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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화 Oct 10. 2021

<디아블로 2: 레저렉션>속 악마의 모습이 초라한 이유

한 컷씩 뜯어가며 살펴본 디아블로 2의 시네마틱 영상들

  악마가 돌아왔다. 20년 전 세상을 흔들어놨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디아블로 2>가 향상된 그래픽과 게임성으로 리메이크되어 돌아왔다. 당신이 블리자드사의 시네마틱 영상들을 좋아한다면, 아마도 <디아블로 2: 파괴의 군주>의 시네마틱 트레일러 속 악마 바알의 모습 또한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디아블로 2: 파괴의 군주>의 트레일러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낸 최고의 시네마틱 영상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이번 리메이크에서 향상된 그래픽으로 구현된 바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기대할만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한 바알의 모습은 예전 같지 못했다. 분명히 한컷 한컷 예전과 거의 똑같이 구현된 영상인데, 기술적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진보하였음에도 예전의 그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20년이 지났으니 추억이 흐릿해진 탓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자세히 낱낱이 들여다보면 이 영상, 전혀 예전과 같은 영상이 아니다. 연출이 변했다. 연출은 언제나 기술이나 연기 따위의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블리자드의 이번 리메이크는 영상에서 연출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명확하게 일깨워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부터 <디아블로 2>와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의 시네마틱 영상을 한 장면 한 장면씩 뜯어다 보면서 분석해보도록 하자.


1.

  첫 번째 컷부터 살펴보자. 두 영상이 설정한 공간들은 같은 공간이지만, 그 묘사의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원본 영상은 하이 콘트라스트(콘트라스트란 화면 속 밝은 공간과 어두운 공간 사이의 대비를 의미한다.)의 뚜렷한 명암 대비가 드러나게끔 공간을 연출했다. 반면에 레저렉션의 경우, 영상에서 밝은 오브제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비교적 낮은 채도의 표현과 방안을 뒤덮은 연기를 통해서 더욱 음산하고 건조한 분위기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두 영상이 공간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 중 무엇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는 이후의 컷들을 살펴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2.

  이제 문이 열린다. 원본은 이번에도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밝은 곳은 더 밝게 표현했다. 문 밖의 밝은 공간이 강한 빛 번짐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화면 밖에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의 속도다.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화면의 중앙에 잡히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덕분에 관객의 시야는 문이 열릴 때 문 밖에 있는 바알의 군대에게 집중된 후, 멀리서 걸어 들어오는 인물의 모습으로 천천히 옮겨간다. 연출을 통해 관객의 눈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레저렉션의 경우에는 낮은 채도 탓에 그리고 바알의 군대의 모습이 원본 속 군대의 모습보다 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바알의 군대에 전혀 눈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걸어오는 사람이 화면의 중앙에 도달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탓에, 가뜩이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바알의 군대에 시선이 집중될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다.

  원본 영상 속 바알의 군대가 명확하게 밝은 색으로 표현된 것은 연출가의 과감한 판단이었다. 대부분의 영상에서 명과 암의 대비는 그 자체로 선과 악을 구별한다. 언제나 선은 밝은 편에, 악은 어두운 편에 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원본 영상은 악마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밝은 빛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덕분에 원본은 관객의 시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게다가, 한낮에도 대규모로 당당하게 나타나는 악마들의 모습은 절망감과 무력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다시 레저렉션으로 돌아와서,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레저렉션은 걸어오는 사람에게 단순히 시선만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꽤 힘 있어 보이게끔 만들었다. 깃대를 바닥에 내리치면서 들어오는 그의 모습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원본의 같은 인물보다 훨씬 당당해 보인다.


3.

  원본과 레저렉션 모두 - 조감(bird's eye view, 천장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구도)을 통해 혼자 서있는 인간을 한껏 초라해 보이게 한다. 레저렉션 속의 공간은 고요한 반면, 원본은 움직이는 새와 펄럭이는 붉은 천을 활용해 더욱 역동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4.

  바로 다음 컷에서 바알의 군대가 등장할 예정이다. 원본에서는 인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넣어, 곧이어 등장할 외화면 속 바알의 군대에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레저렉션에서는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사라졌다.

5.

  배경이 차가운 색을 위주로 구성되었기에, 원본은 따뜻한 색을 활용하여 바알의 군대를 표현하였다. 바람을 이용해 역동성과 배경의 차가운 분위기를 동시에 살렸으며 깃발들이 바알의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 추후에 바알의 등장 시 충격을 극대화시킨다. 

  반면에 레저렉션의 경우 바알의 군대마저도 채도가 낮게 표현한 탓에, 배경과 군대의 모습이 동화되는 모습이다.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줄 수는 있었겠지만,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색깔이 아닌 배치에 있다. 깃발 뒤로 이미 바알과 군대의 모습이 전부 드러나고 있다. 원본이 깃발의 위치를 일직선상에서 흩뜨려놓으면서 까지 바알의 모습을 가리려 했던 모습과는 대조된다.


6.

  영화는 움직임의 예술이다. 물론 인물의 표정이나 배우의 표현능력 역시 중요하지만, 이런 디테일들은 언제나 움직임에 압도당한다. 앞으로의 컷들에서 우리는 인물 디렉팅과 행동 묘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레저렉션에서는 아마도 모션 캡처 기능을 활용해 실제 배우의 연기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대로 옮겨낸 듯하다. 덕분에 인물의 얼굴과 표정 변화는 훨씬 풍성하다. 그럼에도 더욱 성공적인 연출은 원본의 것이다. 원본은 오히려 레저렉션보다 안개, 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안개와 연기를 통해 후경을 지움으로써 우리는 전경 속 인물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손을 오른쪽으로 깊게 뻗도록 지시함으로써, 원본은 인물의 얼굴을 그림자로 전부 가려버리다시피 했다.

  클로즈업은 가장 극적이고 강렬한 숏 중 하나다. 바로 다음 컷에서 바알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장면의 진정한 가치는 관객이 바로 다음 컷에 더욱 주목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있다. 때문에 행동을 통해 인물은 지우고 다음 컷을 살리는 원본의 연출이 더욱 정답에 가깝다.

 


7.

  이 컷은 원본과 레저렉션의 연출 실력 차이가 가장 극단적으로 두드러진 장면 중 하나이다. 이 컷에서 중요한 것은 바알이다. 어떻게 바알을 효과적으로 등장시킬 것인가.

  원본이 택한 방법을 보자.  빠르게 깃발이 좌우로 이동하면서 바알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후, 바알의 군대가 앞으로 이동하면서 한 번 더 시선을 장악한다. 바알의 마차의 깃발과 바알을 가리고 있던 깃발의 색을 다르게 표현하여 중앙으로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였고 때문에 중앙의 바알 이외에는 어떤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에 레저렉션의 경우, 바알의 주변으로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눈에 띄며 그 움직임 또한 느리다. 바알이 탄 마차의 깃발과 바알을 가리고 있던 깃발 모두 비슷한 색인데 채도가 낮기까지 하다. 깃발이 좌우로 이동하는 것과 마차가 앞뒤로 이동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며 그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두 움직임 중 어느 것도 유의미한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게다가 바알의 아래에 위치한 마차부들의 키가 커져서, 바알에게 향해야 할 시선을 앗아가 버리고 있다.


8.

  바알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 놀라는 인간의 모습이 이어지는데, 원본에서 영상의 시간대를 어떻게 재편집했는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전 컷에서 이미 바알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이미 군대를 확인한 인물의 모습이 등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레저렉션은 실제로 그렇게 연출했다. 하지만 원본의 경우, '응시-인지-놀람'의 순서로 인물의 반응이 이어진다. 장면의 시간적인 순서를 약간 변형함으로써, 원본은 인물이 손을 치운 후 깜짝 놀라는 모습이 조금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게끔 연출해냈다.

9.

  드디어 바알의 모습이 등장한다. 원본에서 레저렉션으로 넘어오면서 바알의 디자인에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이 있다면, 바알의 눈동자가 더욱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물이 읽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눈동자 주변이 어둡게 표현되면 더욱 큰 위압감을 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대부> 속의 말론 브론도가 이러한 연출을 적용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천장 높은 곳에 조명을 두어서 눈 주변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인물이 압도감을 줄 수 있도록 연출했다.

  원본과 레저렉션이 각각 어디에 움직임을 주었는가 역시 주목해볼 만한 부분이다. 원본에서는 바알의 손에 움직임을 주어, 바알이 쥔 영혼석에 조금 더 눈이 가게 연출했다. 영혼석은 디아블로 2와 확장팩 파괴의 군주 사이 이야기를 잇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레저렉션은 손의 움직임과 영혼석의 밝기를 줄이고 대신에 바알의 고개에 움직임을 넣음으로써 바알의 얼굴에 시야를 집중시켰다. 움직임은 이렇게 우리의 시야를 연출자의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한다. 둘 중 어느 하나의 연출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

  원본은 전경을 묘사할 때 전경에 훨씬 더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초점을 지워버렸다. 문이 닫히기 시작하는 것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다가, 인물이 들고 있던 깃발을 아래로 내리는데, 이때 우리의 눈은 자연스레 깃발을 따라가게 된다. 인간의 눈은 수평보다는 수직의 이미지에 훨씬 주목하기 마련이다. 깃발은 수직의 이미지기에, 깃발이 움직일 때 우리의 시선이 깃발을 따라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인물은 들고 있던 깃발을 아예 화면 밖 오른쪽으로 내려버리면서 고개를 뒤로 돌린다. 우리 눈이 쫓던 수직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전경의 인물이 뒤를 쳐다보게 함으로써,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후경으로 옮겨간다. 수직의 이미지를 통해 전경과 후경에서 관객의 눈을 완전하게 통제하는 연출이다.

  이 방식과 거의 똑같은 연출을 조지 밀러의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직의 이미지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 후, 전경의 인물이 뒤를 바라봄으로써 후경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하지만 레저렉션의 경우, 원본보다 인물의 움직임이 작고, 수직의 이미지(깃발)가 아예 후경을 가려버리다시피 하기 때문에, 문이 닫힐 때의 효과가 훨씬 덜하다.


11.

  이제 후경에서 전경으로 다시 시야를 가져올 차례이다. 원본은 아웃포커싱을 활용하여 간단하게 해결했고, 레저렉션의 경우에는 인물의 움직임과 소리를 활용하였다. 이 경우엔 레저렉션의 방식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12.

  깃발을 든 인물이 바알의 군대보다 공간적으로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깃발을 든 인물을 묘사하는 장면은 필연적으로 부감 숏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부감이란, 아래에서 위로 피사체를 바라보는 숏을 의미한다. 부감은 피사체를 더욱 위압감이 들고 두려운 존재로 보이게 한다. 때문에 이 장면에서는 최대한 부감 같지 않은 숏으로 자연스레 인물을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레저렉션의 카메라가 원본보다 조금 더 낮은 위치에서 인물을 담고 있다. 하지만 마냥 레저렉션의 카메라가 원본의 카메라보다 형편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레저렉션에서는 인물의 눈동자가 원본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눈동자가 얼마나 높은/낮은 곳을 향하고 있는가는 인물 사이 권력의 우위를 만들어낸다. 레저렉션 속의 인물이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기에, 그의 표정이 더욱 불안해 보인다. 게다가 모션 캡처를 통해 드러나는 실제 배우의 불안한 눈빛과 세밀한 연기를 결코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13.

  조감(bird's eye view천장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구도)을 통해 양측 사이의 숫자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컷인데, 레저렉션이 원본보다 훌륭하게 연출한 몇 안 되는 컷 중 하나다.

  먼저 원본을 살펴보자. 칭찬할 점이 있다면 원본은 레저렉션에 비해 악마 군대의 물량을 풍성하게 표현할 기술이 부족했을 텐데, 넓은 범위의 그림자를 표현함으로써 마치 인물들이 가득 차 보이게 하는 뛰어난 연출 역량을 보여줬다. 반면에 레저렉션은 뛰어난 그래픽의 활용을 통해 악마 군대의 거대한 모습을 무리 없이 표현해냈다. 

  레저렉션이 더욱 뛰어났던 점은 수적 열세를 갖춘 진영을 화면에서 조금 더 작은 비중으로 표현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쪽이 더욱 압도적으로 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카메라가 천천히 위쪽으로 움직임으로써 더더욱 위쪽의 악마 군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14.


  Enough! 를 외치는 바알의 모습이다. 원본의 바알과 레저렉션의 바알에게서 드러나는 감정을 각각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원본은 '교활함', 레저렉션은 '분노'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작 초라한 한 명의 인간을 상대하는 것뿐인데, 어쩐지 레저렉션의 바알은 감정적으로 조금 더 격양되어 있고 조금 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원본의 바알은 이 상황을 제법 즐기고 있는 듯하다.


15.

  두려워하는 인물의 모습을 담아내는 두 영상의 방식이 전혀 다르다. 원본은 인물이 측면을 바라보게 하였고 카메라가 인물로부터 멀어지게끔 연출함으로써 인물의 초라함을 표현해냈다. 반면에 원본은 인물이 정면을 향하고 있긴 하지만, 레저렉션보다 인물을 작게 표현하였으며, 미세한 떨림과 풍부한 표정을 보여주는 인물의 연기가 강점이다.



16.

  작은 힘으로 바람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바알의 마법이 어쩐지 레저렉션에서는 더욱 초라해졌다. 움직임 자체도 덜 한 데다가 깃발과 배경 모두 채도가 워낙 낮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레저렉션 속 바알의 손짓이 더욱 우아해진 것 같다.)



17.

  원본 속 바알의 마법에는 여유가 있다. 손동작은 간소하고 표정에도 여유가 있다. 반면에 레저렉션 속 바알의 마법은 조금 더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원본 속 바알의 마법이 검은색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면 레저렉션 속 바알의 마법은 더욱 눈에 띄는 붉은색에다가 화려하다.


18.

  이 컷에서는 인물이 서있는 바닥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본에서 인물은 초록색의 바닥 위에 서있다. 초록색은 빨간색의 보색이다. 일부러 바알의 마법이 검은색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알의 마법은 레저렉션보다 다소 심심해 보이지만, 붉은색의 표현을 자제했기에 다음에 이어지는 살육의 장면은 더욱 극적이다. 실제로 원본이 레저렉션보다 살육의 장면을 더욱 크게 표현하기도 했다. 반면에 레저렉션 속 살육의 경우, 원본보다 훨씬 작고 초라하다. 더욱 화려한 마법을 발사했기에 이어지는 살육이 더 밋밋하다. 바닥의 초록색이 사라진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19.

  레저렉션 속 바알이 카메라의 정면을 바라본다. "제시적 블로킹"이라고 불리는 이 연출은 관객에게 더욱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장면 때문에 레저렉션의 마지막이 더욱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같은 컷 속 마지막 장면을 살펴보자.



20.

  바알의 군대가 달려 나간다. 원본에서는 모든 군대가 동시에 그것도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면서 굉장한 위압감과 두려움을 준다. 반면에 레저렉션의 군대들은 한꺼번에 달려 나가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맨 앞의 악마들이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데 이들 마저도 느릿느릿 출발할 뿐이다. 게다가 제일 앞에 달려 나가는 악마는 화면을 거의 가려버리다시피 한다. 두 영상의 만듦새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장면이다.



  이렇게 총 20개의 컷을 통해 디아블로 2의 시네마틱 영상을 비교해 보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연출이다. <쥬라기 공원>의 리메이크나 <터미네이터>의 후속작들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면 아마도 연출의 부족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어떤 영화를 보면서 느꼈을 대부분의 감정은 영상의 훌륭함을 평가할 때 실제로 정교하게 들어맞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좋은 연출은 세세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영화를 고를 때는 기술의 화려함 만큼이나 감독의 이름에 집중해보자. 감독의 이름은 웬만해서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당신이 영화를 고를 때에 가장 큰 신뢰감과 확신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감독의 역량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5mgF3TKZPo

https://www.youtube.com/watch?v=cYQ9tJSWo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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