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린 어느 겨울날, 어김없이 한 주를 마무리하며 네게 편지를 쓰고 있어. 일주일 뒤 갑작스럽게 잡힌 해외출장 때문인지 주말 내내 마음이 붕 떠 있었어. 풍선처럼 실에 매달려 하늘로 둥둥 떠 있는 기분, 넌 어떤감정인지 알거야. 평소 같으면 주말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지 고민하며 힘을 냈을 텐데 이번 주는 유난히 그러지 못했어. 이상하게도 이불 속에서 계속 잠들어 있고 싶은 무력감이 자꾸만 날 덮쳤거든.
곧 마주하게 될 유럽, 어느 도시의 풍경을 떠올려 보니 언젠가 꿨던 꿈이 떠올라. 이른 아침, 따뜻한 베이글과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고 원하는 일을 성취해 내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눈부시게 멋지네. 내가 오랫동안 바라고 꿈꾸던 어른의 어떤 모습이기도 해. 그런데 그와 동시에 불안해지는 건 왜일까? 아마도 바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느낄 허무함과 단절된 기분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이미 예전에 수차례 겪어보았으니까. 이상하지? 집에서는 네게 이렇게 편지도 쓰면서 누구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고,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면서 말이야.
그 이유를 찾아 과거의 경험들을 곱씹어봤어. 혼자서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내야 할 때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껴야했던 기억들이 하나 둘 스쳐갔지. 낯선 곳에선 유난히 잠에 잘 들지 못하니 그 시간동안 생각은 점점 뭉게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거든. 그렇지만 어딜 가든 내 곁에 '안전한 사람'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더라. 그 사람과 함께라면 마법처럼 어디든 안전하게 느껴졌고 마음은 평온해졌어. 그 어떤 발자국도 디뎌지지 않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오지라도 말이야. 하지만 삶이라는게 언제나 '안전한 사람'이 내 옆에 있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더라. 특히 아주 작고 소중한 울타리를 가진 나같은 사람에겐 말이야.
내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상대를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해. 경계심이 강한 고양이처럼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곁에 들이기 전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 사람이 안전한지 시험하곤 했지. 못난 모습을 보여도 한결같이 곁에 있어 줄지, 무엇이든 털어놓아도 될지,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불안이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극히 소수의 사람만을 안식처로 느끼고 어렵게 울타리 안으로 들이니, 오히려 내가 아끼는 사람의 범위는 타인의 범위보다 훨씬 더 작을지도 몰라.
쉽지 않은 여정을 지나, "이 사람은 안전해. 무조건 내 곁에 있을 거야. 떠날 일은 없을 거야! 반드시 무탈할 거야."라는 확신이 들면, 그제야 마음을 쏟아붓기 시작해. 상대를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처럼 여기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동시에 그만큼을 바라기도 해. 모순적이게도 내가 안정감을 느낀 사람은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한 한그루의 나무 같아서 그 누구도 그곳에서 쉬고 싶어 하더라. 그래서 내 딴에 지키고 싶어 세워둔 울타리는 오히려 그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마는 숨막히는 단단한 틀이 되기도 하더라.
생각해보면 아무리 나만의 '안전 테스트'를 거쳐도 떠나갈 사람은 날 떠났고 있어 줄 사람은 여태 곁에 있어주었어. 그게 인연의 이치이기도 하니까. 영원한 안전기지를 갖고 싶은 내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스스로를 안전기지로 여기는 것. 나를, 그리고 10년 후의 나인 너는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안전하니까. 가끔 통통 튀고 이해 못 할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나를 너는 늘 사랑하고 응원할 테니까.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안식처가 되어주는 무해한 내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영원한 안식처인 나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아껴주어야 겠다는 다짐을 끝으로 편지를 마칠게. 안전한 너와 함께라고 여기며 무탈히 출장 잘 다녀오고 또 편지할게.
1월이 어느새 절반이 지나버린 2025년 어느 겨울,
네 영원한 안전기지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