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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개군날돌들막 Jul 15. 2019

9. 비뚤어진 신앙심

P양 -3

그 당시의 나에게 P양은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녀 또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매일 새벽기도를 다녔고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퇴근 후와 주말은 모두 교회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종교가 다른 나에게 전도를 한 적은 없지만, (오히려 '아줌마'가 종종 식사를 같이 할 때면 나에게 전도를 해서 아주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가끔 교회 업무를 나에게 부탁했고 종교에 너무 심취해서 나를 곤란하게 했던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L대리 이상의 상사들이 모두 출장을 가는 날이면 그녀는 새벽기도를 갔다가 자주 지각을 했다.

L대리는 P양과는 업무적 연관성이 없었으므로, 또한 L대리 자기도 매번 무단지각을 하기에 P양의 근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P양은 교회 일을 핑계로 매번 나보다 빠른 퇴근을 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은 이미 몇 년동안이나 그녀의 교회생활을 알아서 이제 포기한 눈치였다.

그런 그녀의 생활이 내심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났다.

나는 퇴근시간이 지나고 30분이나 더 눈치 보다가 퇴근을 하는데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P양은 딱 정시에 퇴근하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회생활을 이유로 회식도 빠졌고 상사가 모두 없는 날이면 성경책을 펴놓고 찬송가를 틀어놓고는 했다.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교회 일을 핑계로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P양의 이런 부분이 사수를 통해서 '아줌마'의 귀에 들어갔고 P양이 권고사직을 당할 뻔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일 이후에도 P양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녀가 나오지 않는 날이면 나는 비서인 그녀의 업무까지 처리해야 해서 더 바빴다.

P양이 꼼꼼한 편은 아니어서 휴가 당일에 처리해야 할 내용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고 휴가를 가버렸기 때문에 '왜 아직도 업무 처리가 안 되었냐'는 짜증 섞인 상사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업무가 많은 날에 유독 휴가를 사용했다.

그럴 때면 P양은 나에게 몰래 전화해 상사들 모르게 일을 처리해달라고 했는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그녀가 휴가 가기 전 날부터 혼날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P양이 교회 일을 핑계로 쉬는 날이 계속되었고 L대리 또한 여행을 핑계로 두 달에 하루 정도는 쉬었다.

내 사수 역시 사장님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골프를 치러 해외에 나갈 때 함께 가는 일이 많았다.

나는 사실 이전에 했던 인턴 업무로 연차에 대한 규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수에게 내 남은 연차 개수를 말하고 하루를 쉬었다. 별 일은 없었지만 그냥 나도 남들처럼 쉬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하루 쉬다 보니 내 업무가 내 사수에게 몰려서 힘들었나 보다.

그다음부터 사수는 나에게 연차 사용에 대한 이유를 캐물었고 내가 연차를 사용하면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역설하였다. L대리 역시 나와 업무적인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불편했던 건지, 아니면 나를 괴롭히고 싶었던 건지 모두가 우회적으로 내 연차 사용을 반대하였다.

P양이나 사수의 대직자가 나였고 L대리는 다른 부였기 때문에 그들의 연차 사용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이다.


퇴근에, 연차 사용까지 눈치 보는 회사라니... 점점 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P양의 신앙심에 정말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전 회사는 여름이면 전사 직원이 모여서 워크숍을 갔다.

그 날은 사장님의 가족을 비롯해서 모든 직원의 가족들과 함께 리조트에서 2박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아줌마'를 비롯한 상사들 그리고 L대리와의 2박이라니...

나는 가기 싫었지만 근무 날에 진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P양이 상사에게 교회 업무 때문에 워크숍에 갈 수 없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당연히 그녀의 의견은 반려당했고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워크숍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워크숍 가기 2주일 전쯤이었나, 워크숍 장소가 정해졌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강개군날돌들막님, 우리 워크숍 안 갈 거예요"

"네? 이미 날짜 다 정해졌고 공지도 보냈잖아요?"

"제가 요즘 열심히 기도 중이거든요, 하나님께서 꼭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거라서 워크숍은 취소될 거예요! 그래서 이 건 비밀인데 저, 아직 리조트 예약 안 했어요!"


나는 조금 놀랐다.

그녀가 워크숍 장소를 예약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출발 2주 전, 그것도 한창 성수기인 여름에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일 장소를 아직도 예약하지 않았다니...

워크숍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희망보다 이 일이 가져올 파장이 무서웠다.


결국 워크숍은 취소되지 않았고, 상사들 중 누군가의 지인을 통해 싸구려 모텔 두 개를 겨우 예약 할 수 있었다.

그 모텔에서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이 반 반 나눠서 투숙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P양은 워크숍 도중 교회 업무를 핑계로 연차를 쓰고 결국 집에 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회사에 정을 붙일 새도 없이 점점 더 지쳐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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