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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화 Mar 06. 2020

21세기의 액션 영화

<본 슈프리머시>,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존 윅 - 리로드>

  다른 예술매체와 차별화되기 위해서, 연극의 하위 매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영화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이미지로 설명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액션 영화라는 장르의 탄생은 영화라는 매체의 아주 자연스럽고 예상 가능한 발전 과정의 일부였을 것이다. 액션 영화의 시작은 1920년대 할리웃 감독 버스터 키튼에서 출발한다. 그는 액션 영화라고 부를만한 최초의 것을 탄생시켰고, 동시에 액션 영화의 여러 유의미한 규칙들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버스터 키튼은 절대로 자신의 몸을 아끼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항상 곡예에 가까운 스턴트들을 선보였다. 그는 단순히 스턴트만을 잘했던 감독이 아니었다. 관객의 눈이 언제 어디로 향하게 할지, 어떻게 자신의 동작을 돋보이게 하고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해낼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예술가였다.

  버스터 키튼은 영화 속 모든 씬을 고정된 카메라로 전체가 보이게끔 찍음으로써 관객이 그의 액션 전체를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로 느낄 수 있게끔 하였다. 절대로 같은 동작을 두 번 하는 법이 없었으며, 웃음이 터지지 않을 장면은 촬영 도중에라도 언제든 수정해가면서 찍었다. 수직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뒤에 배치하거나, 공간 자체의 구성을 독특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는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관객의 눈이 그가 바라봐주길 바라는 곳에 정확하게 위치하게끔 했다.

  그가 만들어낸 다양한 구도와 규칙들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모든 영화감독들을 통해 다시 재생산되었다. 많은 감독 중에서도 그의 철학을 가장 제대로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성룡일 것이다. 성룡 역시 몸을 아끼지 않는 배우였으며, 그도 관객이 액션의 전체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연출을 했다. 그의 영화에서는 심지어, 같은 동작을 편집을 통해 빠르게 두 번 보여주기도 했다. 버스터 키튼과 성룡의 영화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이관객이 이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였다. 이러한 스타일의 장점은 이미지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점이지만, 대신에 배우들의 스턴트 연기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

영화 '본 슈프리머시' 스틸컷. ⓒUIP코리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액션 영화에서는 100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버스터 키튼, 성룡 식의 연출 외에 새로운 방식의 액션 영화 연출이 등장했다. 선명한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키는 방법 대신에, 빠른 컷 분할과 빠른 카메라 워크를 통해, 화면에 보이는 정보량을 줄이되 관객을 감정적으로 더욱 크게 동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21세기의 액션 영화의 작동 방식이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2004년 개봉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본 슈프리머시>에서 정점을 맞는다. 이러한 스타일의 장점은, 배우들의 스턴트가 허술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욱 화려한 카메라와, 너무도 짧게 잘린 편집으로 인해 관객들은 배우의 스턴트를 선명하게 볼 수는 없다. 대신에 격정적인 감정의 동요만은 분명하다. 몸속에 아드레날린이 가득할 만큼의 빠른 리듬은 그동안 그 어떤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스타일이고, 본 시리즈는 전후의 어떤 작품들보다 이 연출을 세련되게 잘 해내고 있다.

  본 시리즈 이후로 거의 모든 액션 영화들이 카메라와 편집에 의지하는 스타일을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물게 관객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남기려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이다. 매드 맥스의 감독 조지 밀러는 화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자기 식대로 통제한다. 관객의 눈이 어디로 어떻게 향하게 할 것인지까지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다는 점과 서커스를 연상시킬 만큼의 매력적인 스턴트들은 자연스레 버스터 키튼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폭발 하나, 움직임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세밀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편집에 어느 정도 의존하되, 영화 스스로 호흡을 조절하면서 관객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선명하게 남긴다. 또한 본 작은 매력적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물론이며, 여성의 사회적 저항을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회귀하듯이 표현해내는 페미니즘적 시각 또한 훌륭하다. 

좌 :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우 : 영화 '존 윅 - 리로드'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마지막으로 소개할 액션 영화의 걸작은, 지금껏 얘기한 두 가지의 스타일 중 어느 하나로 귀속되지 않는다. 편집 속도를 비교적 빠르게 가져가면서도, 이미지의 생산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편집, 그리고 배우의 스턴트 세 박자가 모두 충실히 제 역할을 해내는 성실한 액션 프랜차이즈다. 바로, <존 윅> 시리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련된 연출을 보여주었던 작품은 <존 윅 - 리로드>였다. 혹자는 이 영화가 내러티브가 형편없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 완벽한 액션 시퀀스들 앞에서 내러티브란 아예 필요 없기까지 하다. 본작에서는 이전 작보다 액션 시퀀스의 비중을 더더욱 늘려버렸으며, 전작에 비해 조명과 색채의 활용 또한 매력적으로 진보하였다. 여러 의미에서, 21세기 최고의 액션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칭할만한 작품이다.

  21세기의 액션 영화들은 20세기의 영화들보다 하나의 선택지를 더 가지고 있다. 카메라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여전히 관객들에게 경이로운 쾌감을 느끼게 해 주고자 노력하는 감독들이 있다. 모르고 봐도 재밌지만, 알고 보면 더욱 재밌다. 액션 영화들과 함께 영화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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