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시작. 대낮의 햇살은 벌써 여름으로 기울다가도, 해가 지고 나면 다시 산뜻한 바람이 불어와 봄의 끝자락을 붙잡는 듯해. 달력을 넘기다 6월인 것을 발견하고는 벌써 올해도 반이나 지났네, 시간 참 빠르다며 지난 시간들을 꺼내어 보곤 하지. 아쉬운 마음은 하늘 어딘가로 날려 보내고, 여전히 품고 있는 희망은 꼭 안은 채로 여름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 전에 없이 열정적이고 뜨거울 계절을 앞두고 잠들지 못하는 요즘, 눈을 감으면 지난달 다녀왔던 어떤 도시의 풍경이 재생되곤 해.
네게 편지를 하지 못하던 시간 동안 또 출장을 다녀왔어. (출장이 잦은 회사 탓이지!) 이번엔 파리와 런던, 일정은 빼곡하고 분주했지만 초여름의 그 도시들은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더라. 파리의 강가에서 빛의 조각처럼 흩어지던 물결, 새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솜사탕처럼 낮게 피어난 구름, 아무 데나 걸터앉아 자유롭게 햇빛을 즐기던 사람들, 도시를 색칠하는 듯한 빨간 이층 버스와 전화부스, 해가 뉘엿뉘엿 지던 주홍빛 런던의 거리, 기차에서 마주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매일같이 마주했어.
하루 일정이 끝나면 한없이 걸었어.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이 멀어도 거리거리가 낭만이었으니까. 명소를 발견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부탁해 가면서. 아기자기한 가게나 서점이 보이면 걸음을 멈춰가면서.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마신 와인 한잔과 사장님과 나눈 짧은 대화, 강가에서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마시며 시작한 하루하루가 잊히질 않아. 일상이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길 만큼 그 도시에 흠뻑 빠져있던 시간이었지.
그곳에 머무는 내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몇 번이고 같은 생각이 떠올랐어. 분명히 하루하루가 낭만이겠지. 매일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면 기분이 자주 말랑하겠지. 낭만에 젖어 일상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겠지. 습관같이 찾아드는 두려움이나 불안은 이곳의 풍경에 묻혀 어느새 희미해지고 사그라들겠지. 더 넓은 세상을 만끽하며 내가 모르던 세상 저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함께하면 여유롭고 느긋하겠지. 이런 생각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더라.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 줄 알고 있냐며 묻고 싶어질 정도로.
서울에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은 그곳을 떠올렸어. 사진을 자주 꺼내보며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중에 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상상을 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여느 때처럼 표정 없이 퇴근하던 길, 집에 다 와가는데 한 외국인이 내게 말을 걸었어.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냐고.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혼자 여행을 왔는데 롯데타워를 배경으로 해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다고 부탁했지. 더 이상 해맑고 신날 수 없는 아이 같은 얼굴을 보는데 몇 주 전의 내가 떠올랐어. 정성스럽게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주었어. 그 순간 말이야. 문득 깨닫게 되더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일상도 누군가에겐 꼭 살아보고 싶은 하루일 수도 있겠구나. 왜 그 사실을 잊고 남의 것만 부러워했을까, 하면서.
사람의 마음은 안보다는 자꾸 바깥으로 기우는 것만 같아. 닿지 못한 것을 동경하고 가진 것엔 익숙해져서 소홀히 하곤 해. 누려보지 못한 행복은 한없이 커 보이고 원래부터 나의 것이었던 일상은 사소하고 당연하기만 하지. 하지만 결국 행복은 내 곁에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한지 매 순간 애를 쓰며 깨달아 가는 일인 것만 같아. 출근길에 지나치는 은행나무길이나 애정하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이 도시의 오후,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 옆에 있어준다는 일이 얼마나 나의 하루를 환하게 하는 일인지 잊고 있던 것만 같아. 사실 알고 보면 다정함이 속속히 녹아들어 있어 조용하게 낭만적인 이 도시에서 때론 치열하게, 때론 평온하게 살아가는 일상은 잃고 나면 얼마나 그리운 것일까.
그래서 네게 편지를 써. 남의 것과 비교하는 대신 내가 가진 풍경과 감정을 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을 자각하며 살아가고 싶어서. 요즘 네가 살고 있는 그 도시는 어떠니? 그곳에는 사랑이 더욱 넘쳐 흐르길. 너 스스로를 부러워할 수 있는 하루들이 가끔 네게 찾아가길. 오늘도 조금씩 낭만적인 하루를 살아가길.
2025년 6월의 시작,
잠실의 한 카페에서 네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