가야 할 곳이 생각나 발걸음을 빨리 하는 거야. 삶이란 게, 시절만을 함께하는 인연이라는 게 그런 거야.


끊임없이 뿌연 안갯속을 걷고 있자면 가야 할 곳이 희미해지기도 해. 난 어디로 가기 위해 태어났을까,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는 어디일까, 알지 못한 채로 캄캄한 터널이 유독 많은 32번 도로를 지나가. 창문 밖으론 계절이 흐르고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어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오늘은 겪어내야만 하기도 해. 평생을 꿈꿔왔던 행복한 순간은 저장하고 힘들고 슬픈 일들은 서서히 망각해 가면서 그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운전해. 때론 두려워하면서, 또 때론 잔뜩 기대하면서.


모두가 빠르게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시야를 가로막는 안개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연료가 다되어 멈춰 서기도 하지. 유독 빠른 다른 사람의 속도를 보며 부러워하다 고꾸라지기도 해. 내 차보다 허름한 차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 최근에 나온 비싸고 빠른 차들을 눈여겨보며 불행을 사기도, 내 길은 어디일까 고민하는 마음이 커져 스스로를 작게 만들기도 해. 그 도로가 그래. 유독 사건 사고가 많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지. 그곳에만 있으면 각자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유독 잘 까먹곤 해. 결국 모두 고유의 목적지가 있고 그곳에 조금씩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해.


32번 도로를 잠시 빠져나온 지금, 나는 또 다른 도로로 가고 있어.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멀었으니까 아주 긴 여정이 될 테지. 하지만 유독 비교와 결핍이 가득했던 그 도로를 나와보니 알 수 있어. 나 너무 괜찮은 사람이더라. 그건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명제와도 같은 사실이었지. 어디에 도착하든 얼마나 걸리든 간에 존재 자체로 정말 경이로운 사람이더라.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하고 사랑받아야 마땅할 존재더라.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더라. 그 자신감과 사랑이 이 머나먼 여정을 완주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연료더라.


그냥, 너만은 공감할 이 이야기를 오늘은 들려주고 싶었어. 넌 지금 몇 번째 도로를 달리고 있니? 현재의 내가 이런 미지의 도로도 달려봐야 네가 또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얼음처럼 동동 띄워진 그런 멋진 풍경 속도 달릴 수 있겠지. 우리만의 연료를 잃지 않은 채,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멋지게 여기며 무사히 그 도로까지 완주해 볼게. 잘 자고 한주 시작을 웃으며 하길.


첫 12월을 맞은 날,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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